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공정방송’ 파업 이후 MBC 경영진의 노골적인 ‘노조 탄압’이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게 됐다.

27일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측이 노조 간부 등의 사적 정보를 불법 사찰한 사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MBC는 안광한 MBC 사장과 김재철 전 사장, 조규승 신사업개발센터장, 이진숙 대전MBC 사장, 임진택 전 MBC 감사, 차재실 전 정보콘텐츠실장과 함께 전국언론노조와 언론노조 MBC본부에 1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또 MBC 사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MBC 등 피고들은 강지웅 전 MBC 노조 사무처장과 이용마 전 홍보국장에겐 각 150만 원을, 나머지 조합원 등 원고 4명에겐 5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관련기사 : MBC, ‘트로이컷’ 직원 불법사찰 대법원서도 패소)

이와 별도로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차재실 전 실장은 노조 파업 중 사내 보안 프로그램을 이용해 노조 간부 등의 사적 정보를 불법 열람해 고발당한 형사사건 재판에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500만 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지난 2012년 이용마 전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이 사측의 보안 프로그램 ‘트로이컷’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이번 사건은 일명 ‘트로이컷 사태’가 발단이 됐는데, 트로이컷은 MBC 사측이 노조 파업 중 사내 전체에 배포한 보안 프로그램이다. 당시 사측은 노조 파업 중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서 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IT보안강화 방안’을 명분으로 2012년 6월 ‘트로이컷’을 사내 전체에 배포했고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사원들 컴퓨터에 자동으로 설치되도록 했다.

문제는 이 트로이컷 프로그램엔 해킹을 방어하는 기능뿐 아니라 내부 자료의 유출 방지와 컴퓨터 사용자가 웹메일과 메신저, USB 등을 통해 외부로 전송·저장한 파일을 회사 중앙관제서버에 저장되도록 하는 ‘로깅(logging)’ 기능도 있었다는 점이다.

사측은 트로이컷을 통해 당시 강지웅 노조 사무처장의 파업일지를 비롯해 회사 임직원들의 이메일과 첨부 문건 등 수백 개의 파일을 MBC 관제 서버에 저장되게 한 후 이를 열람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다 노조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반발하자 9월 이 프로그램 사용을 중단했다. 

노조 측은 “사측이 파업 기간에 트로이컷이라는 악성 프로그램을 직원들의 컴퓨터에 몰래 설치해 무차별적으로 전기통신을 감청하고 개인정보를 침해했다”며 김재철 전 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2013년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1심 법원은 지난해 2월 차 전 실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강지웅 전 처장과 이용마 전 국장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차 전 실장은 형사재판 1심에서도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사측에 불법 행위의 책임을 더욱 엄중히 물으며 김 전 사장 등 5인에게도 차 전 실장과 연대해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차재실 전 실장에 대해 “직원들의 동의 없이 임의로 트로이컷을 설치해 노조와 조합원 등의 정보를 관제서버에 수집·보관하고 열람까지 함으로써 이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을 침해했다”며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안광한 MBC 사장(왼쪽)과 이진숙 대전MBC 사장 ⓒ연합뉴스
재판부는 회사와 김 전 사장 등 MBC 경영진에 대해서도 “사용자로서 차 전 실장이 정보콘텐츠실장의 사무집행에 관해 노조 측에 가한 손해를 공동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경영진도 노조 측의 사전 동의 없이 트로이컷을 설치해 개인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보관·열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거나 조장, 방조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차 전 실장과 연대해 손해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차 전 실장은 당시 경영지원본부 산하의 정보콘텐츠실 실장으로서 조규승 경영지원본부장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했다. 트로이컷의 도입과 설치는 차재실->조규승->안광한(부사장)->김재철(사장)의 결재라인으로 추진됐고, 기획예산부가 속해있는 기획홍보본부 이진숙 본부장과 예산 집행을 감사하는 임진택 감사에게도 보고됐다. 

차 전 실장은 2012년 6월12일 조 전 본부장에게 보낸 메일에서 “자료 보안시스템 구축 관련해 부사장과 기획홍보부장, 예산부장에게 설명했고 조속히 진행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본 시스템 운영에 대해 사전 홍보자료를 준비해 놓으라고 말했고, 기획본부장은 조속히 시행하자고 했으며, 예산부장은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내일 감사에게 보고한 후에 관련 품의를 올리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차 전 실장은 2012년 8월8일 열린 임원회의에서도 내부자의 USB 자료를 복사하거나 외부 전송 메일 등의 내용 등을 저장한다는 취지의 트로이컷의 기능에 관한 보고서를 배포하고, 임원들에게 작동원리를 설명해 정식 설치를 승인받았다. 

이후 차 전 실장이 10일 조 전 본부장에게 보낸 메일에선 “예정대로 IT보안강화 방안에 대해 임원회의에서 보고했다. 일전에 감사와 부사장, 기획본부장에게 개인적으로 보고를 해서인지 별다른 질문은 없었고 해킹 실제 사례에 대해 부사장이 관심 있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2012년 10월11일 김재철 전 MBC 사장(가운데)이 이진숙 당시 기획홍보본부장(오른쪽)과 함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재판부는 “트로이컷을 설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김 전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서 유출사건이었으며, 김 전 사장은 차 전 실장의 업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로서 당시 ‘공정방송 실현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외치며 파업 중이던 노조와 자의 비리 폭로 및 사장직의 유지 여부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며 “김 전 사장 역시 트로이컷의 설치와 시험운영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충분히 보고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결국 노조가 MBC 정상화와 공정방송 실현을 외치며 170일 간의 최장기 파업을 하는 동안 MBC 경영진은 김 전 사장의 비리를 은폐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노조 내부 자료와 조합원들의 개인정보까지 불법으로 사찰했던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당시 실무 보직 간부였던 차재실 외에도, 김재철 전 사장과 안광한 부사장 등 경영진이 트로이컷 설치를 교사했고 그 책임으로 공동으로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는 것”이라며 “당시 경영진은 김재철을 제외하고 아직도 대부분 MBC의 주요 보직을 맡고 건재해 있는데 노조는 트로이컷 관련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도 “불법적인 걸 알면서도 성실한 사원을 해고했음이 드러난 백광문 녹취록 파문, 원칙을 무시하고 사원들을 억압해온 인사전횡에 대해 연거푸 ‘부당하다’고 한 법원의 판결이 말하는 결론은 현재의 MBC 경영진과 그 하수인들이 있는 한 MBC 정상화와 공정한 언론 기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며 “내부의 비리가 유출됐고 더 이상의 비리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내부인을 사찰하는 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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