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청와대 압박 있었지만…시대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김재철 “청와대 압박 있었지만…시대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인터뷰 전문] 김재철 전 MBC사장 “보도 통제, 과잉 충성하는 간부들 경계했다”

[편집자 주] 김재철 전 MBC 사장은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 노조 탄압의 상징적 존재로 이름을 알렸다. 무려 8명의 해직 언론인을 만들어냈고 170일간의 최장기 파업을 야기했다.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사천시장에 출마했다가 후보경선에서 떨어졌고, 지난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모에서도 탈락했다. 한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그가 노조가 아닌 MBC 회사에 소송을 걸며 다시 등장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그를 만났고 10일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사자의 일방의 주장일 수도 있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주장 자체로 의미는 있다고 판단해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특별퇴직위로금 청구 소송을 낸 이유가 있나?
“내가 MBC를 떠나게 된 동기가 사실은 지역사 임원 인사였다. 우리가 지역사와 자회사를 합해 모두 28개가 된다. 임기가 3년이어서 해마다 3분의 1은 바뀐다. 그분 중 2월 말이 되면 지역사나 자회사 모두 인사가 만사니까 기다리고 있다. 그때 마침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이 논문 표절 사건으로 그만뒀다. 2월 말이 지나고 3월 초가 지나가고 있는데 인사가 안 나니까 회사가 일이 안 된다. 다행히 김문환 방문진 이사장이 빨리 선임됐다. 임시이사회 전에 김 이사장과 나와 MBC 임원들 서너 명이 같이 만났다. 인사를 나 혼자 독단으로 하면 안 돼서 그 당시 MBC 이사들과 상의하고 있었는데 (인사 지연) 형편이어서 빨리 인사해야 하는데 계속 청탁도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원래 인사 때 지역사와 자회사 사장 청탁이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들어왔다. 그래서 인사하려면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온통 시끄럽고 그런 부탁이 많이 와서 김 이사장과 두세 번 만났다. 김 이사장이 내 얘기 충분히 듣고 명분에 동의를 했다. 내가 그래서 지역사 사장과 상무 등을 내정했다. 방문진 이사 9명 중 기분이 상한 분이 있었다. 그분들이 부탁하거나 나한테 추천할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럴 시간 전혀 없었다. 바로 내정을 했으니까. 그래서 내 해임안을 올렸다. 임시이사회를 열어서 나 보고 와서 설명하래서 이사회에 출석해서 ‘이러이러한 청탁이나 부탁으로 인사를 오래 하니까 회사와 지방, 자회사도 흔들리고 있다. 인사가 만사 아니냐. 지금 MBC 사장이 가진 건 인사권밖에 없지 않느냐. 그래서 급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사장이 바뀌어 이사장과 급하게 상의해 3월을 넘기면 안 돼서 그랬다’고 이사회에서 다 설명했다. 내정한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 있으면 지금이라도 다시 인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나간 후 표결에 들어가서 5대 4로 해임안이 가결됐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의 모습.
-방문진 해임 후 주주총회 전에 사표 낸 이유는 뭔가?
“결국 나는 해임됐고 방문진 이사회는 끝났지만 주주총회가 남았다. 주총이면 김문환 이사장이 방문진을 대표해서 결정하고 그 당시 정수장학회는 최필립 이사장이었다. 최 이사장이 나한테 전화해서 주총 전에 MBC에서 나가지 말라고 했다. 방문진에서 의결했는데 최 이사장은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다고 생각 안 했다. MBC 역대 사장 중 가장 소신 있게 한다고 생각했다. 최 이사장은 내가 MBC 사장으로서 돈을 받았다든지,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친 게 아니라 지역사 사장 선임 과정으로 방문진 이사회에서 5대 4로 해임 결의한 것에 분노했다. 주총에서 김문환·최필립 이사장 두 명이 결정한다. 주총에서 통과 안 될 수 있지만 그 당시 상황이 MBC에서 내가 버티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방문진 의결이 뭐가 되며 최 이사장이 주총에서 반대하면 노조와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최 이사장은 내가 물러설 이유가 없다며 이사회 결정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사표 쓴 건 최 이사장이 권유한 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사표 내지 말라고 했다. 만약 내가 사표 안 냈으면 주총에서 대주주 두 명이 해임 결정 안 하면 해임 안 되는 거였다. 김 이사장도 내가 사표 낸 이후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봐서 내가 결정한 거다.”

-퇴직위로금을 못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관행대로 전직 사장들에게 퇴직 위로금을 다 줬다. 나는 MBC에서 고문료도 받은 적이 없다. 김종국 사장 등도 고문료를 다 받았다.”

-업무상배임 유죄 확정판결이 귀책사유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MBC에서는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나 역대 MBC 사장이 회사를 위해 경영적인 판단으로 법인카드를 쓴 거고, 1조8000억 원 버는 회사에서 1130만 원 소명 안 됐다고 배임이라고 할 수 있겠나. 노조와 MBC 경영진의 이념 싸움 때문에 불거진 일이다. MBC 경영진은 사실 나에 대해 다 우호적인 사람들이다. 나도 재판 3심까지 갈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대법원까지 안 갔다. 벌금 2000만 원 내고 털었다.”

-뮤지컬 기획 일도 하는데 위로금은 왜 필요한가?
“명예를 위해서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MBC에서 위로금을 주면 ‘MBC 나눔’ 같은 곳에 기부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앞으로 (퇴직위로금) 재판을 통해 내가 원하는 건 공영방송 MBC 사장을 방문진 이사 9명이 결정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방문진은 여야 6대 3으로 나뉘어 매번 싸우는데 원래 방문진은 정치권과 권력에서 독립하기 위해 노조 투쟁으로 이뤄낸 거다. 그런데 지금의 방문진이 MBC와 사회, 시청자를 위해 노력하는 곳인가. 이번 재판을 통해 방문진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낼 생각도 있다. 정치권 야합에 의해 구성된 지금 방문진은 심각한 문제다. 재판 과정에 많은 기자가 왔으면 좋겠다. 나보고 기자회견을 하라고 하면 할 생각이다.”
 
-위로금 받으면 기부할 생각도 있나?
“진행되는 걸 보겠다. 내가 승소하든지 간에 결과가 나오면 마지막에 결정하겠다.”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도 김 전 사장의 업적이 충분히 있고 공로금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는데, 또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말로는 MBC 쪽에서 귀책사유가 있다고 했다던데?
“내 귀책사유가 뭔지를 내가 묻고 싶다. 귀책사유가 있다면 나한테 설명해 줘야지. (방문진 해임 사유는 임명권 침해였던 건데) 지역사 임원에 대한 것은 사장이 인사를 해서 방문진과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김문환 이사장이 취임하고도 인사가 안 되고 있었다. 인사를 오래 안 하면 시끄러워서 회사를 위해서 내가 욕을 먹고 김 이사장이랑 두세 번 만나서 내정한 거다.” 

-방문진 이사들과 협의를 안 한 건 맞나?
“원래는 그 전에는 내가 다 협의를 했다. 방문진 이사 9명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때 상황이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다. 왜냐면 나는 그때가 인사에 있어서 너무나 중대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 MBC 경영진이 김 전 사장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그건 내가 모른다. MBC에서는 조정을 안 하고 소송으로 가겠다는 거다. 공영방송에서 나는 좌우지간 귀책사유가 없는 사람이다. 소송을 하든 조정을 하든 귀책사유가 나한테 있다는데 그 귀책사유가 뭔지 지금이라도 설명해 달라는 거다.”  

지난 2012년 2월3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정권의 방송, 편파방송 MBC의 죽음을 선포하는 노제’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영정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럼 왜 퇴직 후에 이제야 소송을 제기했나?
“MBC에서 나온 후 1년이 지나 일반 백성이 된 다음에도 언론에 계속 내 얘기가 나오는데, 마치 내가 퇴직한 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왔다. 내가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받고 1130만 원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썼다고. MBC 사장은 법인카드 쓰는 순간 바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뜬다. 나도 본사 사장되고 한 달은 법인카드 쓰면 누구랑 어디서 식사했다, 얼마 썼다고 적어냈다. 지방사 사장할 땐 그랬는데 본사 비서실에서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이 이요원인데 미실이 고현정이 떴으니까 드라마본부장이 이요원이랑 밥 한번 먹자고 그래서 밥 먹는데 그냥 갈 수 있나. 그래서 비서보고 선물 사오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법인카드 쓴 거다. 퇴직 1년 정도 지나고 나서 김문환 이사장과 김종국 사장, 이후 안광한 사장에게도 얘기했다. 마치 내가 모든 걸 다 뒤집어쓰고 나간 사람처럼 됐다. 다 같이 싸움했는데 장수인 나만 토사구팽당하지 않았냐.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토사구팽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갯마을에서 자라서 MBC에서 울산·청주 사장 거쳐 본사 사장된 건 영광스러운 일다. 그래서 노조와 강력한 투쟁이 있었지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 다 후배들인데 내가 우리 노조에 아픔을 주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험한 사람이 아니다.”

-노조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해직자들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마지막에 해직됐던 이근행과 정대균 수석부위원장을 복직시킨 게 나다. 그때 많은 간부가 반대했다. 난 순차적으로 해직자 문제를 풀어갈 생각이었다. 후배 해고시켜 뭐가 좋겠나. 미안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죽을 때까지. 미안한 감정 갖는 게 사나이다. 일을 하다 보면 피해자가 생기니까. 지금은 내가 일반 백성으로 보면 안타깝다. 아직까지 해고자 문제를 풀지 못하는 MBC 경영진도 안타깝다.”

-MBC 경영을 위해 노조와 대립이 불가피하다 생각했나?
“그렇지 않다. 노조도 내 후배들 아닌가. 나보고 노사관계 대립으로 고통스럽게 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임기 중 90%는 일했다. 10%는 노사문제였다. 노조에서 하는 얘기는 이념과 자기 소신에 대한 건데 그건 제일 마지막에 해결하자고 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고 국민과 시청자에게 봉사하고자 했다. 나는 무능한 사장이었다는 얘기를 제일 듣기 싫었다. 김재철은 콘텐츠 없는 무능한 사장이라고 그걸 우리 임원이 들으면 안 된다. 중요한 건 콘텐츠다.”   

-그럼 왜 노조와 170일 파업까지 갔나
“인사권을 나한테 자꾸 뺏어가려 하니까.”
 
-단체협약과 보도 공정성 문제도 있지 않았나?
“단협이야 많이 양보했다. 나도 할 만큼 했다. 그리고 서서히 해야지 우리 거를 자꾸 (달라고 하니까). 나도 사장이고 경영진인데 MBC 조직 3000명, 그룹 28개를 이끌어가려면 인사권을 강력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인사파일을 보면서 인사를 완벽히 꿰고 있다. 노조는 내 인사 전문성을 인정 안 해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으면 나를 갈수록 이해하기 시작했을 텐데, 왜냐면 실적이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내가 2013년에 나왔는데 2012년 12월에는 MBC가 1조8천억 원 매출을 달성해서 직원들에게 보너스 1300%를 줬다. 우리 노사 간 이익을 얼마 이상 내면 더 주는 규정이 있다. 원래 1000%씩 주다가 300%를 더 줬다. 내가 있을 때 3년 연속 흑자였다.”
 
-지금 사측은 170일 파업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졌다는데
“파업으로 인해 회사가 고통을 겪은 건 사실이다. 신문과 달라서 방송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기획이 1년 전부터 돼 있어야 한다. 파업 여파가 왜 없었겠나. 회사가 170일 파업하고 회사가 쑥쑥 갈 수 있겠나. 회사는 파업하면 절대 안 된다. 난 절대 파업하기 싫었다.”

-그러면 결국 인사권 때문이었나?
“인사권을 내놓으라고 그러니까. 사람을 쓰고 하는 건 사장의 고유 권한이다. 마지막에 나랑 170일 파업 중에 정영하 그 당시 노조 위원장이 나랑 만나자고 해서 따로 만났다. 그때 올림픽 있을 때였다. 만나서 정 본부장이 보도국장과 보도제작국장, 편성국장, 시사교양국장, 라디오국장 5국장을 2배수로 노조에서 추천할 테니까 그중에서 한 사람만 선택하면 지금 바로 파업 풀고 지금까지 사장에게 무례하고 인신공격한 거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걸 못 받겠다고 한 건가?
“내가 못 받지 어떻게 받나. 인사는 사장의 고유 권한인데. 노조에서 2배수 추천해 오는데 내 마음에 안 맞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나보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나는 정말 험난한 고비를 건너서 영광스럽게 MBC 사장이 됐는데 정말 콘텐츠를 위해 모든 걸 다하고 싶다고. 만약 내가 오늘부터 하루를 더 하더라도 MBC 사장답게 할 거다.”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정영하 언론노조 MBC본부장(왼쪽)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나오는 김재철 사장에게 거취를 묻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혹시 이번 소송이 백종문 녹취록 사태와 관련이 있나? (‘백종문 녹취록’에는 김 전 사장에게 퇴직위로금을 주고 싶어도 방문진에서 승인해 주지 않아 못 줬다고 나온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오로지 뮤지컬에만 빠져 있고, 그동안 뮤지컬 만들고 일하느라 소송을 못 했다. 그런데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서 이번에 소송을 낸 거다.”     

-무용가 정명자씨와의 관계 의혹은?
“그건 아무 문제 없다는 게 밝혀졌지 않았나. 내가 개인을 위해 그분에게 공연을 준 것도 아니고 MBC에서 프로그램을 위해서, MBC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그분에게만 쓴 것도 아니다. MBC 경남에서도 창사 1주년 기념으로 뮤지컬 햄릿을 공연했는데 너무 잘 됐다. 그걸 도서 벽지 4군데서 하면 참 좋겠다고 해서 3억5000만 원이 들었는데 회삿돈 한 푼도 안 줬다. 모두 협찬받아서 했다. 회사 모든 행사는 다 협찬받아 한 거다.”  

-법인카드 사용이랑도 상관없나?
“그분이랑 식사 한번 했다. 그분이 왜냐면 대한민국 최고의 무용가고 연출도 하고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은 옆에 둬야 할 거 아니냐. 가장 전문가를 만나야 할 거 아니냐. MBC 사업이랑 관련된 거였다. 그리고 내가 다 판단해서 하는 거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경영자 중에서 배임에 안 걸릴 사람이 누가 있겠나. (사적으로 법인카드 쓴) 백종문도 다 배임이다. 회사에서 골프 치러 간 것도 다 배임이다. 그러면 회사를 위해서만 일해야지. 회사 얘기 없는 건 다 배임이지.” 

※ 6월10일 추가 전화 인터뷰
-정명자씨 관련
“정명자씨와 식사는 한번이 아니고 아마도 그때 말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 정확하게 20여 차례 만난 건 맞다. 손남희 일본지사장도 30번 더 만났다.”

-이요원씨 관련 
“‘선덕여왕’이 시청률이 높았고 우리 회사에 도움을 준 드라마여서 드라마본부장이 (고현정만 떴으니) 미안하니까 이요원씨에게 인사를 한번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내가 직접 백화점에 가서 목걸이 같은 걸 사준 것 같다. 120~130만 원짜리 좋은 것 사줬다. 우리 회사에 너무 귀한 분이고 탤런트니까. 나는 회사에 필요한 돈은 쓴다. 일을 위해서 쓰는 거다.”

-법인카드 배임 관련
“선물은 이요원씨만 준 게 아니라 MBC 진행자 중에서 잘하는 사람은 가방도 사줬다. 식사도 하고 격려도 하고. 또 회사에 기여하고 도와준 사람들은 30만 원짜리 스카프나 70만 원짜리 가방을 사줬다. 손남희씨도 하나 줬고 정명자씨한테도 가방 하나 사준 적 있다. MBC는 예능이나 드라마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하다. 나 있을 당시 최우수 사원 10명을 뽑아 그중 3명에겐 현금 1억을 연말에 격려금으로 줬다. 나머지 7명은 5000만 원씩 줬다. 사장보다 돈 더 받는 사원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사니까. 모 PD는 프로그램 끝나고 남미로 6개월 유학도 보냈다. 우수한 사원은 예전에도 그렇게 해왔다.”

김재철 전 MBC 사장(우)과 특수관계였던 정명자씨(중앙)와 정씨의 오빠이자 MBC 중국 지사장으로 특별 채용된 정아무개씨(좌). 사진=전국언론노조MBC본부 '파업채널M' 블로그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내가 사장하는 동안 우리 집사람이 강남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적은 있다. 식당이란 게 50평짜리 식당인데 손해가 나면 얼마나 났겠다. 이익을 많이 못 내고 손해 본 건 사실이나 사는 데 지장 있을 정도 아니었다. 지금은 문 닫았다. 내가 아버지 유산도 받았고 시골에 아직도 땅이 좀 있다. 내 형님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거나 KIST에서 연구실장도 하고 있어 우리 식구 중 경제에 쪼들리는 사람 없다. 밥 먹고 살 만하다. 내가 생활고 겪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해직자 문제만큼 ‘시용 기자’ 뽑아서 갈등이 커졌다 
“내가 사장 됐을 때 시사제작국 PD 전원이 MBC 출신이었다. 1년차부터 국장까지. 시청자를 상대하는 언론 측면에서 물이 고이면 썩는다. 그 당시 파업 때 기자와 보도국 분위기는 노조원 아니면 죽음을 의미했다. 용기 있게 노조 탈퇴하겠다 하지 못한다. 보도국 후배 기자들을 몇 번이나 설득해도 리포트를 안 하겠다는데 어쩌나. 기사를 쓴다는 사람이 없어서 고육지책이었다. 이번 기회에 경력 사원을 채용해 회사 분위기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사람을 바꿔 새 피로 조직을 바꾸려던 거였다.”

-파업이 끝나고도 제작에 참여 못 한 기자·PD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배 중 우수한 사람은 다시 써야 하는데 여야 어느 길로도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MBC를 위해 시청자만 보고 보도하라는 거다. 나는 보도국장에게 전화는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안 했다. 기사 빼라고 한 적도 없다. 아예 간섭을 안 하는 스타일이다. 방향만 보고 있다가 문구가 좀 이상하면 ‘그건 너무 그렇게 가면 안 된다.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다시 생각해 봐라’ 이 정도는 내가 충고한다.” 

-실제로 보도에 대한 압박과 ‘PD수첩’ 등 프로그램 통제도 문제가 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잉 충성하는 사람이 눈에 안 보이는 데 꼭 있다. 밑에 있는 국장이나 임원, 특보들이 다 사장 눈치 보고 많이 하지 않나. 요즘 MBC든 KBS도 마찬가질 텐데 방송국 국장이나 임원이 되면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자기 권력이 생겼다고 설치는 사람들을 굉장히 경계해야 한다. 난 많이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런 소식이 들리면 다시 그 사람 이력을 들여다봤다. 후배들에게 강제적으로 리포트를 하라마라고 하면 안 된다.” 

-정권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지 않나
“예를 들어 한·EU FTA로 대통령이 유럽에 있을 때 실제로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화한 적이 있다. ‘국가의 FTA를 보도하는 데 KBS는 생중계를 하는데 MBC는 왜 중계를 안 하냐’ 그러면 난 KBS는 1TV, 2TV가 있지만 MBC는 채널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사장할 때 당당하게 얘기했다. 사람들이 나보고 MB 부역자라고 몰아세우지만. 난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단지 그 시대가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시기 때문에 내 운명처럼 그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내가 변명할 의사도 없다.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난 후배들보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치사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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