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2014년 4월,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세월호 보도에 개입하고 압박한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시민단체가 녹취록을 공개한 뒤 KBS 보도국은 들끓고 있다. 내부 기자들은 최고 권력에 의해 KBS가 유린된 사태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KBS에서는 관련 보도가 쉽게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KBS보도본부 27기(2000년) 기자 18명이 5일 비판 성명을 냈고, 7일에는 33기 기자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31기 기자들 47명도 기명 성명을 통해 청와대의 보도개입 사태 전말의 취재와 보도 제작을 간부들에 요구했다. 

이들은 ‘이정현 녹취록’에 대해 “공영방송에 대한 청와대의 보도 개입이다.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며 “KBS의 중심이 진정 시청자인지, 아니면 주어 없는 ‘그분’인지 당장 보도로 답하라”고 요구했다.

아래는 31기 기자들 성명 전문이다.

▲ ‘이정현 녹취 폭로’ 주인공인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길환영 전 KBS 사장(왼쪽)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이 KBS 보도와 인사에 개입해왔다고 폭로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청와대 보도 개입 사태, 당장 보도하라

KBS기자라는 것이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권력에 농락당하는 공영방송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뉴스 제작과 편집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개입은 KBS가 관제방송 수준이라는 세간의 비난을 더 이상 반박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사태에 대한 KBS의 보도는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한다. 보도본부는 언론단체의 녹취록 공개부터 국회 운영위원회, 대정부질문,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항소심 출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취재하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에 담을 뿐 기초적인 사실을 전하는 기사와 방송뉴스는 찾아볼 수 없다. 녹취록에 관한 최소한의 사실보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단지 여야 정쟁 프레임으로 이 사태를 언급했을 뿐이다. 이러고도 우리가 기자,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자사 관련 사안’이라든가 ‘편집권’이라는 핑계를 대며 보도를 외면하는 것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모든 주요 언론들이 지금의 사태를 대서특필하고 있는데도 뉴스가치가 부족하다느니 보도 시점을 조절하는 것이라는 변명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율성, 독립성을 침해받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기만일 뿐이며,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공영방송의 책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다.

국민들이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음을 수뇌부들은 두렵게 인식해야 한다. KBS뉴스에 대한 신뢰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있고, 공영방송의 위상 또한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렸다. 수뇌부는 현 사태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사건의 전말을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

본질은 간단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청와대의 보도 개입이다.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올해 회사는 핵심 가치로 ‘우리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를 내세웠다. KBS의 중심이 진정 시청자인지, 아니면 주어 없는 ‘그분’인지 당장 보도로 답하라.

31기 기자

엄기숙 한주연 강수헌 황재락 송민석 이정은 이종완 류성호 김해정 박상훈 이승준 이진연 송현준 진정은 노준철 강성원 김계애 우동윤 김민아 윤나경 염기석 유용두 강정훈 김선영 최영준 김시원 곽근아 구경하 김성한 노윤정 류 란 박 현 양민효 은준수 이수정 이재석 이진연 임재성 정아연 정현숙 차정인 황현택 박효인 김태석 연봉석 임현식 조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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