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이상해."

연애의 과정에서 한 번쯤은 튀어나오는 말이다. 나 역시 족히 수십 번은 되뇌었고 그중 서너 번은 참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네가 더 이상해!"라는 대답뿐이다. 그럼 나는 생각한다. '내가 더? 얘 진짜 이상한 애네.'

그런데도 왜 사귀는지 묻는다면 '그게 서로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겠다. "그럼 뭐 어쩔 거야"라고 대충 둘러대지만 실은 (이해는 안 되지만) 그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이상하기에 그렇게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유는 그때마다 다르다. 너무 심하게 놀려대서, 칭찬에 서툴러서, 의견이 맞지 않아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아서, 열 받게 해서. 유치하고 황당한 이유들이 온갖 싸움의 불씨가 된다. 그때는 어쩐지 사랑을 속삭이는 순간보다 더 솔직한 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니 연애의 민낯은 싸울 때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란 남자 나란 여자의 본심 읽기

대만의 정신의학자이자 커플 심리치료사인 덩후이원의 책 <너란 남자, 나란 여자>(레드박스, 2016년)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커피 한 잔 때문에 싸우게 된 부부(19쪽),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여자친구(40쪽), 칭찬에 서툴러 오해를 받는 남자친구(41쪽), 쿠키 하나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 부부도 있고(19쪽), 이별에 힘겨워하는 여자(96쪽), 사랑받고 싶은 남자(38쪽), 시댁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남편을 고발하는 여자(204쪽)도 있다.

무엇보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 우리가 있다. 책의 카피처럼 '말해도 모르겠고, 말 안 하면 더 모르겠는' 상대의 속마음이 궁금한 사람들 말이다.

한때 답답한 마음에 '연애를 책으로 배운다'라는 심정으로 뒤적였던 연애서 속에는 우리가 없었다. 재미 삼아 봤던 로맨스 소설, 영화, 드라마 속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연애는 나의 연애와 너무 달랐고, 과정과 결과마저도 달랐다.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이 아니라 '지저분한 엔딩', '전쟁 같은 과정' 등이 생략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너란 남자, 나란 여자>에도 지저분한 엔딩이나 설레는 시작은 없지만, 전쟁 같은 과정이 있다. 가끔은 너무나 지루하고 평범해서 권태로운 나날들, 상처 받고 상처 주는 싸움에 아파하는, 그런 연애의 민낯들이 다양한 모양새로 드러나 있다. 이는 저자가 실제 커플 심리치료를 하며 만난 이들의 사연이기도 하고,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은 '연애 심리'와 '현실 극복'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뉜다.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커플들의 심리나, 사랑을 할 때 착각하는 것들, 사랑과 위기에 대한 사실들, 결혼에 대한 현실적 조언들까지 네 개의 챕터로 흩어진다. 각 챕터 안에서 다루는 소주제들은 더욱 다양하다. 저자는 단순히 '커플'이라는 완성된 집합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개개인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지, 또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행위를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지휘하는 모습이랄까. 저자가 프롤로그를 통해 밝혔던 "커플 관계에서 어떻게 상대방의 진정한 인격을 이해하고 성장의 아픔과 두려움을 도와줄 것인지,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고 온전한 상대와 일상을 함께할 수 있을지"를 각기 다른 상황 속에 놓인 사랑의 모습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관계를 위한 건강한 자아 찾기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연애 심리를 다룬 'PART 1'에서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에 놓인 커플들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커플도 예외는 아니다.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이 사람이 내 짝일까?'라고 의심한다. 이 물음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이 사람이 정말로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일까?'라는 뜻이다. 놀라움과 실망이 교차하면서 애초에 잘못된 선택이었다거나,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 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러고도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관계가 끝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 12쪽

천생연분이라고 착각할 뻔했던 것도 잠시, 색다른(?) 모습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상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 마치 완벽했던 나만의 알파고가 바이러스라도 걸린 양 오작동하는 격이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이들은 의외로 상당히 많다. 치명적 사유를 제외하고, 갈등이나 대립의 관계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견디고 싶지 않으니 '애초에 포기한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 사람이 지루한 대립을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중략) 대부분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커플 관계에 대해 배운다." - 12쪽

저자는 'PART 1'을 통해 위와 같은 갈등의 연결고리를 파헤치기 위한 심리 분석에 들어간다. 자아 이미지의 투사(18쪽), 애교와 횡포의 차이(32쪽), 자유와 미련의 딜레마(53쪽), 성격과 행복의 상관관계(97쪽), 기회와 포용의 마지노선(118쪽)과 같은 것들이다. 물론 분석에 따른 대안도 함께한다. 이를테면 소통을 위한 ‘미러링 소통의 기술’(68쪽)이나 남자를 위기에서 구하는 대답(40쪽)처럼.

현실 극복에 대해 이야기한 'PART 2'는 이야기의 결이 조금 다르다. 심리에서 한 발 나와 현실에서 겪게 되는 위기 상황과 그 대처법에 대한 것들이다. 책에 실린 하나의 예시를 살펴보자. 아내는 남편이 남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다며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했다.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

"나도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어."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면 못 보여줄 이유가 없잖아?"

"바람 따위 피우지 않아. 그래도 당신에게 보여주기 싫어. 내게도 사생활이 있으니까." - 157쪽

이게 어디 이 부부만의 일이랴. 사생활 문제는 많은 커플들의 싸움 원인 중 하나다. 가족이 된 부부 사이에서는 다른 문제일까? 저자는 이 사례를 두고 ‘커플 관계 속의 자아’를 이야기한다. 부부는 이 문제가 결혼과 자아의 충돌이라고 생각했지만, 저자는 진짜 문제가 두 사람의 내면에 있다고 지적했다.

"자아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한 생각과 욕구를 의미한다. (중략) 누구나 자아가 있고 커플 관계에서도 자아를 지켜야 한다. (중략) 그런데 커플 관계에서 자아나 자유와 관련된 대화를 나눌 때 혼동과 오해가 자주 생긴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지키려고 고집하는 것은 진정한 자아를 위함이 아니라, 자아의 문제를 해결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 158쪽

이 부부는 오랫동안 사생활 문제에 대한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겉으로는 생각의 차이 같았으나 사실 두 사람의 성장과정에는 '문제 해결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저자의 커플 치료를 통해 자아의 수수께끼를 풀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건강한 자아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연애라는 포장지에 숨은 '꼬인 인간관계 풀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연들이나 고민 상담 형식의 이야기, 톡톡 튀는 센스가 가득한 연애서를 기대했다면 아쉽지만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너란 남자, 나란 여자>는 자기계발서다. 사랑의 기술보다는 '타인과 나'라는 관계 속에서 건강한 자아, 나아가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은 그것을 '사랑' 혹은 '연애'라는 포장지에 감춰두고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을 들여다볼 만한 조언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빈틈을 들여다볼 작은 구멍이 되어주는 것. <너란 남자, 나란 여자>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또 발생할 것이다. 상대가 죽을 것처럼 좋다가도 꼴 보기 싫은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이에 사생활을 숨기는 것이 못마땅해질 수도 있고, 너무 평범한 관계가 권태롭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지 말자. 저자의 말처럼 "마음을 다해 누군가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큰 시험이자 시련"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평범함'이라는 함정 속에 빠진 이들에게도 책의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대신한다.

"위기를 겪어본 커플은 평범함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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