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과정에서 벌인 낙선운동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참여연대와 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실 및 활동가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한 경찰에 대해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 압수수색은 지난 2008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을 때 한차례 있었던 이후 8년 만이다. 이번엔 참여연대 뿐 아니라 시민단체연대회의를 포함해 총선네트워크, 총선네트워크 서버업체 등 10군데가 그 대상이었다. 활동가들 자택도 압수수색이 실시됐다.

사무실과 자신의 자택까지 압수수색당한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수사 대상으로 지목된 내용이 논란의 여지가 큰 사안인데도 이렇게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기중 예상되는 재보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 비판을 위축시키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다.

▲ 지난 16일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경찰들. 사진=안진걸 처장 제공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민단체 활동가의 사무실과 자택까지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선거 패배에 대한 보복과 활동의 위축을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4월15일 안 처장에게 보낸 공직선거법 위반 통지문을 보면, 서울시선관위는 그달 12일 안 처장이 7가지 공직선거법 조항을 위반해 검찰에 고발조치했다고 밝혔다. 7가지 위반 사항 가운데 주요 수사 대상은 크게 두가지로, 93조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와 108조 ‘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 등이다.

첫 번째의 경우 총선네트워크(참여연대 포함-이하 총선넷)가 일부 후보 낙선운동을 하면서 피켓에 구멍을 뚫고 기자회견 등을 벌인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해당 법조항에는 낙선 대상자를 발표하거나 인터넷상에서 낙선운동을 벌일 수는 있으나 대상자의 사진, 이름을 인쇄물로 배포하는 것은 불법으로 돼 있다. 피켓에 낙선 대상자의 이름이나 사진은 쓰지 않았지만 촬영시 피켓의 뚫린 구멍 사이로 낙선 대상자 얼굴이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93조 위반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다. 

▲ 지난 4월 7일 오후 인천유권자위원회 회원이 인천남구을 무소속 윤상현 후보 사무실 앞에서 낙선투어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두 번째 항목도 참여연대, 총선넷 등이 온라인 상에서 베스트 정책 10개, 워스트 후보 10인을 공개 선정한 것이 일종의 여론조사를 벌인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조항에 위배돼 있다는 주장이다. 안 처장은 “우리가 ‘치밀하고 계획적인 선거법 위반’을 했다는데 ‘구멍뚫린 피켓’이 치밀하고 계획적이라는 것이냐”며 “재밌게 기획해서 한 것을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라고 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선거법 위반 혐의가 설령 일부 인정된다 해도 이렇게 대대적인 압수수색까지 벌일 이유가 있었느냐는 데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압수수색 사유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모·공동정범 등 누가 주도하고, 사주했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며 “실질적으로 누가 주도하고 기획했는지의 사안도 수사상 필요하다고 생각해 최소한으로 시행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민중의소리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홍보협력계 담당 경위는 “강 청장이 공모와 공동정범 관련 언급을 한 것은 맞는 것 같다”면서도 “원론적인 말씀을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강 처장의 기자간담회 내용은 마치 우리가 어떤 사주한 세력과 짜고 공모한 것을 밝혀내기 위해 압수수색했다는 것”이라며 “지난 2000년 이후 독립적이고 고유한 시민활동인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폄훼이며, 유권자 권리 신장을 위해 활동해온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안 처장은 “‘2016총선넷’은 10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결성한 공개된 조직으로, 의사 결정과 활동을 공개적으로 해왔는데 추가적인 공모·공동정범이나, 누가 ‘사주’했는지를 수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세력의 사주를 받아서 운동하는 단체는 하나도 없다”며 “경찰청장이 그걸 알면서도 허위사실을 덧씌우고자 하는 정치공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 처장은 이 같은 강도 높은 수사에 대해 “경찰이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을 하게 되면 시민들이 볼 때 ‘경찰이 저러는건 정말 시민단체와 야당이 뭔가 교감이 있다는 근거가 있으니 저런 것이겠지’ 하는 오해를 줄 수 있다”며 “다가올 재보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제기될 비판을 차단하는 위축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사진=안진걸 처장 제공
안 처장은 “일부 국민을 오해하게 하는 이런 정치여론공작이 당장 일시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겁먹기는커녕 향후 강력히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민사회단체를 얼마나 만만하고 불순하게 봤으면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권력을 절제하지 못한채 레임덕을 막으려고 국민을 상대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안 처장은 “총선넷 대표 실무자(공동운영위원장)이자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이니 그랬을 것”이라며 “이것 외에도 2008년 때 구속된 전력이 있고, 반값등록금, FTA 반대, 민중대회, 세월호 추모집회 등 계속 소환장이 날아와 너무 괴롭다. 비판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겁주려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안 처장은 “우리 시민단체는 탄압받으면 받을수록 더 강해지고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잘못 건드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대응할 것”이라며 “권력이 시민이든 NGO든 탄압하고 짓밟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남규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3계장은 “현재 압수수색 이후 압수물과 수사내용을 분석하고 있다”며 “선관위에서 고발한 사건인 만큼 절차에 따라 소환조사 등도 벌여나갈 계획이다. 그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 참여연대 활동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경찰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사진=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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