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직원 110만원.
2014년 10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직원 월급 내역’이라는 글이 주장한 이상봉 디자이너실의 월급이었다. 한글을 사용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상봉 디자이너실에서 청년들의 패션을 향한 열정을 이용해 열악한 페이를 지급한다는 고발이었다. 이를 고발한 패션노조는 이상봉 디자이너를 대표 청년착취대상자로 지목해 ‘착취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상봉 디자이너는 “패션업계 젊은이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패션업계 전반의 문제점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이후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쓰이던 ‘열정페이’라는 단어는 일반명사가 됐다.

그 사이 ‘열정페이’를 고발한 패션노조 베트맨D(가명)씨는 고소를 당했다. 패션노조가 인터넷 게시물에 사용한 이상봉 디자이너의 사진 2장이 저작권법에 걸린다는 이유였다. 패션노조가 사용한 게시물에 포함된 사진 2장은 사진작가 이모씨가 찍은 이상봉 디자이너의 누드사진으로, 저작권은 이모씨에게 있다. 이모씨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베트맨D씨를 고소했다. 

▲ 패션노조가 이상봉 디자이너실의 열정페이를 고발하기 위해 사용한 인터넷 게시물. 왼쪽포스터에서의 누드사진과 오른쪽 포스터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의 사진이 사진작가 이모씨의 사진이다. 사진=패션노조
검찰은 베트맨D에게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으며, 베트맨D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지만 지난 7일 서울 남부지법은 벌금 200만원 형을 또다시 선고했다.

2014년 게시물을 만들 당시 베트맨D씨는 저작권 침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D씨는 10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공익 목적이었고 일반적으로 공인들이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것을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소를 당한 것 자체에 황당함을 느꼈다고 한다. 2014년 처음 이상봉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고발 이후 2015년 1월 이상봉 디자이너가 사과문을 발표했고 2월에는 디자이너연합회와 함께 패션계 대우개선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대화하고 뒤로는 고소를 한 셈이라고 베트맨D씨는 말한다.

“처음에는 정말 황당했다. 고소사실을 안 것은 2015년 10월이었다. 4월 달에 고소를 했더라. 그 해 초에는 패션계 대우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며 대화를 해놓고 고소를 한 거다. 앞으로는 대화하고 뒤로는 압박하고. 2월 달에 만났을 때 나의 신상을 자세하게 물어보더니 고소를 위한 거였었나 싶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직접 고소를 한 것이 아니라 사진작가가 고소를 한 것도 특이사항이다. 이상봉 디자이너와 해당 사진작가는 누드사진을 찍을 정도로 친분이 있기에 이상봉 디자이너도 고소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했다.

▲ 2014년 10월 패션노조 회원들이 서울 패션 위크 행사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무급 인턴,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 휴일 없는 장시간 노동 등 패션계의 부당한 노동 실태를 알리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그 사진작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상봉씨와 절친 이라는 것은 안다. 개인적 추정이지만 서로 이야기가 됐을 것으로 본다. 사실 이상봉씨가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우회적으로 나선 게 아닐까. 고소사실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이후 패션업계 대우 개선을 위해 함께 대화해온 디자이너연합회(회장 이상봉)측과의 대화도 사라졌다고 베트맨D씨는 말한다.

“2월부터 대화를 하면서 이상봉 디자이너 측이 국회에 나가서 노동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언을 하기로 했는데 아프다고 안 나왔다. 실망스러웠다. 그런데도 디자이너연합회는 공식입장 하나 없다. 계속해서 디자이너 연합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5월에 알바노조, 청년유니온과 같이 이상봉 디자이너를 뿅망치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제 완전히 갈라섰다.”

▲ 지난 5월 패션노조, 알바노조, 청년유니온은 열정페이 해결을 방관한 이상봉 전 한국패션디자인연합회장을 규탄하는 포퍼먼스를 보였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번 재판과 관련해 이상봉 디자이너 측은 사진저작권자의 고소일 뿐 이상봉 디자이너 측과 공식적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이상봉 디자이너 측은 1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에 대한 고발 문제와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사진저작권자가 고소를 한 건이고 이상봉 디자이너 측은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선례 남기고파 항소 결정”

10일 베트맨D씨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200만원을 내린 재판에 항소를 결정했다. 그는 이미 지난달 13일 재판 때 “이상봉 디자이너와 같은 공인을 대상으로 패러디하거나 풍자하는 활동은 표현의 자유”라며 “표현의 자유의 한 실현방식을 저작권법 위반을 이유로 제재한다면 관련 민간 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 있다. 같은 생각으로 항소를 진행하는 것이다.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200만원 벌금형에 대한 모금활동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베트맨D씨가 사용한 사진 2장이 저작권법에 위반되느냐 공정한 이용이느냐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저작권법에 위반된다고 하더라도, 벌금 200만원형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사진을 사용한 것이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판단 법무법인 <강> 구주와 변호사는 "공인여부와 저작물권 인정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작권법 위반은 맞다"며 "하지만 영리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벌금 200만원은 과하다"고 말했다. 구주와 변호사는 "초상권 침해로 민사소송이 진행됐다면 위자료 형식으로 200만원형이 적절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해당 건은 민사소송이 아니기 때문에 기소유예나 더 낮은 벌금형이 나오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 사진=pixabay

해당사진이 영리목적이 아닌 공정이용이기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해당 사건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오픈넷 측은 베트맨D씨의 항소에 법률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베트맨D씨는 지난 재판에서 변호사의 고용 비용이나 시간이 지체되는 등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았기 때문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픈넷과 함께 하기로 했다.   

애초에 항소 예정 없이 모금 활동만 하려했던 베트맨D씨는 “오픈넷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고, 좋은 선례를 함께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항소를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며 10일 항소장을 접수했다.

오픈넷의 박지환 변호사는 “저작권법의 공정이용 조항에 따라 비영리적 이용에 대해서는 시사보도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저작권자 이용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며 “비판 목적으로 사진 저작물을 이용했기에 정당한 이용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항소를 돕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오픈넷에서는 2015년 8월 NGO단체(전쟁없는세상)를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소송을 공정이용 조항으로 방어한 적이 있다. 당시 NGO단체는 채식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블로그 글에 인터넷에서 찾은 광어회 사진을 사용했다. 광어회 사진의 저작권자는 이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시 1심 법원은 사진을 이용한 목적이 영리적이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손해배상소송을 기각했다. 오픈넷은 이번 패션노조의 사례도 비영리적인 사진 인용이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오픈넷은 저작권법을 가지고 공인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지환 변호사는 “외국에서는 공인들이 저작권법을 악용해 비판을 막는 사례가 있다”며 “이상봉 디자이너 건은 이상봉 디자이너가 직접 고소를 한 것은 아니만 정당한 비판에, 저작권법이 취지와 다르게 이용되는 부분이라고 보기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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