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조선일보는 방 상임고문이 언론자유의 투사인 것처럼 미화했다. 북한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데 대한 언론의 입장은 갈렸다. 조선과 동아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친 반면 한겨레, 경향, 중앙은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경향은 한겨레에 비하면 ‘대화’보다는 ‘북한 비판’에 지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경찰에 이어 언론들까지 안산 토막살인사건의 피의자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며 ‘분노 장사’에 나섰다. 신상공개가 정말 ‘국민의 알권리’인지 묻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우영이 언론자유투사? ‘미화’나선 조선일보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8일 별세했다. 방 상임고문은 한국 언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방 상임고문은 사장시절 조선일보를 1등 신문으로 만들었다. 기자들을 존중하고 지면에 대한 개선을 주도하는 등 기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긴 일화도 많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방면에서 사실에 근거해 냉철하게 이뤄져야 한다. 방 상임고문이 조선일보 사장으로서, 신문인으로서 ‘공’이 적지 않겠지만 근본적으로 언론인으로서 ‘과’가 많은 인물이다. 그가 언론자유를 탄압한 주체였고, 군사정권과 결탁했던 어둠의 대통령으로 행세해 왔다는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지면에는 방 상임고문에 대한 냉철한 평가 대신 ‘미담’만 가득했다. 특히, 조선은 방 상임고문을 ‘언론자유 투사’처럼 치켜세웠다. 조선은 9일 “방일영·우영 형제는 5·16 후 ‘군정연장 반대’ 사설을 밀어붙였다”고 보도했다. 또, 박정희 정권이 1964년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려고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만들자 26개 언론사 발행인들이 모여 찬반 투표를 한 일화를 소개하며 “형제는 신문사 문을 닫을 각오로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정부는 언론윤리법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9일 기사
방 상임고문은 ‘언론자유 투사’로 대접받아선 안 되는 인물이다. 방 상임고문은 1975년 언론자유를 요구한 기자 30명을 해고한 장본인이다. 경향신문은 “1975년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제작거부와 편집국 점거농성에 들어갔을 때는 경고문을 발표하고 32명을 무더기로 해고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기자들을 대규모 해고한 뒤 철저히 보수권력을 대변하는 언론을 이끌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그가 기자들을 해고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외려 ‘기자들이 떠났다’고 왜곡했다. 조선은 “방우영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은 1975년 기자 서른 명이 언론 자유를 외치며 신문 제작을 거부하다 회사를 떠난 일”이라며 “두고두고 마음의 멍에로 남았다”는 방 상임고문의 회고를 전했다. 그러나 방 상임고문을 기자들을 ‘해고’한 게 맞다. 백보 양보해서  정부의 압박 탓에 어쩔 수 없이 해고했다면 추후 해직기자들을 복직시키겨나 복권시키는 등 행동으로 이어졌어야 했다.

이날 방 상임고문 별세 기사에서 조선, 한겨레, 경향이 ‘조선·동아투위 사건’을 언급하고 중앙이 ‘동아일보 광고탄압사태’를 언급한 것과 달리 동아일보는 관련 내용을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방 상임고문과 연관이 깊은 사건이었고, 한국 언론사에도 중대한 사건이었는데 이를 외면한 것이다. 대신 동아는 방 상임고문이 연재기사, 인터뷰 등 지면기획을 주도했다는 상대적으로 시시콜콜한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1975년 동아일보는 100명이 넘는 언론인을 해고해 언론인 대량해직에 최대 가해자였고, 아직까지 이들의 복직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위에서 아래까지 똘똘 뭉쳐 뛴 조선일보는 1970년대 일등신문으로 올라섰다. 1979년에는 100만부 1991년엔 200만부를 넘어섰다”며 1등신문이 된 걸 오로지 자력인 것처럼 묘사했는데 이 대목 역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온갖 특혜를 받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1967년 코리아나호텔 건립을 위한 일본 상업차관,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언론통폐합 광풍 속에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5공화국 때는 조선일보 출신의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이 신군부의 핵심실세였던 점이 조선일보의 특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방 상임고문은 국보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경향, 진보적인 중앙?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6일 세계의 비핵화를 언급했다. 김 제1비서는 “북한은 책임있는 핵 보유국”이라며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제1비서는 또 남북군사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는 “의미 없다”면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 이슈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독특한 진영이 구축되곤 한다. 우선, 한겨레와 경향의 논조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9일 역시 한겨레와 경향은 “북한은 문제지만 대화를 할 필요는 있다”는 대동소이한 주장을 했지만 방점이 달랐다. 경향은 ‘북한은 문제’라는 점에, 한겨레는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경향은 사설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하고, 관계개선을 위해선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힌 뒤 말미에 “(정부도)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할 책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 제목부터 “북한의 대화 제안에 응답할 필요 있다”로 “(북한이) 핵실험에 따른 국제적 제재 국면을 돌파하려는 차원에서 남쪽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정이 그렇더라도 대화는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앞서 경향은 주요 사건마다 북한에 강경한 목소리를 낸 바 있는데 이 같은 논조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인식이 있는 반면, 오히려 ‘무조건 북한을 비판부터 하지 않으면 사상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진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 중앙일보 9일 사설.
북한 이슈가 얽히면 보수언론 사이에서도 논조 차이가 두드러진다. 조선과 동아는 북한이 우선 핵을 폐기하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며 강도 높은 비판으로 지면을 채우는 반면 중앙일보는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동아는 사설에서 “김일성 흉내 내 양복 정장 차림을 한 것을 제외하면 김정은이 바뀐 것이라곤 없다”면서 “평화협정이든 남북대화든 북의 대화제의는 실절적인 핵 포기 전에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조선 역시 “관계를 개선하고 말고는 북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이라며 “북이 진정 평화를 원하고 경제발전을 원한다는 당장 핵폐기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중앙일보는 “어떤 사안이든 한국 정부가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면서 “지금은 국제사회가 단결해 대북압박이 필요한 국면이다. 그럼에도 돌연히 대화의 모멘텀이 찾아 올 경우 북한을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유연성을 절대 일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논조 차이는 중앙일보는 홍석현 회장이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칼럼을 쓰는 등 북한과 적극적인 교류를 지지한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통일이 삼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 같은 논조가 나온다는 시각도 있다.

안산사건 피의자 얼굴 공개, ‘분노 장사’하는 언론들

경기 안산 토막살인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한 중대범죄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근거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 게 적절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경찰의 신상공개로 피의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의 예외가 됐다. 또, 경찰의 수사 문제 대신 피의자의 ‘악행’이 부각됐다. 피의자의 지인들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얼굴을 공개한 게 분노를 부추기는 것 외에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다고 해도, 언론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감안해 신중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신문이 피의자 조씨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분노 부추기기'에 일조했다. 9일 아침신문 기준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국민일보, 동아일보 등이 조씨의 얼굴을 지면에 실었다. 앞서 포털 다음은 7일 오후 조씨의 SNS 사진을 메인 화면에 걸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특강법은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요건을 규정하면서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분노한 여론에 편승해 알 권리 충족을 빌미로 무분별하게 공개가 이뤄진다면 범죄 상업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얼굴 공개 기준이 모호한 것도 문제다. 경향은 “조씨의 신상정보 공개는 과거 사례와 비교해 볼 때 경찰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면서 경찰은 지난해 아내와 두 딸을 한꺼번에 죽인 세 모녀 살인사건 등 다른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피의자 얼굴공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공개된 신상을 바탕으로 조씨의 과거행적을 찾아낸 네티즌들이 조씨의 애견카페 운영, 여관 아르바이트 경험 등은 물론 헤어진 여자친구 신상까지 공개하며 문제가 되고 있다. 가족까지 공개될 경우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을 한 한국일보마저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는 장면이지만 조씨의 얼굴을 기사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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