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수의 IT대기업 ‘넛츠컴퍼니’는 바람 잘 날 없다. 박슬기 대리는 낡은 조직을 디스하며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며 떠났다. 입사 6년차 김똘똘 대리는 희망퇴직의 칼바람이 자신에게 겨눠질까 두려워하지만 이직할 곳이 마땅치 않다. 자수성가형 인재 박용호 이사는 급작스럽게 퇴사설이 불거졌다. ‘넛츠컴퍼니’는 IT전문지 아웃스탠딩의 상황극형 연재기사에서 만들어진 가상회사다.

아웃스탠딩이 ‘베타’ 딱지를 떼고 본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정형화된 기사의 형식을 파괴하고 블로그형 구어체와 짤방, 이모티콘으로 채운 기사 실험이 성공을 거뒀다는 의미다. 별 탈 없이 잘 다니던 경제지를 떠나 이름조차 생소한 ‘언론 스타트업’ 실험을 1년 동안 진행한 최용식 아웃스탠딩 기자를 지난 9일 합정역 인근 아웃스탠딩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일반 기사버전과 아웃스탠딩 버전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실험, ‘픽션’도 기사다

아웃스탠딩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웃스탠딩이 직접 제작한 이모티콘 이미지와 짤방을 활용한 기사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 문장들이 화면을 빽빽이 채우지 않는, 간결함. 최용식 기자는 “공급자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쓰는 독자우선주의 기사”라고 설명했다. 아웃스탠딩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네이버포스트, 다음 1boon 등 간결한 구성에 이미지를 결합한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고, 이는 아웃스탠딩의 실험방향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처음 아웃스탠딩을 할 때만 해도 형식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래도 기자가 스트레이트 기사를 버리는 게 말이 되나’라는 지적이었다. 우리도 기자훈련을 받았고 5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으니 기존 기사 형식이 갖는 장점도 알고 있다. 그래도 기사 형식의 변화가 보편화되면서 우리 가설이 맞았다는 걸 느낀다. 이용자들이 기존 스트레이트에 피로감과 지루함을 느낀다는 건 확실하다. 독자들이 우리 기사를 보고 ‘득템’했다고 표현하는데 기분이 좋더라.”

최용식 기자는 “1년 동안 콘텐츠 완성도와 비즈니스, 두 요소를 완벽히 잡진 못했지만 어느정도 희망의 씨앗을 봤다”고 말했다. 젊은기자들 위주의 언론사 스타트업이 가능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아웃스탠딩의 월간 순방문자수는 20만~30만명에 달한다. SNS나 검색이 아니라 이용자가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해 방문하는 비율은 30%에 달한다. 포털에 입점하지도 않았고 기자 3명에서 운영하는 언론으로서는 값진 성과다. 

▲ 최용식 아웃스탠딩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아웃스탠딩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픽션형’ 상황극을 접목한 기사형식이 안착됐다. 시리즈물인 ‘넛츠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저널리즘 혁신 한다면서 “수 틀리면 포털 조져”라는 간부가 있는 ‘만세일보’도 있다. 회사만 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고유의 캐릭터를 갖고 있어 몰입감과 친근감을 준다. 

최용식 기자는 “일종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구축하려 했다. 작년 이맘 때 쓴 ‘부장님 사표쓸게요’라는 콘텐츠를 쓰면서 영감을 받았다”면서 “IT기업과 관련한 이슈들을 쉽게 풀어내면서 관련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상황극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 아웃스탠딩 기자들을 상징하는 이모티콘. 실제 기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왼쪽부터 최용식, 최준호, 장혜림 기자
콘텐츠 내의 상황극 뿐 아니라 기자에게도 ‘캐릭터’를 부여한다. 기자 개개인과 매체가 일관된 스토리와 인격을 갖고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용식 기자에게 흥행한 콘텐츠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장혜림 기자를 영입했을 때 소개 포스팅으로 가상인터뷰 기사를 넣었다. 좋아요가 1000이 넘더라. 무한도전에서 6번째 멤버인 식스맨을 뽑았을 때처럼 우리의 정체성과 정체성에 맞는 인재에 대한 영입과정을 설명했고, 장 기자가 어떤 기자인지를 보여줬다.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느꼈고,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더라.”

“디지털에서 생존하려면? 셀럽기자 육성해야”

최용식 기자를 비롯해 아웃스탠딩의 기자들은 어느새 ‘뉴미디어 전략가’가 돼 특강을 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아웃스탠딩 기자들이 언론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기사 기획, 작성, 유통, 비즈니스까지 책임지고 매체를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길러진 노하우를 언론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용식 기자는 “우리는 대단한 성공을 한 게 아닌데, 감사하게도 불러주신다”면서 “기자들이 스타트업을 만들고 성과를 냈다는 점에 주목하더라. 우리의 콘텐츠제작과 유통방식, 비즈니스 전망에 대해 주로 물어본다”고 말했다.

아웃스탠딩이 바라보는 기성언론의 뉴미디어 혁신은 어떤 모습일까. 언론이 플랫폼과 유통망을 잃고, 뉴스는 개별 기사단위로 유통이 되고, 포털과 페이스북에 종속이 된 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전망하고 있을까. 최용식 기자는 “‘위기’라고 말하지만 나쁘게만 볼 게 아니다. 기자 개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기자도 하나의 미디어가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전문기자 이상의 입지를 가진 기자가 나올 거고 그게 화두가 될 거라고 본다. 전문성을 갖추고 기자 스스로 유통과 비즈니스까지 고민하는 ‘셀러브리티 기자’들이 나오는 거다.  그렇게 되면 ‘셀럽 기자’들이 독립해서 자신의 매체를 만들고 싶어할 것이고, 언론은 이들을 붙잡아 놓는 일이 중요해진다. 지금과 달리 언론사는 셀럽 기자들을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처럼 되지 않을까. 모든 언론이 당장 이렇게 되진 않겠지만, 전문지라면 이 같은 변화가 올 수 있다.”

이를 테면 MCN의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기자가 하고 트레저헌터 같은 매니지먼트 업무를 언론사가 맡는다는 이야기다. 셀럽 기자들이 형성된다면 언론의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묻자 최용식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언론의 기자육성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평균화전략을 썼다. 전문기자를 만들지 않고 출입처를 돌리며 제너럴리스트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디지털에서 살아남으려면 튀어야 하고, 그러려면 셀럽기자가 필요하다. 언론은 기자에게 투자해야 하고 기자들이 원하는 분야를 취재하게 해야 한다. ‘일’과 기자의 ‘관심사’ 를 일치하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사가 ‘엔터테인먼트’회사처럼 되면 ‘흥행’에 대한 고민도 필수적이다.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뉴스콘텐츠기업은 우연에 의지해온 바이럴 흥행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게임회사의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게임회사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이용자의 행태를 파악하고, 내놓은 게임에 대해서도 클로즈베타기간을 거치면서 이용자 반응을 본 후 정식 출시한다. 우연이 아닌 데이터와 경험에서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

▲ 최용식 아웃스탠딩 기자. 사진=금준경 기자.
“기자의 역할? 철 들지 말아야 한다”

기자들의 역할은? “콘텐츠 형식과 유통에 대한 고민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최용식 기자는 “평생 고민해야 한다. 기자는 평생 철 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뉴스는 ‘근엄주의’가 있는데 이걸 깨야 한다. 우리는 엔터테이너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어떻게 뉴스에 녹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아웃스탠딩도 앞으로 시도를 계속 할 거다. 고전적인 만평이 아닌 짤방을 만평처럼 만드는 ‘짤평’을 선보일 거다. 업계 사람들의 경험담을 담은 ‘경험담 콘텐츠’도 만들 생각이다. 나중에 돈을 더 벌면 웹툰, 웹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뉴스에 접목하고 싶다.” 

인터뷰 도중 ‘독자’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경제지 시절 경험들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웃스탠딩의 이색적인 기사는 일반적인 기사와는 다른 ‘해설’을 담은 내용을 어떻게 독자들을 위해 풀어낼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변화’였다. 형식과 내용은 별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제지에서 일할 때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잘 아시겠지만 기자간담회 가면 기자 50명이 다 똑같은 기사를 쓴다. 기자들은 만족하지만 독자는 보지 않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너무 괴로웠다. 일을 안 한 거 같았다. 또, 이런 고민도 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기사로 써놓고 보니 기사가 한심한 거다. 낚시를 해서 참치를 잡았는데, 회를 안 먹고 참치김밥을 만든 느낌이었다. 좋은 기사에 대한 읽는 맛을 주고 싶었다. 피키캐스트처럼 쓰고 싶고, 김리뷰처럼 쓰고 싶었지만 회사에서는 도무지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셀럽기자 시대가 도래할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디지털 공간에서 기자 개개인과 콘텐츠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건 분명하다. 사안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설명하는 ‘해설형’ 기사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를 위해선 준전문가급의 기자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용식 기자는 기성언론에서 일하는 기자들에게 자신들처럼 ‘언론스타트업’을 만들 것을 권했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 식사를 하면서도 또 다른 ‘언론스타트업’이 또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말이 이어질 정도였다.

“창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체적인 삶을 사는 건 꼭 필요하다. 기자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기회의 시대지 않나. 언론시장이 이렇게 요동치는 게 100년에 한번 오기 힘들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치고나갈 수 있다. 2030기자라면 이 기회를 꼭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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