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미디어오늘이 어렵게 만난 김재철씨(전 MBC 사장)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억울하다고 했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MBC에 소송을 냈다고 했다.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으로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김씨는 2013년 3월 방송문화진흥회가 김씨의 해임안을 의결하자 자진 사퇴했다. 쫓겨난 게 아니라 제발로 걸어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었겠지만 그에게 회복할 명예 같은 게 있는지 의문이다.

미디어오늘이 김씨의 장황한 인터뷰를 가감 없이 전문 게재한 건 MBC의 추락을 촉발시킨 김씨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도 딱하지만 이런 사람을 내세워 멀쩡한 방송을 정권의 노리개로 만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실체를 바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재철은 떠났지만 김재철의 후예들이 여전히 MBC를 장악하고 있고 김재철에 저항하다 쫓겨난 언론인들은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건 방문진의 해임안이 단순히 지역MBC 사장 인사를 방문진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방문진은 당시 논란이 됐던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을 문제 삼지 않았고 사상 최장의 파업과 해고 사태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무용가 정명자씨와의 추문도 그냥 덮고 지나갔다. 왜냐, 방문진과 김재철이 한통속이었고 MBC의 몰락이 정권 차원의 기획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합리화로 점철돼 있지만 김씨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은 있다. 김씨는 “대통령이 유럽에 있을 때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화해 KBS에선 생중계하는데 왜 MBC에선 안 하느냐고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과잉 충성하는 사람이 꼭 있다”면서 “그 시대가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시기 때문에 내 운명처럼 그 시대가 다가온 것”이라며 “변명할 의사도 없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권 차원의 압박과 편향 보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대선) 캠프 출신보다 더 캠프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던 자가 사장 자리에 앉더니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기자·PD들의 손과 발을 묶고 공영방송을 정권에 제물로 바쳤다. 형편이 곤궁해서 나타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돈 때문이 아니라고 변명하긴 했지만 이제 와서 “다 내 후배들이고 (해직자들에겐) 죽을 때까지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건 진정성 여부를 떠나 후안무치한 일이다. 이게 MBC의 수준이다. MBC는 여전히 김재철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