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얼굴을 공개하는지, 무슨 의도인지 기자들이 질문해야 하지 않나요?”

12일 오후 언론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언론에 날을 세웠다. 경찰이 경기 안산 토막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게 발단이었다. 경찰도 문제지만 이를 받아쓰고, 페이스북 사진까지 경쟁적으로 보도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보도 피해자들의 소송을 돕는 등 권익대변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다.  

“얼굴공개 기준과 이유를 물었어야”

“법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지난 사건들은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왜 이번에는 공개하는지 날카롭게 물어야 하지 않나요. 얼굴 공개 이후 흉악범 범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웠는지도 물어야죠. 그러나 그런 기사는 거의 없었죠. 피의자 가족과 지인들의 신상이 털리자 경찰이 ‘가족 신상유포하면 명예훼손’이라고 발표했어요. 언론은 또 이걸 받아써요. 신상을 유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언론인데 말이죠.”

경찰이 밝히는 신상공개 이유는 ‘재범을 막기 위한 것’이고, 여론 역시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얼굴을 공개하자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윤여진 처장은 “어차피 무기징역감인 흉악범은 다시 사회에 나올수도 없어요”라며 “근데 왜 얼굴을 공개하는지 의문입니다. 피해자와 함께 분노하기 위해? 아니면 용산참사 때처럼 국면전환용일 가능성은 없나요? 이것 역시 언론이 따져야 한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 안산 토막살인 피의자로 붙잡힌 조아무개씨. ⓒ 연합뉴스
피의자에게 적용돼야 할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점 역시 문제다. 1980년대 윤노파 살인사건 당시 경찰과 언론이 얼굴을 공개한 피의자는 결국 ‘무죄’로 밝혀지기도 했는데, 수사가 부실했던 옛날 일로만 치부할 게 아니다. 

도가니법 제정 국면에서 언론은 상주의 한 복지재단 원장이 장애인 여성을 성추행했다고 지목했다. 피의자는 9개월 동안 구속 됐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윤여진 처장은 “보도 이후 아내는 병이 들었고, 아들 둘은 집 나갔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어요. 무죄로 밝혀졌지만, 보도 탓에 그의 삶은 복원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나주사건, 모든 언론이 가해자였다

흉악범죄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다. 언론 입장에선 그 어느 이슈보다 ‘장사’가 잘 된다. 이번 사건에서 언론이 피의자의 SNS계정 사진을 퍼 나르고, 지인들의 신상까지 턴 것도 같은 이유다. 경쟁이 격해지면서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하지 못하고 ‘오보’를 내거나 근거없는 ‘추측’보도를 내는 일도 많다. 

윤여진 처장은 이 같은 보도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인권센터에서 맡는 사건 중 적지 않은 게 경쟁적인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다. 문제를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해도 피해자들은 이목이 다시 집중되는 걸 꺼리기 때문에 대응조차 쉽지 않다.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괜히 과거 일을 들췄다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기에 인터뷰 역시 조심스러웠다. 그나마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부모가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에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윤여진 처장은 “당시 모든 언론이 가해자였다”고 지적했다. 2012년 어머니가 집을 비우고 PC방에 간 사이 집에서 자고 있던 딸이 동네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두고 PC방을 다니는 ‘게임중독자’로 언론에 묘사됐다. 게임을 한 건 사실이고 게임을 좋아한 것도 맞다. 그러나 ‘중독자’는 아니었다. 집에 PC가 없었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게임을 하러 다닌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묘사됐는데 집에 술병이 많았고, 술을 즐겨 마셨을 뿐이다. 조선일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어머니가 같은 PC방에 다녔다는 이유로 칼럼을 통해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동네엔 PC방이 하나 뿐이었다.

취재 과정에도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나주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취재방식이 도를 넘고 있다는 내용을 들어 사건초기부터 관심을 갖고, 이후 나주에도 직접 내려갔어요. 가족이 병원에 가고 집이 비어 있으니 기자들은 집에 들어가 취재를 했고 병원에서도 진을 치고 가족들을 괴롭혔어요.” 윤여진 처장에 따르면 피해자 아버지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또 바꿔도 기자들이 전화를 끊임없이 걸어와 시달렸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언론인권센터는 문제가 심각했던 조선일보, 채널A, SBS, 경향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조선일보는 아무런 근거 없이 피해자 어머니가 범인과 무슨 관계 아니냐는 칼럼을 썼죠. 채널A는 가족의 허락도 없이 간호사에게 피해 아이의 옷을 들추게 하고 상처를 찍었어요. SBS는 이걸 인용보도했고요. 경향신문은 빈 집에 들어와 피해 아이의 일기장을 사진으로 찍고 1면으로 내보냈어요.”

▲ 2012년 9월 당시 경향신문 보도. 아이의 일기장 사진을 1면에 배치하는가 하면 동네 곳곳의 사진을 찍어 피해자의 신원을 사실상 노출시켰다.
윤여진 처장은 소송 과정에서도 보도의 막대한 영향력을 느꼈다. 피해 아이를 위한 시민들의 기부금을 관리하는 자선단체는 돈을 움켜쥐고 부모에게 주지 않았다고 한다. “‘영수증을 가져와야 돈으로 바꿔주더라고요. 이 단체는 자의적으로 부모가 ‘양육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물어보니 그렇게 하는 기준은 없었어요. 언론이 아버지를 ‘알콜중독자’로 어머니를 ‘게임중독자’로 묘사한 결과였습니다.”

유독 그 단체만 원망할 일은 아니었다. 세상이 온통 편견으로 가득 찼다. “1심 때 판사가 피해자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는 생각을 한 거죠. 대면 후에야 판사는 이해하더군요.” 소송 과정에서 ‘모금액을 갖고 피해자 어머니가 잠적했다’는 허위사실이 인터넷에 유포된 적 있는데 체포된 글 작성자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듣고 해당 글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피해자 가족을 직접 만난 적 없죠. 언론이 심어준 이미지가 이만큼 무서운 겁니다.”

소송 건다고 하니 그제서야 걸려온 전화

윤여진 처장이 ‘나주 사건’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언론의 취재와 보도 뿐 아니라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송을 건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 신문에서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소송을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지만 ‘소송 비용 감당하기 쉽지 않을텐데 정말 그렇게 하실 거예요?’라고 이야기한 걸로 기억해요. 진심어린 사과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어요.”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하지 않으려는 건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1심에서 언론이 피해자 가족에게 각각 2000만~3000만원 가량의 피해보상금을 내야 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채널A와 조선일보는 항소했다. 2심에서 같은 판결을 받아낸 후 소송은 일단락 됐다. 

윤여진 처장은 “보도 피해자 사건의 특징은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다른 사건에서 한 기자는 ‘경찰이 흘려준 정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 어떤 기자는 ‘우리는 안 쓰려고 하는데 다른 언론이 먼저 (기사를) 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보도 피해자를 만드는 경우들을 보면 대부분 무리했거나, 실수하는 경우”라며 “이의제기가 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할 건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언론이 사과하고 정정하는 건 권위가 떨어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더라고요. 근데, 지금 언론 그렇게 권위 있지 않아요. 오히려 잘못을 인정해야 권위가 살고 독자들의 신뢰가 올라간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겨도 재발방지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2006년 MBC 뉴스데스크와  생방송 오늘아침에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다루면서 한 가정의 사례를 보도했는데 증상을 강조하다 보니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 위주로 편집을 했고, 아이의 신상까지 노출했다. 2007년 언론중재위 조정을 통해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1년 후 MBC가 자료화면에서 해당 장면을 인용하며 MBC가 재발방지 노력을 소홀히 했음이 드러났다. 

윤여진 처장은 “처음부터 피해 어머니는 해당 영상 삭제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는데, 이뤄지지 않은 것이죠. 보도가 다시 나가자 어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언론이 못 배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기기도 했고요”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끝내 사과는 받아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은 없었고, 사원교육만 이뤄졌다.

“소송 브로커? 소송 안 걸면 사과 안하는 게 언론”

언론인권센터는 상담을 하러 온 보도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센터 사무실도 법원 인근인 교대역에 있다. 윤여진 처장은 “우리가 소송 브로커라서가 아니다. 소송이 아니면 언론이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를 하지도 않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문제제기를 하면 언론은 어깨에 힘 들어가요. ‘보도가 틀렸다는 증거를 내놔’하는 식이죠.”  

언론중재위원회가 ‘피해구제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윤여진 처장의 견해다. “일을 꼼꼼하게 하는 편인 건 맞지만, 중재위원들이 전직 언론종사자들이 많아 피해자 입장에서 일을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고,  업무 특성상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정정보도가 잘 이뤄지지 않아요. 조정을 해버리면 소송을 걸기 힘들어지기도 해요.”

▲ tvN 드라마 '시그널' 화면 갈무리.
언론인권센터는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되면 손해배상금을 최소 2000만 원으로 설정한다. 윤여진 처장은 “돈을 많이 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래야 약식이 아닌 정식 재판이 이뤄지고, 판결문이 나오기 때문인데요. 판례를, 기록을 남기는 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정책적인 개선점을 물었다. 기자 개개인의 선의에만 호소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20대 국회가 곧 개원할 예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책을 바꾸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당장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언론인 스스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업무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고민했으면 해요.”

“물론, 정책적인 대안 필요하죠. 상업화에 내몰린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인 거 잘 알아요. 근데 바꾸려면 권력이 필요해지고 그러다보면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 ‘권력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논리로 변질되기 쉬워요. 그래서 멀리 있는 정책적 대안보다는 당장 보이는 기자 한사람 한사람을 더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좋은 기사를 보면 칭찬하는 모니터보고서를 내고, 편지를 쓰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긍정적인 사례도 있었다. 어머니가 내연남에게 어린 친딸을 성폭행하도록 방치한 사건이 있었는데,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센터에서 언론인권센터에 연락을 했다. “서울신문에서 관련 판결문을 기사화했는데, 지역 이름이 거론돼 아이가 나중에 커서 인터넷 검색했을 때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신문 관계자를 통해 “지명이라도 바꾸거나 없애달라”고 전달했고, 서울신문은 처음엔 “지명만 써서 문제 될 게 없다”고 했으나 논의 끝에 기사를 삭제했다. 

윤여진 처장은 “피해자 입장을 생각해준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 윤여진 처장은 여러차례 이렇게 강조했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피해자를 대상화하지 말고 내 일처럼 생각해줬으면 해요. 범죄자들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게 ‘보도 피해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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