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둘째 딸 백민주화씨가 17일(현지시각)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 구두발언을 통해 “한국에선 정의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는 마이나 키아이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발표 이후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발언이 이어졌고, 백민주화씨도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유엔인권정책센터를 대표해 아버지 백남기씨의 상황과 한국 정부의 부당한 탄압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백씨는 “경찰은 집회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수백 대의 버스와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 주요 도로를 막았다”며 “경찰은 캡사이신 등 유해물질을 탄 물대포를 몇 시간 동안 무차별적으로 쏘아댔다”고 밝혔다.

백씨는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7개월 동안 그들이 한 건 고작 내 언니를 불러 고발인 조사를 한 차례 한 게 전부”라며 “사람이 누군가를 쳤다면 당연히 사과와 자기가 한 잘못을 고치기 위한 모든 일을 해야 하지만 한국 정부는 사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백씨는 이어 “나와 가족들은 진실한 사과와 철저한 수사,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며 “혹시 5초만 허락한다면 내 아버지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백남기씨가 물대포를 맞는 사진을 들어 최경림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에게 보여줬다.

백남기 농민의 둘째 딸 백민주화씨가 17일(현지시각)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 참석해 구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백민주화씨 페이스북
이날 키아이 특보는 차벽과 물대포를 사용하는 한국 정부의 집회·시위 진압 방식에 대해 “물대포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위험성을 증가시킨다”며 “차벽은 상대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의 행동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사전적으로 저해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어 물대포와 차벽 사용을 재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지난해 물대포는 4차례만 사용하는 등 폭력적인 참가자들에게만 엄격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용했다”면서 “백남기 농민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고 합법적 집회의 평화로운 참가자들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한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한 답변에 대해 “집회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국제인권 기준에 전혀 기반하고 있지 않으며 집회결사의 자유가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국가가 허가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시비쿠스(CIVICUS)는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경찰의 과도한 폭력과 자의적인 체포 등 집회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제기된 기소들을 취하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키아이 특보는 한국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보고서에서 삼성이 ‘무노조 경영’과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MBC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키아이 특보는 “MBC에서는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파업 후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을 해고하고 조합 간부를 품위가 떨어지는 일에 배치함으로써 사기를 꺾고 있다”고 보고했다. (관련기사 :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에 “MBC 노조탄압, 삼성과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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