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도서출판 창비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데이비드 하비 교수를 초청했고, 하비 교수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일상의 변모'라는 주제로 열린 대중강연과 2016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회의 등의 행사에 참석했다.

하비 교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반란의 도시> 등의 저작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지리적 분석을 시도해온 세계적 석학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이 시간적 차원만을 고려했다면 그는 앙리 르페브르 등의 학자를 계승하면서 공간적 차원을 고려했다. 그래서 그의 이론에선 '도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6월 21일 방한 기념 대중강연을 두 시간 앞두고 언론사 대상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왼쪽) (사진 창비 제공)

"인류 미래 위해 반자본주의적 도시화가 필수"

하비 교수는 현대사회의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도시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 불평등과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과연 도시화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이뤄지는지, 아니면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나아가 그는 "자본이 도시화를 이끄는 과정은 지구적 빈곤이나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반자본주의적 도시화가 인류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선 성장 여부에 상관없이 저소득층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약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명명하며 저소득층이 피해를 본 대표적 사례로 미국 금융위기 때 부동산 업계의 예를 들었다.

"미국에서 거의 8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금융기관에 압류당해 집을 잃었고, 그것을 부유한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저렴한 가격에 사들였다. 일부 임대업자들은 많은 수익을 내며 사들인 주택을 임대해 300%에 가까운 수익을 내고 있다. 미국 역사상 0%에 가까운 성장이 이뤄지는 가운데 빈곤 계층 재산이 상류층으로 흘러 들어가는 부의 재생산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경제성장이 저소득층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평생 저소득층을 돕기 위해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성장이 이뤄지면 흑자가 발생하고 그 흑자가 결국 저소득층에게 재분배된다는 것이다. 실제 1950~196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이런 내용을 현실화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 이후론 상황이 그렇게 유지되지 않았다. 지난 30~40년간은 경제성장이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저소득층이 피해를 봤다. 전 세계적 빈곤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이 변모해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반자본주의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그는 장기적인 관점과 단기적인 관점을 나누어 생각할 것과,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을 주장했다.

"물론 성장이 반드시 있어야 삶의 여건이 나아지는 곳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계 많은 사람들은 과잉 소비 시대에 살고 있다. 특정 부유층이 누리는 부의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다른 빈곤층의 삶의 요구와 비교했을 땐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장기적으론 성장을 억제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소비주의가 만연한 현재 시스템을 바꿔서 삶의 여건을 향상시키고, 소비가 필요한 쪽으로 재할당해야 한다."

하비 교수는 이런 변화의 시도에 있어서 우리 모두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해, '노동자 계급'을 변화의 주체로 상정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와 다소 거리를 뒀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계급만이 변화의 주체로 상정되는 데 반해, 현대사회에서는 도시 일상의 문제가 정치적 운동으로 이어지고 이런 것들이 반자본주의 형태를 띠게 된다. 예를 들어 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해도 결국 그 돈이 집세로 나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자본 계급이 한쪽으로 돈을 줘도, 다른 방식으로 돈을 착취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실제 내가 가는 모든 도시에서 주택문제에 관한 위기를 목격했다. 뉴욕에서도 굉장한 건설 붐이 일고 있음에도 주택 부족 위기가 발생했다. 때문에 뉴욕 시 인구 절반은 생활에 충분하지 않은 연간 3만 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는 지난 20년 안에 일어난 중요한 도시 봉기의 사례로 2013년 이스탄불의 게지공원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같은 해 브라질에서 있었던 반정부 시위를 언급하기도 했다.

▲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왼쪽) (사진 창비 제공)

"마르크스 이론은 끊임없이 갱신된다"

'유연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평가받는 데이비드 하비 교수이지만, 기자간담회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실체로 굳어진 마르크스가 아니라 끊임없이 읽히고 갱신되는 마르크스라는 역사적 실체, 학문 대상으로서의 애정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공산당 정치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의해 특정한 마르크스의 비전이 우리에게 많이 전달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서를 보면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항상 새로운 자기 가능성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굉장히 유동적으로 전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도그마적인 사고, 그래서 그를 고정된 인물로 규명하는 것을 타파하고 싶다. 이게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책을 쓰기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이유다."

여든을 넘긴 데이비드 하비 교수,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논의의 장을 넓히기 위한 활동을 쉬지 않고 있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다양한 저술활동과 학문의 영역을 구분 짓지 않는 연구를 하고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회차마다 평균 1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인기 콘텐츠다.

올해 10월에는 1970년대 이후 그의 40년간의 지적 여정을 담은 논문 선집인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The Ways of the World)>이 우리나라에서 발간된다. 기존에 그가 보여준 전문적·학술적인 글쓰기뿐만 아니라 문학적·시적 글쓰기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글들이 담길 예정이다. 전통적 개념의 학문에 담길 수 없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관심이 드러난 글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북DB 기사 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