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 끝에 이 강토에 단비를 내리게 하고 떠나시더니 돌아오신 오늘은 지루한 장마 끝에 남국의 화사한 햇빛을 안고 귀국하셨다.”1981년 ‘땡전뉴스’시절 KBS의 전두환 전 대통령 해외순방 보도다. 35년이 지났지만, 지상파 공영방송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머리기사로 순방 리포트를 배치하며 ‘제2의 중동붐’이 일어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효력도 없는 MOU를 마치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4일 동안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4사의 대통령 이란 순방에 대한 보도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 언론은 청와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특히 공영방송이 ‘경제성과 뻥튀기’에 앞섰다”고 8일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란 방문 당시 이란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MOU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경제적인 성과로 보기 힘들다. 그러나 MBC 뉴스데스크는 3일 “6000억 원대의 수출계약과 MOU가 체결됐다”면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계기로 열린 비즈니스 상담회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6100억 원의 수출 성과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다른 지상파 방송은 MOU가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간단하게나마 언급했지만, 뉴스데스크는 관련 내용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언론별로 언급한 MOU 규모도 각기 달랐는데, MBC 뉴스데스크가 가장 컸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일 “이란 개발 사업참여 최대 52조원 규모”라고 보도했다. MOU 규모를 52조 원이라고 언급한 건 지상파에서는 MBC, 종편 중에서는 MBN이 유일했다. 다른 방송들은 ‘42조원 규모’라고 보도했다. 52조 원이라는 숫자는 MOU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후, 2차 공사까지 더한 금액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3일 “한국은 최상의 파트너”… 6천억 수출 계약”리포트에서 MOU체결이 마치 실제 계약이 이뤄진 것처럼 묘사했는데, ‘수출 계약’이라는 표현을 쓴 방송사는 MBC뿐이다. 민언련은 “MBC의 ‘부풀리기’는 독보적”이라고 비판했다.

▲ MBC 뉴스데스크(위)와 TV조선 뉴스쇼판(아래) 보도화면 갈무리. MBC의 MOU 추정치는 52조 원으로 42조 원이라고 보도한 TV조선보다도 컸다.
MOU의 한계를 제대로 짚은 쪽은 JTBC였다. JTBC 뉴스룸은 지난 3일 팩트체크 코너에서 “조약이  가장 구속력이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헌장, 협약, 의정서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양해각서 MOU”라며 “MOU를 해 놓고 나중에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다 보니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JTBC는 청와대가 발표한 프로젝트 30건 중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건 6건 뿐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지상파도 MBC 뉴스데스크에 뒤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 보도를 가장 많이 한 건 KBS와 SBS의 메인뉴스로 무려 11꼭지를 보도했다. 채널A 종합뉴스는 10꼭지 보도했으며 MBC와 MBN, TV조선은 메인뉴스에서 각 8꼭지를 보도했다. 반면 JTBC 뉴스룸은 3꼭지만 보도해 방송사 중 보도량이 가장 적었다. 

KBS는 메인뉴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소식을 가장 주요한 뉴스로 자주 다뤘다. KBS 뉴스9는 1일부터 3일까지 3일 연속으로 머리기사로 3꼭지씩 순방소식을 배치해 ‘땡박’뉴스를 선보였다. MBC, SBS, MBN의 메인뉴스에서는 관련 보도를 이틀 연속으로 머리기사로 배치했다. 민언련은 “이란 순방 보도는 종편보다는 지상파 3사가 적극적으로 많이 주요하게 보도했다”고 밝혔다.

KBS 뉴스9는 ‘중동붐’이라는 용어를 남발하기도 했다. 민언련이 ‘중동붐’이라는 용어의 사용빈도를 조사한 결과 KBS 뉴스9는 리포트 제목으로 ‘제2의 중동 붐’을 언급한 경우만 3건에 달했다. 앵커멘트에서도 KBS 뉴스9는 중동붐을 2회 언급했고, 대통령과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2중동붐’이 총 10회 등장했다. KBS 뉴스9 다음으로 ‘제2 중동붐’을 언급한 방송뉴스는 MBC 뉴스데스크다.

▲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경제적 성과 관련 리포트를 가장 많이 다룬 메인뉴스는 KBS 뉴스9다. KBS 뉴스9와 SBS 8뉴스의 경제성과 관련 리포트만 5꼭지에 달했다. TV조선 뉴스쇼판이 1꼭지만 경제성과에 할애한 것과 대조적이다. KBS 뉴스9는 3일 “한‧이란 경협’ 지원… 6천억 원 MOU 체결”리포트에서 “1:1 현장 비즈니스 상담회를 통해 하루 만에 31건, 6천여억 원의 양해각서가 체결돼 향후 경제협력 성과에 기대감을 높여줬다”고 보도한 게 대표적이다. 
 
방송사들은 이란에 한류가 큰 유행이라는 점을 보도하며 자사 프로그램을 홍보하기도 했다. KBS 뉴스9는 '태양의 후예', MBC 뉴스데스크는 '옥중화', SBS 8뉴스는 '육룡이 나르샤' 등 자사 드라마를 언급했는데, 민언련은 “민망한 ‘자화자찬’”이라고 지적했다. 채널A 종합뉴스는 한류를 강조하는 보도를 4꼭지나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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