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주신씨의 병역 기피 의혹을 제기한 이들의 주장을 내보낸 MBC가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겼다. 병무청과 병원, 검찰과 법원에서조차 주신씨의 병역 기피 의혹이 모두 허위 사실이라고 인정했는데도 MBC는 어떻게 이 같은 의혹을 보도하고도 승소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MBC는 애초부터 주신씨가 병역을 기피했다는 확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검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울시장이라는 공인, 특히나 야권의 지지를 받고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히는 박 시장에 관한 의혹을 증폭함으로써 추구하려는 일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보도였다. (관련기사 : 박원순 시장, MBC 상대 정정보도 소송 패소) 애초에 새로운 사실이 없었으니 정정할 게 없었던 것이다. 무리한 의혹 제기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정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MBC 보도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허위보도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1심 재판부도 “이 보도는 주신씨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고, 검찰이 해당 사건의 수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일 뿐 MBC 보도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는 표현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MBC 보도에서 새로운 사실은 시민단체가 주신씨를 또다시 고발했고, 이에 대해 검찰 공안 2부가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뿐이다. 이에 대한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을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지 MBC 보도가 결코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의기양양해할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가 지적한 것처럼 MBC 보도는 ‘기사 작성의 ABC’부터가 틀렸다. 

지난해 9월1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화면 갈무리.
A. MBC는 박주신의 병역기피 의혹을 전혀 검증하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 측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양승오 박사 측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거든요. 양측이 주장하는 가장 핵심이 무엇인지 저희가 고민해서 그것을 보도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승오 박사 측이 새로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검찰 수사에서 진위를 밝히겠죠.”

오정환 MBC 보도국 취재센터장이 지난해 9월1일 MBC ‘뉴스데스크’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의혹 수사” 보도와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출석해 밝힌 입장이다.  

언론의 역할은 세간에 떠도는,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공적 의혹에 대해 검증하고 다각도로 조명해 국민에게 충분한 알권리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된 MBC 보도는 주신씨의 병역 비리 의혹에 대해 법원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벌금형을 받은 누리꾼들의 주장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증하지도 못했고, 타당한 근거를 가진 다양한 견해로 진실에 접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의 병역기피 의혹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불필요한 논란과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검증해야 할 공영방송이 외려 근거 없는 의혹을 부추기기고 있는 꼴이다. 

B. 중요한 사실관계를 빠뜨린 왜곡보도였다.

MBC는 또 해당 보도에서 “박원순 시장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의혹을 제기한 핵의학과 양승오 박사와 치과의사 김우현 박사 등 7명을 선관위에 고발했다가 취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면서 “그러나 오히려 의사들이 법정에서 판단을 받겠다며 주장해 재판은 8개월째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박 시장이 양 박사 등을 선관위에 고발했다가 선거가 끝난 후 고발을 취하한 것도 사실이고, 양 박사 등이 정식 재판을 받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 박사 등에 대한 재판은 MBC 보도처럼 ‘양측이 입장이 팽팽히 맞서’ 열린 게 아니라, 박 시장 측이 이들에 대한 선처를 원했으나 검찰이 선관위 고발을 근거로 허위사실공표 등에 의한 공직선거법위반죄로 기소했기 때문에 넘겨진 것이다. (관련기사 : 콩으로 메주를 쒀도 안 믿는 박주신 병역 의혹)

또한 양 박사 등이 주신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지난 2013년 5월28일 서울중앙지검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음에도 MBC는 박 시장 측에 유리한 이 같은 사실관계에 대해선 모두 누락했다. MBC 보도국 간부와 기자는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모두 입증한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고 ‘주관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노조 민실위보고서에 따르면 이 리포트를 한 김태윤 기자는 검찰 기소 사실 등이 빠진 것에 대해 “박 시장이 고발 취하의 뜻을 밝힌 것도 팩트이고, 당사자들이 재판 받길 원한 것도 팩트”라며 “잘못 쓴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취사 선택한 사실의 인과관계 없는 나열로 시청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왜곡보도가 맞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는 주신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퍼뜨린 양승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핵의학과 주임과장 등 7명에 대해 700만~1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주신씨의 의학 영상 촬영에 대리인이 개입하지 않았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했던 공개검증 영상도 본인이 찍은 사실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던 강용석 전 의원이 2012년 2월22일 세브란스병원 공개검증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다. 사진=민중의소리
C. 박 시장 측의 반론권을 보장하지도 않았다. 

박 시장의 MBC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등 소송 1심 판결문에는 “박 시장 측은 김태윤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세브란스 병원의 공개검증 결과와 검찰 무혐의 처분 등의 사실관계를 알리면서 ‘양 박사 등은 마치 자신들이 재판을 통해 병역비리를 입증하는 것인 양 행세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양 박사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방송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MBC 측은 “병역 기피 논란이 일자 주신 씨는 2012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적으로 MRI를 찍었고 병원은 ‘두 곳의 MRI 사진은 동일인의 것’이라고 밝혀 논란은 끝나는 듯했다”는 내용이 반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정환 센터장은 방통심의위 의견진술에서 “만약 박원순 시장 측에서 처음부터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으면 그 인터뷰를 우리가 안 실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박 시장 측은) 공식 대응은 안 하고 내용만 보내면서 방송하지 말라는 식으로 계속 저희한테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MBC는 정부나 사법기관에서 확인된 사실이 아닌 시민단체 등의 근거 없는 주장을 전하면서, 마땅히 반론을 받아야 할 당사자가 반론 내용을 보냈음에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 시장 측의 반론내용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송사가 반론을 전달하는 방식은 직접 인터뷰 발언을 내보낼 수도 있지만, 그래픽이나 자막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반론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 그러나 MBC는 영상의학 전문가라는 양 박사의 주장만 직·간접적으로 4차례나 전달하면서도 박 시장 측의 반박은 생략했다. 

9월1일 보도가 나간 후 박 시장 측이 법적 대응 입장을 밝히자 MBC는 다음날 서울시의 반박 기자회견을 내보냈다. 오 센터장은 2일 보도에 대해서도 “오히려 우리가 박 시장 측의 기세에 눌렸다고 그럴까요? 겁을 먹었다고 그럴까요? 그게 불공정하다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법적 방어를 위한 반론 형식의 보도조차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노조 민실위는 “현직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은 언론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이고, 근거가 있는 의혹이라면 언론이 앞장서 검증해야 한다”며 “그러나 특별한 근거도 없이, 반론도 없이, 주요 사실은 누락한 채 일방의 주장만을 전달하는 건 무책임하다. 더 심각한 건 이런 보도가 문제란 인식조차 없어 보인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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