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보편적 시청권’에 관해 열변을 토하면 국제 스포츠경기가 임박했을 가능성이 크다.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사인 국제 스포츠 경기에 대해 국민 누구나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KBS는 지난달 3일자 ‘보편적 시청권, 정책은 뒷걸음’ 리포트로 운을 띄웠다. KBS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보편적 시청권)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상파 3사가 보유한 올림픽과 월드컵의 주요 영상을 유료 방송인 종합편성 및 보도 채널까지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허가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1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 뉴스9는 지난 1~2일 이틀 동안 3개 리포트를 통해 ‘보편적 시청권’을 강조하고 방통위를 비판했다. 1일 리포트에선 “종합편성채널이 가세하면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국부유출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경우는 이 같은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이 모여 J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유료방송 탓에 중계권료가 지나치게 비싸지는 걸 막기 위한 방송사업자 컨소시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KBS는 2일 “자본력을 앞세운 유료 상업방송이 스포츠중계권 확보에 뛰어들 경우 지상파만 수신하는 많은 저소득층은 소외되는데도, 방송통신위원회의 배려는 없다”고 우려했다. 다음 리포트에선 “영국과 독일, 호주 등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 행사의 경우 무료 지상파가 우선적으로 중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표면적으로는 타당한 것 같지만, 문제가 많다. KBS가 러시아올림픽 예선 중계권을 두고 협상 중인 가운데 자사에 유리한 내용을 요구하는 자사이기주의 보도인 것도 문제지만 모순도 적지 않다. KBS의 과거 보도로 최근 KBS 보도를 반박할 수 있을 정도다. 

첫째, KBS는 지난달 3일 보도에서 중계권이 없는 방송사에 대한 ‘주요 장면 및 자료화면 무상제공’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앞뒤가 맞지 않다. 이 주장은 방통위가 2011년 만든 ‘보편적 시청권 금지행위 세부기준’ 가운데 “중계방송권자가 보도 권한이 있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 등에게 자료화면을 무료로 제공하지 않는 것을 금지행위로 정한다”는 조항과도 배치된다. 지상파가 경영난에 처한 상황에서 유료방송에 자료화면을 팔고 싶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해당 조항을 도입하라고 요구한 건 다름 아닌 KBS였다.


▲ 2010년 2월8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2010년 벤쿠버올림픽 당시 지상파3사 공동협상이 깨지고 SBS가 독점으로 중계권을 가져가게 되자 다른 지상파방송이 올림픽을 취재하거나 뉴스에서 자료화면을 내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당시 KBS는 2010년 2월8일 뉴스9에서 “(KBS는) 중계는 물론 보도와 예능교양프로그램 취재도 모두 봉쇄돼 올림픽 방송 노출량은 크게 줄어든다”면서 “방송자본에 의한 스포츠 독점중계는 사회통합기능 약화는 물론 가격상승을 통한 국부유출등 부작용을 불러온다”고 크게 우려했다. 

▲ 2006년 8월 KBS 8뉴스타임과 뉴스9 화면 갈무리. 당시 SBS가 중계권을 독점하자 KBS는 SBS에 대한 비판 보도를 여러차례 내보냈다.

둘째,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스포츠 케이블방송 엑스포츠를 소유한 IB스포츠가 2005년 최초로 지상파를 제치고 국제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따낸 이후 지상파가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이후 방송법에 국민적 관심사인 스포츠경기는 ‘90% 이상’ 시청자가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 시청권 개념이 법제화 됐다.

당시 KBS의 주된 논리는 “케이블이 중계권을 가져가면 못 보는 시청자가 많다”는 점이다. IB스포츠가 단독으로 월드컵 중계를 했던 2006년 3월6일 미디어포커스에서 “사상 첫 케이블 단독 중계였던 이번 경기의 시청률은 12.6%. 비슷한 시간대에 지상파 한 곳이 중계했던 평가전 경기의 시청률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전국 가구 수 30%를 넘는 엑스포츠 채널 미가입자는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아예 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후 지상파 플랫폼이 급격히 무너졌고 유료방송 시청가구가 급증했다. 이 가운데 의무재송신 특혜를 받은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이 나오자 이들도 보편적 시청권 범주에 들게 됐다. 그러자 KBS는 “종합편성채널이 가세하면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국부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못 보는 사람이 많아서 유료방송의 독점 중계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 2010년 6월25일 KBS 뉴스9 리포트 헤드라인
셋째, “종편 등 유료방송 탓에 중계권료가 올랐다”는 건 절반만 맞는 주장이다. 지상파 독점 상황에서도 중계권료는 계속 올랐다. 2006년 6월15일 KBS 뉴스9는 SBS의 독점 중계권 계약을 비판하며 “FIFA는 돈방석에 앉았는데. 독점중계를 밀어붙인 SBS가 한몫 거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06년 8월 4일 뉴스9는 “서울방송의 독점 계약으로 인해 대책없이 대문을 열어 버린 한국방송시장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는 방송권료에 속수무책”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넷째, KBS는 지상파에도 큰 책임이 있는 점을 오로지 방통위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있다. KBS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방송사 컨소시엄이 구성되지 않았다며 방통위를 비판했지만 지상파 컨소시엄은 지상파의 과열경쟁 탓에 무너진 것이다.

▲ 2010년 4월2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조대현 KBS 부사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SBS에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고, 이를 MBC가 보도했다.
SBS가 컨소시엄을 깨고 2006년 올림픽과 2010년 월드컵에 대한 단독 중계권을 따냈고, 지상파 공조는 깨졌다. 그때 KBS는 그 누구보다 SBS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자사이기주의에 함몰된 상업방송의 한계를 드러낸 것”(2006년 8월3일 뉴스9)이라고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2010년 조대현 당시 KBS 부사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SBS가 저지른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민, 형사상 소송을 제기해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와서 방통위에 책임론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

다섯째, KBS는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과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겠지만 지상파가 회원사인 방송협회는 지금껏 유료방송과 재송신 분쟁에서 “사업자간 협상에 정부가 나서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2014년 11월5일 KBS 뉴스9는 “방통위 재송신 협상 개입은 월권 행위”리포트가 대표적이다. 

▲ 2014년 11월5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사업자 간 자율적 협상에 개입하지 말라던 지상파가 유독 중계권료 협상에서만큼은 “지상파에 중계권을 우선 줘야한다” “협상에 방통위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공익성이 더 큰 유료방송 재전송 협상에는 시장논리를 앞세워 방통위의 개입을 반대하면서 스포츠중계권 협상에 개입하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