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사측의 ‘성명서 정치’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 13일 권성민 MBC PD가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은 후 한동안 입장을 내지 않던 MBC가 24일 권 PD에 대해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시작으로 노동조합과 비판 언론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하며 ‘노조 혐오’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MBC 사측은 23일 복직한 권성민 PD의 출근길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PD협회 등이 복직 환영 행사를 연 것에 대해 “현수막을 걸어놓고 언론노조의 선배, 동료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사옥에 진입하는 모습은 자신의 해고 원인이 되었던 폭언과 해사 행위까지 정당화됐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오만의 결정판이었다”고 폄훼했다. 권 PD에 대한 1심 해고무효 판결 후에도 ‘기형으로 난 떡잎, 뽑아야 할 피’에 비유하던 MBC 경영진이었다. 

MBC는 또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서 “MBC에 속한 구성원 누구라도 권성민과 같이 회사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해사행위에 나선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고 징벌하고 이를 실천하고 실행하는 데 추호도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 지난 1월25일 뉴스타파 보도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갈무리.
이율배반이다. 지난 1월 MBC 간부들이 극우매체 편집국장 등을 만나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말하며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반헌법적인 극우 발언을 쏟아냈던 이른바 ‘MBC 백종문 녹취록’이 폭로된 지 4달이 지났지만 책임지고 물러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외려 녹취록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김석창 문화사업제작센터장은 지난 3월 10일 경인지사장으로 영전했다. (관련기사 : 백종문 “폴리뷰 편집국장 만나 법인카드 긁었다”)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은 해당 녹취록에서 “최승호(PD)와 박성제(기자)는 해고시킬 때 증거가 없지만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해고시킨 것”이라며 “소송비용이 얼마든, 변호사 수십 명이 들어가든 이건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이라고 소송을 통해 노조와 해직자들을 계속해서 압박하라고 주문했다. (관련기사 : MBC ‘백종문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합니다)

실제로 MBC 경영진은 2012년 MBC ‘공정방송’ 파업 이후 노조를 비롯해 MBC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에도 대형 로펌을 동원해 무분별한 소송을 남발했고, 대부분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24일 언론노조 MBC본부가 사측의 징계와 소송남발을 지적한 것도 MBC가 ‘법과 원칙’에 따른 경영행위를 하고 있다고 강변하기엔 모순 투성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지난 4년간 사측과 진행한 부당해고와 징계, 전보 등 소송 현황 및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노사 간 28건의 사건으로 총 73번의 재판이 열렸고, 이중 노조 측은 10번 중 9번가량을 승소한 것으로 나왔다.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 20개의 재판을 제외하고 사측이 53번의 재판에서 46번(일부 패소 8번 포함)이나 진 것이다. 

노조는 “특히 부당징계 판결은 35번으로 절반에 이르고 있으며 노조 승소 26번, 패소 2번, 진행 중 7번으로 부당징계만 놓고 보면 MBC 경영진의 불법행위 판정은 이미 열에 아홉을 훌쩍 넘겼다”며 “MBC 경영진은 잘못된 인사와 징계 남용, 불공정 왜곡보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회적 기능을 누르고 제거하기 위해 법적 대응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료=24일자 MBC노보 206호
MBC 사측의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인단은 노조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한 것만 해도 국내 6대 로펌 중 4곳(광장·태평양·세종·화우)으로 담당 변호사만 48명이나 된다. 이중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인이 1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광장’과 ‘바른’이 11명, 이어 ‘정률’(5명)과 ‘화우’(4명), ‘세종’(3명), ‘자우’(1명) 순이었다. 이와 별도로 MBC 본사에만 10여 명의 노무사와 변호사가 고용돼 있다. 

백종문 본부장은 녹취록에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등 MBC 해직자 6명에 대한 해고무효소송과 관련해 1심에서 패소했다며 “태평양에 이정한 변호사라고 우리 변호사를 맡았다 하는데 이 변호사가 그렇게 꼼꼼하게 막 치열하게 붙어줄지 자신을 못 하겠다”며 “우리 회사에는 중요한 판결임에도 (광장)변호사가 대충 적당히 하다 1심에서 졌는데,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대한민국 사회에 명운이 달려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MBC 사측은 지난해 4월 이정한 변호사 등 6명의 ‘태평양’ 변호사가 변론한 해고무효확인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재판부는 해직 언론인 6명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노조의 파업 자체는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하고 파업을 주도했거나 파업에 참가했다는 것은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같이 ‘증거 없는 해고’ 등 회사의 무리한 징계와 소송 남발을 지적하는 노조에 대해 MBC 사측은 25일 “징계 사유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노조의 소송이 두려워 징계를 망설일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회사를 부정하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직원의 해사 행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겁박했다. 

▲ 지난 1월25일 뉴스타파 보도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갈무리.
MBC 사측은 미디어오늘 기사에 대한 소송과 관련해서도 “MBC에선 세월호 유족이 황새보다 못하다”, “박근혜 ‘설화’에도 홀로 보호막 쳐주는 MBC”, “이래서 기레기? 폭행논란만 ‘요란’, 특별법은 ‘침묵’”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인정받은 바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MBC가 거론한 기사들은 1심 법원에서 MBC 보도 비평에 대해 뉴스데스크로 한정하지 않고 MBC 전체로 표현한 대목과 뉴스데스크에서 보도된 기사를 ‘주요 뉴스’라고 표현한 것이 MBC가 주장하는 ‘오늘의 주요뉴스’와 달랐다는 것뿐이다. 

오히려 재판부는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내용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MBC의 보도 태도 및 MBC의 조직 개편에 관한 것으로 공적인 관심 사안이고 미디어오늘은 MBC와 KBS, SBS 등 주요 언론사의 보도 태도를 비교하면서 비판적 의견을 제시했는데 일부는 허위 사실 적시라고 볼 수 있으나 비교 대상을 MBC 뉴스데스크로 한정할 경우 허위 사실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범위를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또 “나머지 부분이 일부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교 대상을 적절히 한정하지 않음으로 인한 것일 뿐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볼만한 사정은 없다”며 MBC의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관련기사 : “MBC는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바꿀 순 없다)

아울러 MBC가 3개의 기사로 모욕과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것처럼 늘어놓은 하나의 기사(언론단체 “조선·동아·MBC는 ‘기레기’ 아닌 ‘양아치’”)에서 ‘기레기’ 등의 표현이 MBC에 대한 모욕적인 인신공격으로서 의견 표명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과, 재판 준비 소홀로 무변론 패소한 건에 대해선 항소심에서 법리적으로 다투고 있다. 

특히 ‘모욕적 표현’과 관련해선 공인의 경우 다소 경멸적 표현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는 판례도 있으며, 최근 검찰은 ‘진실보도와 공정방송에는 등신’이라고 MBC를 비판한 시민단체 대표의 칼럼에 대해 “공적인 존재인 방송사의 공정성이라는 공적 관심사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비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언론사에 대한 비판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 태도 등에 비춰 사회상규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욕죄가 안 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MBC, 미디어오늘에 정정보도 소송 패소)

미디어오늘은 MBC가 보도자료를 통해 ‘미디어오늘의 발행인이 언론노조 위원장’이라고 하거나 ‘언론노조 MBC본부가 2대 주주’, ‘미디어스와 PD저널 등은 미디어오늘과 정치 성향이 유사한 매체로 상호간 기사와 취재원을 주고받았다’는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에 대해선 법적 대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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