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적 제안은 두 가지 질문을 거쳐야 한다. 그 사회적 제안이 정당한가? 이 질문을 넘어서면 두 번째 질문이 기다린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다니엘 라벤토스(Daniel Raventós)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 교수(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3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강연을 통해 스페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빈곤선(poverty threshold)에 상응하는 기본소득의 재원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라벤토스 교수 연구(기본소득 : 주민의 물질적 생존을 보장하는 합리적 안, Basic Income : A Rational Proposal Guaranteeing the Material Existence of the Population)에 따르면 성인에겐 1인당 연 7500유로(약 1000만원), 미성년자에겐 1인당 연 1300유로(약 170만원)를 지급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또 하나의 거대한 주제이므로 따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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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탓에 정당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또한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와 최근 심화하는 불평등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오해’들을 비판하며 라벤토스 교수는 “기본소득도 수많은 경제정책 중 하나일 뿐”이라며 “상위 20%가 손해보고, 하위 80%가 이득 보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라벤토스 교수는 실제 스페인 국민 약 2000만 명의 국가재정연구소 소득세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해당 자료는 2010년 개인소득세 신고를 기준으로 했는데 이때가 가장 극심한 스페인 경제위기 때였다”며 “그래서 정치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추가 재원마련도 가능할 수 있다. 보통 기본소득 관련 연구가 다수의 인터뷰, 설문조사 등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자료의 신뢰도가 떨어지지만 라벤토스 교수의 연구는 실제 데이터였기 때문에 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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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구는 기본소득에 대한 기준들을 설정해놓고 이를 충족시켰다. △조세개혁 이후 적자가 나지 않아야 하며, 이전에 징수하던 것은 손대지 않아야 한다 △소득분배의 성격이 누진적이어야 한다 △현 상황보다 조세개혁 이후에 절반 이상의 국민의 순소득이 증가해야 한다 △조세개혁 이후에도 실효세율이 너무 높지는 않아야 한다 등 4가지 기준이다.

라벤토스 교수는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며 몇 가지를 강조했다. 일단 현재 스페인에서 지급하고 있는 각종 현금지원에 대해서는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현금지원들을 없애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재 받는 현금지원과 기본소득 중 높은 것을 받는 것이다. 부자들이 기본소득을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결국 세금을 많이 거두게 되기 때문에 상류층까지 이득을 얻는 건 아니라고 했다. 개인소득세를 거둬 지출하고 있던 교육, 의료 등 공공지출 관련 예산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국방예산이나 스페인왕가 관련 예산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라벤토스 교수는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단일세율 49%로 조세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통계에 잡히는 약 3430만(성인 약 2800만, 미성년 약 650만명)과 통계에 잡히지 않는 940만명 등 총 4370만명의 시민과 합법적 거주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가 비용이 511억200만유로가 필요하다. 이 돈은 어떻게 충당할 수 있는지 보자.

개인소득세 자료를 보면 소득세 신고그룹(소득이 통계에 잡힌 사람들)과 미신고그룹이 있다. 미신고그룹은 보통 가난해서 소득세 신고 의무가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해당 비율은 전체 스페인 인구의 20%정도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기존 현금지원을 대체하게 되므로 절약되는 예산이 있다. 이 비용이 992억2200만 유로(약 122조원)이다. 소득세 미신고그룹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628만5467만 유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시행하기만 해도 소득세 미신고그룹에게 기본소득을 다 지급하고도 293억6762만 유로가 남게 된다.

나머지 금액은 현재 세금신고를 할 의무가 없는 사람들에게 단일세율(49%)을 적용해 거둬들이는 액수인 217억3438만 유로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위 표를 보면 10%(하위 10%)는 기본소득 이전에 0.15%의 세금을 내다가 기본소득 시행 이후 –209.23%로 소득이 늘어난다. (-는 소득증가, +는 세금) 자료에 따르면 소득 하위 70%까지 기본소득으로 혜택을 보게 된다. (70% 계층은 세율이 기본소득 이전 9.84%에서 기본소득 이후 6.23%로 줄어든다) 결국 라벤토스 교수의 연구처럼 기본소득이 시행될 경우 상위 20%에게 좀 더 걷어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소득재분배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320억 유로가 상위 20%로부터 하위 70%로 이전될 것이다.

재분배의 효과는 확실했다. 소득이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살펴보는 수치인 지니계수(완전 평등할 경우 0, 완전 불평등할 경우 1)가 기본소득 이전에 0.3664였는데 조세개혁을 해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나면 0.2502로 떨어졌다.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의 지니계수가 0.2대다.

비판받는 지점은 있다. 반드시 상위 20%를 모두 부자라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스페인의 총소득의 중앙값은 1만6090 유로지만 평균소득은 2만3000유로다. 두 값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상층 꼭대기에 큰 수치가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다만 라벤토스 교수는 “스페인 상류층의 조세회피와 사기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유럽연합 평균 수준만 돼도 기본소득 재정을 충당하는 것은 애들 장난같은 일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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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토스 교수는 기본소득은 단일한 모델이 있는 경제정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현실에 맞춰 조세개혁을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고 봤고, 자신의 연구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해당 연구는 개인소득세만을 통해 빈곤선 이상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상류층의 조세회피, 금융거래세·환경세, 자산에 대한 세금 등 다양한 재원조달 방식을 통해 추가 연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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