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전 MBC 사장이 MBC에 퇴직 시 받지 못한 특별퇴직위로금 2억3973만 원을 달라는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MBC 사측과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만일 김 전 사장이 소송에서 이기게 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방문진과 MBC 경영진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방문진은 2013년 3월26일 방문진의 임원 임명권 침해를 사유로 김 전 사장의 해임안을 의결했지만 주주총회에서 확정되기 전에 김 전 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자 MBC 측이 곧바로 사표를 수리하고 3억여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까지 지급하면서 김 전 사장에게 ‘마지막까지 꼼꼼히 다 챙겨줬다’는 비난을 받았다.

문제는 김 전 사장이 주총 해임 의결이 있기 전 사직 처리가 되면서 MBC 사측이 김 전 사장에게 특별퇴직위로금 등을 받을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 김재철 전 사장, MBC 상대로 2억대 퇴직위로금 소송)

이번에 김 전 사장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도 방문진과 MBC 내부에서도 비공식적으로 김 전 사장의 특별퇴직공로금 또는 특별퇴직위로금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김 전 사장이 방문진으로부터 ‘해임’돼 나갔기 때문에 방문진이 그에게 공로금이나 위로금 지급을 승인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김재철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하지만 MBC의 ‘임원 퇴직연금 지급규정’에 따르면 회사 사정으로 임기 만료 전에 퇴직하는 임원에게는 퇴직연금 이외에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 절차상으론 주총 의결 전에 방문진 의결이 필요하다.

퇴직금 등 지급제한 규정으로 ‘임원이 본인의 귀책사유로 주주총회의 해임결의에 의해 퇴임하는 경우에는 퇴직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돼 있지만, 김 전 사장은 주총 해임결의 전에 퇴직 처리됐기 때문에 퇴직연금을 받아갔다. 같은 이유로 그에게 특별퇴직위로금 등을 지급하지 않을 이유도 없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염치없다’는 비판에도 김 전 사장이 사규에 규정된 특별퇴직위로금을 왜 주지 않느냐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고 현재 이 사건은 법원 조정에 회부된 상태다. 그러나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만약 소송에서 MBC가 패소할 경우 더더욱 김 전 사장을 주총 해임결의 전에 퇴직 처리한 MBC 경영진의 책임 추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지난 1월 폭로된 ‘MBC 백종문 녹취록’을 보면 2014년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과 만난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은 김 전 사장과 관련해 “내가 10월에 이진숙 본부장과 만났는데 김 전 사장이 퇴직(공로)금을 못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김 전 사장이 선거하느라고 돈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좀 멀어지신 거 같고, 주변 사람들이 확실하게 방어막을 세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박한명 “백종문이 김재철 죽이고 이진숙 날렸다”)

2012년 10월11일 김재철 전 MBC 사장(가운데)이 이진숙 당시 기획홍보본부장(오른쪽)과 함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에 백 본부장은 “(김 전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회복인데, 소송 문제에 있어서 회사가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다”며 “퇴직을 하면 임기를 못 채웠을 때 잔여 임기에 대한 퇴직위로금을 주게 돼 있는데 그건 주주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 회사에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주주인 방문진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그 돈을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백 본부장은 이어 “방문진의 김문환 이사장이 자기가 해임해놓고 지금 와서 ‘내가 그 돈을 줄게. 고생했다’ 이럴 그런 상황이 아니고 그럴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방문진이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라며 “사장이 그만두고 재직 중에 회사를 위해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면 공로금도 주게 돼 있는데 그것도 역시 방문진에서 승인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 본부장은 “김재철 전 사장 같은 경우에는 임기 중에 최고의 시청률, 최고의 매출, 최고의 영업이익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로금을 주는 건 당연한데도 방문진에서 안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백 본부장은 김 전 사장에게 회사 자문역을 맡기는 것에 대해서도 “안광한 사장이나 같이 일했던 동지들이 그걸 안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안 사장이 3월에 왔을 때 김 전 사장이 새누리당에 가입해서 선거에 출마했고, 그다음에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김종국 전 사장에게 자문역을 맡겼다”며 “이런 와중에 김재철 전 사장한테도 자문역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그래서 못 준 거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백 본부장의 주장에 비춰보면 안광한 사장 등 MBC 경영진은 김재철 전 사장 퇴직 이후 퇴직특별공로금·위로금을 주고 싶었지만, 김 전 사장을 해임한 방문진이 이를 승인해주지 않으리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영주 현 방문진 이사장은 2일 정기이사회에서 김 전 사장의 퇴직특별위로금 소송과 관련해 “MBC 측은 ‘김 전 사장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이건 김 전 사장의 개인 문제이고 전직 사장을 징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논의를 일축했다. 

고 이사장은 MBC 사측이 스스로 김 전 사장의 귀책사유에 면죄부를 주고선 이같이 모순적인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김 전 사장의 소 제기로 MBC가 입을 수 있는 손해에 대해서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MBC 관계자는 “만약 법원의 (위로금 지급) 결정이 나면 주주총회를 개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방문진 의결을 받아야 하는데, 방문진 이사회에서 법원의 판단을 안 따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규상 ‘퇴직위로금을 줄 수 있다’라는 게 반드시 줘야 한다는 건 아니어서 김재철 측근 쪽에서도 받기 어려울 거라는 법리적 판단도 꽤 있다”면서 “잘못하면 김 전 사장이 받은 퇴직금마저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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