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하루아침에 실업자를 만들고는 41년이 지났다. 41년간 완전히 생존권을 박탈해놓고 고작 1000만원을, 그것도 13명에게만 배상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언론탄압에 저항한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해직된 지 41년만이다. 우여곡절 끝에 군사독재정권이 이들의 해직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확인 받았으나 풀어야 할 과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1974년 10월 24일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통해 한국 언론의 자유를 드높였다.
103명 중에 13명만 인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권근술 등 전직 동아일보 기자 12명과 2014년 숨진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에서 “권씨 등에게 각 1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애초 소송을 제기한 동아투위 위원은 103명이었다. 하지만 2014년 재판부는 과거사위에 진상규명 신청을 한 50명만을 판결 대상으로 삼았다. 나머지 위원들은 국가의 압력에 의해 해고된 사실은 있으나 단지 과거사위 진상규명을 신청하지 않아 배제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이건 서명을 안 했다고 부당한 해고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과거사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국가가 동아일보에 압력해 언론인을 해고한 사실이 없어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50명조차도 모두 보상받지 못했다. 재판부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36명에 대해서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판단 근거가 된 민주화보상법 관련 내용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된 상태다. 

41년 생존권 박탈해놓고 1000만원 배상

1000만원이라는 금액도 문제다. 애초 동아투위 위원들은 각자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과 2심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는 있었으나 손해배상 청구시효가 지났다”는 판결이 나자 소송비용 등의 압박으로 청구액을 1000만원으로 대폭 줄여 상고했는데 이것이 인정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1심과 2심에서 청구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하나로 하도 패소를 시키니까 상징적으로 1000만원씩만 하자, 고 한 것이 받아들여졌는데 실질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금액”이라며 “41년 동안 완전히 생존권을 박탈해놓고 1000만원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배상금이 정말 1000만원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재판부가 하도 박하게 하니까 그냥 1000만원을 적어내버린 것이다. 주든지 말든지 하라고”라며 “그런데 1000만원은 줘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런건지”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실제 당시 갑자기 거리로 내몰리게 된 해직 언론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당시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이고 여권도 발급받지 못했다. 이들 중 10명은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연행, 구속됐고 이후에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동아일보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압력을 행사한 주체가 있으면 압력을 받은 대상도 있기 마련이다. 이번 판결은 언론인들의 해직에 정부의 압력 행사를 인정했다. 동아일보가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도 동시에 인정된 셈이다. 해직 언론인들이 동아일보에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법적으로 동아일보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재판부가 동아일보가 안전행정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동아일보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2009년 3월 법원에 “‘과거사위가 정권 요구로 언론인을 해직한 동아일보는 사과하라’고 결정한 부분을 취소해달라”며 안전행정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냈다. 

동아일보는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이겼으며 지난해 5월 대법원 3부는 △동아일보 언론이 대량 해직사건과 정권의 요구 사이에 관련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과거사위가 동아일보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2심 판단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동아투위는 9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재판 당시 과거사위는 법정존속 기간이 끝나 이미 해체된 뒤라서 안전행정부가 피고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안전행정부는 자기들이 관여한 일이 아니어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재판에도 성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 노제가 2014년 10월11일 옛 동아일보 사옥인 현 일민미술관 앞에서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113명 중 25명이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이번 재판 결과와 동아일보가 안전행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보면 때린 사람은 있는데 맞은 사람은 맞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대해 이부영 전 의장은 “법원 판단은 사회의 기준이 되는 것인데 뭐가 옳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아투위는 지난 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동아일보는 이제라도 동아투위 위원들과 그 가족, 백지광고사태 때 성금을 내주신 시민들, 그리고 동아일보에 기대를 걸었다 실망한 수많은 독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참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위계질서를 어긴 폭도’ ‘빨갱이’ 라는 동아일보사와 정부의 매도와 음해로 그동안 생활은 고단하였지만 마음만은 당당하였다”며 “앞으로도 ‘동아일보사는 사죄하고 해직언론인들을 원상회복시켜라!’라는 외침은 실현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가 남은 과제를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30대에 해직된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지금 70세를 훌쩍 넘겼으며 위원 113명 중 25명이 세상을 떠났다.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도 13명에 포함됐으나 지난 2014년 세상을 등져 승소 판결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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