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는 비명소리가 언론계 곳곳에서 들린다. “뭘 해도 안 된다”는 자조까지 들린다. 그동안 언론의 생계를 떠받쳐왔던 광고시장은 꾸준히 악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언론의 목표는 어느새 ‘생존’이 됐다. 신문과 방송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고 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 미디어오늘은 ‘한국 언론 혁신과 생존’이라는 주제로 12회에 걸쳐 언론의 다양한 시도를 조망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똑같은 올드미디어라도 방송과 달리 신문의 미래는 암담하다. 방송은 예능, 드라마 콘텐츠를 VOD(주문형 비디오)로 팔고, 클립으로 만들어 포털에 올리거나 한류에 편승해 포맷을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다. 반면 신문은 팔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콘텐츠 유료화 시도는 사실상 모두 실패했고, 포털과 공생하며 전재료를 요구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최근 신문이 포털과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섹션 운영권을 받는 새로운 사업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장밋빛 전망처럼 보이지만 극소수의 종합일간지만 가능한 일로 대부분의 언론에겐 그림의 떡이다. 콘텐츠 재가공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1020세대 취향에 맞게 포맷을 바꿔 네이버, 다음, 피키캐스트에 뿌리고 있지만 당장 길이 보이는 건 아니다. 신문은 가진 게 뉴스 뿐인데 뉴스의 유통기한마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포털 전재료, 더 안 오른다는 거 모두가 안다

신문과 포털은 공생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문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때 “뉴스를 헐값으로 만드는 포털을 무찌르자”면서 조선·중앙·동아일보 3사가 네이버 모바일에 무려 5년7개월 동안 뉴스를 공급하지 않고 버틴 적도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신문 진영은 여전히 뉴스 제값을 받기 위한 노력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의 올해 사업계획을 보면 △적정 뉴스저작물 이용대가 산정기준 조사연구 △포털 뉴스 제공방식 아웃링크 전환 검토 △신문과 포털 간 표준계약서 제정 검토 등이 있다. 개별뉴스에 대한 단가를 선정하고, 기사 트래픽을 자사로 유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신문 진영의 요구가 공허하다는 사실이다. 매년 벌어지는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언론과 동결 또는 인하를 요구하는 포털 간의 전재료 협상과정에서 언론의 협상력은 줄어들고 있다. 뉴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구글 AMP와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등 다른 플랫폼에서 뉴스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들 사업자가 전재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포털에게는 명분이 된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성공한 ‘유료화 모델’ 하나도 없다

신문은 포털에 제공하는 뉴스가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투덜대며 자체 플랫폼에 뉴스를 돈 받고 팔려는 시도를 했지만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고급 뉴스를 만들면 돈을 주고서라도 사볼 거라는 공급자 중심의 막연한 기대감이 실패 원인이었다. 

조선일보는 2013년 ‘프리미엄 조선’이라는 페이지를 도입하면서 유료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낱개 단위의 뉴스 콘텐츠에 가격을 매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동안 돈을 지불하고 멤버십에 가입하면 차별화된 고급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2016년 5월 현재 조선일보 프리미엄 페이지에서는 유료 결제 없이도 대부분의 콘텐츠를 볼 수 있다. 1등 신문이 내건 프리미엄 콘텐츠가 침몰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2012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한국 신문의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 전략 연구’에 따르면 해외와 달리 뉴스 콘텐츠가 유료화되는 경우는 없고, 다만 PDF 지면보기나 사진보기, 인물정보나 경제정보 제공, 이북(e-book)판매 등의 부가서비스 유료화만 도입된 상황이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물론, 뉴스타파와 오마이뉴스, 고발뉴스처럼 적지 않은 유료회원을 보유한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콘텐츠 구입’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후원’했다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국은 언론의 수가 매우 많아 공급이 초과상태로 가격상승이 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언론이 대부분 ‘사실에 대한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저작물로서 가치를 갖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뉴스콘텐츠의 수명이 매우 짧고, 그마저도 갈수록 짧아지는 것도 유료화를 가로막고 있다. 뉴스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 흔히 제시되는 ‘차별성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라’ ‘에버그린 콘텐츠를 만들어라’는 말은 쉽지만 살아남기 위해 클릭 유발을 위한 어뷰징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는 허무한 구호에 가깝다.

네이버 합작법인의 교훈, ‘전문 콘텐츠’ 확보

빈손이 된 신문은 다시 포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언론이 일방적인 구애를 한 것이지만, 다행인 건 포털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소위 ‘조지는’ 기사를 쓰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최근 조선일보가 네이버와 합작법인을 세웠고, 매일경제, 한겨레도 네이버와 합작법인을 통해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 종합일간지는 네이버의 모바일 섹션(주제판) 하나를 통째로 할당받는 방식으로 공동사업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섹션 ‘잡앤’처럼 네이버와 신문의 공동사업은 네이버의 유통망, 젊은 독자를 끌 수 있는 콘텐츠, 그리고 언론의 특화된 콘텐츠 데이터베이스 삼박자가 잘 갖춰진 경우에 성사된다.

해당 세션을 네이버 메인에 설정한 이용자수를 집계한 결과, 2월25일 4만 명으로 시작해 4월7일 기준 200만 명까지 크게 늘어났다. 조선일보는 사보에서 “특히 고무적인 것은 설정자가 젊은 사용자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4월13일 기준 설정자 가운데 20~30대 젊은층 비율은 72%다. 4월13일 기준, 하루 콘텐츠 클릭은 112만1198건에 달한다.

▲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네이버 모바일 섹션 '잡앤'.
조선일보의 안착을 지켜본 다른 언론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매일경제는 ‘여행과 레저’, 한겨레는 ‘영화’ 섹션을 운영하는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영배 한겨레 전략기획실 부장은 “부동산, 건강 등의 소재도 고민했으나 내부 논의 결과 자회사 씨네21이 있어서 이 분야에서 한겨레가 가장 강점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네이버와 제휴했던 기존 방식은 네이버가 언론사 콘텐츠를 도매로 사다가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므로 예전과 다르다는 판단을 했다. 잘 키우면 평생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 공급을 고민하는 것은, 신문사들이 노하우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득이 될 수 있다. 매경미디어그룹 관계자는  “합작법인에 파견된 기자들의 주 업무는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여행과 레저에 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블로그에 올려 모바일판에 노출되게 하는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신문사들이 모바일 콘텐츠의 속성과 제작경험을 체득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부분의 언론에게 이 같은 모델은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네이버와 합작을 논의하고 있는 언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제판에 넣을만한 소재와 언론이 차별화해 공급할만한 콘텐츠가 한정돼 있다 보니 많아도 10곳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와 합작법인을 만든 회사들이 주요 종합일간지라는 점에서 대형언론만 혜택을 보는 구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끊임없는 ‘재가공’만이 살 길

신문사가 가진 건 기사 뿐이다. 전통 언론시장에서는 그 자체로는 제 값을 주고 팔 수 없었지만, 다양한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뉴미디어 판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그때 쏟아지는 기사는 다른 형식의 콘텐츠로 가공해 최대한 많은 플랫폼에 퍼트리고, 뉴스가치가 사라진 기사도 데이터베이스화해 재가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최근 한겨레 등 일부 신문사들이 피키캐스트, 네이버 포스트, 다음 1분 등의 플랫폼에 디지털 세대의 취향에 맞게 재가공한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다. 같은 내용을 담았더라도 플랫폼에 맞게, 타깃 독자에 맞게 재가공한 콘텐츠가 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24일 기준 네이버포스트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언론사는 84곳에 달한다. 한 일간지 온라인 담당자는 “이미 나온 기사를 가독성 있게 만들어서 뿌리는 방식을 쓰고 있다. 특히 1분과 피키캐스트는 비슷한 면이 있어 한번 가공한 콘텐츠를 약간만 손 봐 두 곳에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 KAKAO의 1boon
1분용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는 한겨레21의 김완 디지털팀장은 “젊은 독자들에게 좋은 기사를 읽히는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1분이 가벼운 느낌의 플랫폼이고, 모바일 뉴스를 소비하는 층도 1분용 콘텐츠와 플랫폼에 익숙하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런 플랫폼에서는 무거운 내용의 콘텐츠는 안 볼 것이라는 오해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성과도 꽤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스트럭처 저널리즘’은 딴 나라 이야기? 

에버그린 콘텐츠는 극히 일부… 지나간 기사 읽게 만들기가 화두

장기적인 과제로 ‘스트럭처(구조화) 저널리즘’도 신문사의 콘텐츠를 재가공해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플랫폼마다 맞춤형 콘텐츠를 재가공해 공급한다고 해도 극소수의 ‘에버그린 콘텐츠’가 아닌 이상 몇 시간만 지나도 가치가 사라져버리는 뉴스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활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스트럭처 저널리즘은 하나의 단위로는 이미 ‘죽은’ 뉴스들이, 매일 쌓이고 쌓이면 또 다른 의미 단위를 뽑아낼 수 있는 막강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개념이다. 뉴욕타임스는 스트럭처 저널리즘을 도입한 ‘에디터(EDITOR)’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BBC는 스토리라인 모델을 제시하고 최근에는 스트럭처 저널리즘을 위한 선언문까지 발표했다. 

스트럭처 저널리즘을 쉽게 말하면 하나의 뉴스를 모두 해체해 뉴스를 구성하는 팩트와 단어를 추출하고, 이를 재조립해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태환에 대한 뉴스를 모두 모아 박태환이 그동안 했던 발언, 그와 관련된 이슈나 사건, 그가 기사화된 장소 등의 팩트를 보여주고, 이를 모아 새로운 맥락을 끌어낸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뉴스의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 기술인 셈이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스트럭처 저널리즘은 가치가 떨어진 뉴스 콘텐츠를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구조로 변형할 수 있게 만든다”면서 “뉴스 콘텐츠에 데이터 값을 부여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이용 경험을 만들게 되고, 이런 요소가 충성도 있는 독자와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 개발에 따른 비용은 온전히 신문사의 몫이 된다. 스트럭처 저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사와 텍스트 하나하나를 글로만 저장할 게 아니라 일정한 데이터값을 부여해 저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도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국의 언론사들이 당장 도입하는 것은 힘들다는 한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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