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임원들이 지난 2012년 MBC 노동조합 파업 중 사내 보안 프로그램을 이용해 노조 간부 등의 사적 정보를 불법 열람해 대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책임자 징계를 의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일 오후 열린 방문진(고영주 이사장) 임시이사회에서 야당 추천 이사들은 ‘트로이컷 사건 관련 경영진에 대한 조치의 건’과 관련해 대법원으로부터 노조 사찰의 불법행위를 인정받은 안광한 MBC 사장을 비롯한 이진숙 대전MBC 사장 등에 대해 방문진이 합당한 징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여권 추천 이사들은 안 사장 등에 대한 민사와 형사상 불법행위 인정이 다르다는 점에서 관리자로서 도덕적 책임은 있지만 징계 책임까지 묻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 안광한 MBC 사장(왼쪽)과 이진숙 대전MBC 사장 ⓒ연합뉴스
대법원은 민사상 차재실 전 정보콘텐츠실장과 함께 안 사장과 김재철 전 사장, 조규승 신사업개발센터장, 이진숙 대전MBC 사장, 임진택 전 MBC 감사도 노조 측에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형사적 법적 책임은 차 전 실장에게만 물었기 때문에 민·형사상 다른 판단을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여야 6대 3 구성의 이사회에서 다수인 여권 이사들은 형사재판에서 500만 원 벌금형을 받은 차 전 실장과 당시 경영지원본부장이었던 조규승 센터장에 대한 조치 결과만을 지켜보고, 나머지 임원들에 대한 징계 논의는 진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임원들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면 방문진서 추가 논의할 수 있다는 단서는 달았지만, 여권 이사 모두가 해임 등 징계 의결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고영주 이사장은 “민사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을 중시하고 가해자의 고의보다는 피해자의 피해가 있으면 배상에 신경을 쓰는 반면 형사는 고의가 있어야 처벌한다”며 “형사와 민사의 판단이 다른 것은 고의는 없지만 피해가 있으니 배상하는 취지이고, 징계는 민사가 아니라 형사에 가까우므로 징계 대상은 형사 결정 위주로 돼야 할 거라 본다”고 말했다.  

앞서 고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대법원으로부터 노조 사찰 유죄 판결을 받은 ‘트로이컷 사건’와 관련해 방문진에서 당시 경영진에 대한 징계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방문진 이사회에선 고 이사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이사들은 트로이컷 판결 책임자들의 징계 책임을 묻기는커녕, ‘형사 판결에서 기소되지 않았다면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차 전 실장을 제외한 나머지 임원들까지 징계하는 것에 반대했다.

김광동 이사는 “당시 김재철 전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 유출 등 상황에서 직원의 통신비밀 보호와 회사 보호 차원에서 외부세력의 해킹을 막으려는 차원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설치했다는 확증을 갖는다”며 “이 모든 것이 불법이란 점에 하등의 차이가 없으나 경영진과 관리 책임자자 의도성을 갖고 공모했다는 개연적 근거가 낮다고 보여 도덕적 책임 외에 추가적인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고 말했다. 

유의선 이사 역시 “직원의 개인정보 유출은 유감이지만 차 전 실장의 개인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관리책임자들에겐 형사상으론 불기소 처분 이유서가 있어 의도성과 고의성은 없는 것 같다”면서 “나름 선의로 설치하려고 했고 임원들은 IT에 무지한 사람들로 지시했으면 보고받아야 하는데 보고받은 바가 없어, 민사상 행위로 윤리적 책임이 있을 수 있으나 그걸로 징계하는 건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 이사의 주장과 달리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트로이컷의 도입과 설치는 차재실->조규승->안광한(부사장)->김재철(사장)의 결재라인으로 추진됐고, 기획예산부가 속해있는 기획홍보본부 이진숙 본부장과 예산 집행을 감사하는 임진택 감사에게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직원들 메일 훔쳐본 죄, MBC 트로이컷 손배판결 의미)

재판부는 “경영진도 노조 측의 사전 동의 없이 트로이컷을 설치해 개인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보관·열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거나 조장, 방조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차 전 실장과 연대해 손해를 배상하라”며 “당시 파업 중 노조의 기본적 단결을 위한 조합활동 관련 자료를 관제서버에 저장, 수집·보관·열람해 일상적인 조합활동과 쟁의행위를 위축하고 방해함으로써 노조의 집단적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야당 추천 이사이자 변호사인 최강욱 이사는 “여권 이사들이 형사와 민사를 구분하는 건 의도가 너무도 궁색하고 형사처벌을 안 받았으니 사임시킬 만큼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라며 “형사는 기소 독점의 검찰의 판단이고, 대법원에서 프로그램 작동 원리 등을 다 보고 받고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공동불법행위자로 판단 내린 이들이 어떤 도덕성을 가지고 MBC를 장기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보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야당 추천의 이완기 이사는 “현 경영진은 차 전 실장 등에게 아직도 아무런 조치를 안 취하고 있고 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입장인데 이렇게 뭉개는 것은 경영 최고 책임자로서 무책임한 행태”라며 “불법을 저지른 안 사장 등이 지속적해서 MBC를 경영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방문진에 부담을 주지 말고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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