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사회의 깊이 뿌리내린 여성혐오와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언론 역시 24일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를 통해 여성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불안을 조명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지난주까지만 해도 여성 혐오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갈등’프레임에 빠진 인과관계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분위기는 자연스레 여성혐오의 현실에 대해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자발적 움직임과 성찰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일간베스트 회원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현장에서 ‘맞불’을 놓으며 갈등이 벌어졌다. 문제는 몇몇 언론의 태도 역시 갈등을 부추긴 이들의 의도대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안을 ‘정치적인 것’ ‘논쟁중인 것’으로 몰아가며 벌써부터 ‘피로감’을 호소했다. 동아는 기자수첩에서 “일부 누리꾼이 ‘여혐범죄’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일부 극우 누리꾼이 ‘여혐론’을 반격하는 글을 올리면서 추모 분위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면서 “‘성대결’의 장으로 변해버린 추모 현장”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온 국민이 둘로 나뉘어 상대를 비난하고 배려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중앙은 "추모·반성의 자리…“김치녀” “한남충” 편가른 불청객들" 기사에서 “애초 추모를 위해 조성됐던 공간이 결국 혐오의 분출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포스트잇으로 시작된 논쟁이 욕설과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은 박창호 숭실대 교수를 통해 “일베, 메갈리아 등 인터넷에서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이 오프라인으로 이동해 드러난 것”이라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때 그랬듯 추모의 의미를 정치적인 것과 분리하려는 보도도 문제지만 사안을 ‘갈등’으로 바라보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여성을 노린 범죄에 대한 추모현장에 와서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성대결을 하지 말자’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도발이었다. 이슈의 본질을 흐리고 진흙탕으로 만들기 위한 ‘맞불’ 의도에 언론이 호응을 한 것과 다름없다.

언론은 대충 ‘갈등’이라고 쓰고 넘어갈 게 아니라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 그렇다면 도발행위에 문제를 지적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그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나는 여성혐오를 보았다”면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불안함을 호소하는 수천·수만 개의 포스트잇에서, 하루하루 성추행과 성희롱에 노출돼 있다는 여성들의 증언에서, 굳이 그곳까지 나와 조롱을 내뱉는 남성들의 모습에서“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갈등’이나 ‘대결’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동등한 것도 아니다. 일베와 마찬가지로 메갈리아가 도를 넘은 언행을 일삼는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이 같은 ‘미러링’이 나오게 된 배경도 여성혐오에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화합’ 강조한 한겨레·경향 ‘갈등’ 부각한 조중동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이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서 야3당 정치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에게 비난과 욕설을 하는 등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진보언론은 ‘화합의 메시지’를 부각했다. 한겨레는 ‘'DJ와 노무현 정신은 하나' 화합 공들인 야권’기사에서 “야권 분당 뒤 처음 맞는 추도식에서 두 대통령 영상을 함께 보며 소통과 화합 메시지를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역시 ‘김원기, ’하나된 힘으로 불의한 시대 끝내라는 게 국민명령‘’기사에서 “야권은 노무현정신을 통합으로 재해석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보수언론은 ‘소란’을 부각시켜 야당의 분열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물러가라 ’봉변당한 안철수... 봉하엔 공허한 '통합' 외침만"기사를 내보냈고, 동아일보는 "안철수 우산경호 속 참배... 2야 반목 드러낸 봉하마을"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봉하마을 두 표정... ‘문재인 만세’ ‘안철수 가라’"를 내보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가 웃는 사진과 안철수 대표가 우산경호를 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



지지자의 문제가 곧 친노정치의 문제?

조중동은 나란히 사설을 통해서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일부 지지자들의 행동이 부적절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지자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로 봐야하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친노 정치인에 대한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건 부적절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버이연합의 폭력적인 행동을 곧 친박 정치인의 행동과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보수신문들은 지지자를 비판하는 듯 하면서 친노에 화살을 겨눴다. 동아일보는 “이러니 친노가 자폐적이고 패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국민 사이에 자리 잡은 친노 이미지는, 생각이 다른 사람, 정치적 태도가 다른 사람이라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국민에겐 자기들만 선이고 그 외는 모두 악이라는 넌더리 나는 독선주의, 친노 패권주의 폐습”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봉하마을이 야권에 성지가 된 것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야권인사가 무슨 계기가 있을 때마다 국립묘지 찾듯 봉하마을을 성지순례하는 모습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되는 것도 다수 국민의 눈에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추도식때마다 만장정치를 요란하게 펼치는 것은 분명 고인의 뜻이 아닐 것이다.”

동아, 상시청문회 저지 안간힘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상시청문회법에 대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가 뜨거운 관심사가 됐다. 이 법은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청문회를 수시로 열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상시청문회법이 문제가 심각하다며 거부권에 힘을 실었다. 동아일보는 이 법에 대한 기사를 24일 하루에만 6건이나 쏟아냈다. 

우선, 재계의 우려를 전하며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다. 중앙은 ‘민간인 무더기 증인 채택’을 우려하며 “이제 연중 청문회 증인, 참고인으로 불려 나와야 하느냐”라는 대기업 임원의 말을 전했다. 동아는 한발 더 나아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참고인 명목으로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를 줄줄이 불러들이는 것은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라는 대기업 임원의 말을 전했다.

공무원들 일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며 '행정부 마비'를 우려했다. 동아는 “상시 청문회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정부부처”라며 “부처들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사회현안이 청문회 대상이 되면 공무원들의 업무가 폭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야권이 이 제도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동아는 “행정부 마비 우려는 곧 야권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쟁을 일삼을 것이란 불안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청문회에서 '호통'과 '무차별적 증인 채택'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제도를 보완할 문제이지 상시청문회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행정부가 비대한 상황에서 국회의 견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 역시 사실이다. 한국일보는 “그동안 국회 차원의 청문회가 있긴 했지만 행정부에 대한 감시감독과 견제 기능이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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