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에 대한 첫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학본부 직속이 아닌 독립된 지위를 가진 대학언론은 18.4%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는 독자와 기자 모두 떠난 대학언론의 침체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국 대학언론 전현직 간부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데드라인은 지난 28일  대학언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현재 대학언론은 학생들의 구독률 감소, 주간교수와의 마찰, 대학당국의 재정지원 중단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처해있다”면서 대학언론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자료가 되는 게 조사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전국 대학언론 부장급 이상 학생기자 87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 지난해 서울여대학보는 교내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졸업생들의 성명서를 1면에 게재할 계획이었으나 주간교수가 “성명서가 게재되면 발행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항의 차원에서 백지신문을 발행했다.
대부분의 대학언론이 제대로 된 구색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총장 직속으로 편재된 대학언론이 54.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홍보처 소속 10.3%, 학생처 소속 16.3%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학언론이 독립된 기관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18.4%에 불과했다. 

이 같은 구조 탓에 학보사는 대학본부를 쉽게 비판하지 못하며 편집권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해에만 동국대, 성균관대, 삼육대, 상지대, 서울시립대, 서울여대 등에서 편집권 문제로 학보 발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의 학보사 기자는 “홍보팀 직원이 조판과정에 참여하고 주간교수와 교직원이 신문에 대한 사전검열을 한다”면서 “학교의 잘못이라는 내용이 있으면 그 내용을 없앤다”고 말했다. 한 지역 대학 학보사 기자는 “기사 때문에 기자들이 총장실에 소집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편집국장이나 편집인 역할을 하는 주간교수가 신문방송 등 언론 전공자인 경우는 21.8%에 불과했다. 사회과학 19.5%, 인문 35.8%, 이공계 8.0% 등으로 나타났다. 주간교수가 언론 전공이라고 해서 편집권 침해가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주간교수가 언론인이 아닌 상황에서 언론의 편집권을 비롯해 매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언론전공 교수는 전공 특성상 대학언론의 편집권을 침해하게 되면 평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일을 할 수 있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이번 조사는 대학언론이 침체기라는 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학기에 6회 이하 발행되는 신문이 54%에 달했다. 11회 이상 발행되는 신문은 8%에 불과했다. 분량도 마찬가지다. 8면 이내로 발행하는 경우가 45%로 나타났다. 그 중 4면짜리 신문을 발행하는 경우도 4% 있었다. 49.4%의 대학언론은 10인 미만의 소규모로 운영되기도 했다. 반면 20인 이상의 학생기자가 활동하는 대학언론은 9.2%에 불과했다.

데드라인은 실태조사와 함께 설문도 실시했는데, 문항마다 ‘전혀 그렇지 않다’ 1점, ‘그렇지 않다’ 2점, ‘그렇다’ 3점, ‘매우 그렇다’ 4점으로 나타냈으며 그 평균값을 산정했다.

설문 결과 대학신문은 상대적으로 대학 본부에 대한 취재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과 취재는 원만히 이뤄지는지 물은 문항에는 2.9점으로 ‘그렇다’에 가까웠으나 교직원들과의 취재가 원만하게 이뤄지는지 물은 문항에는 2.6점으로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의 중간 정도로 나타났다. 대학본부 처장급 이상과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지 물은 문항은 2.1점으로 ‘그렇지 않다’에 매우 가까웠다.

미국의 대학언론인 조지아대학의 ‘레드 앤 블랙’이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데일리 타힐’은 지역 공동체 뉴스를 기반으로 기성언론 못지 않은 영향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국내 대학언론은 여전히 대학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대학언론의  최우선적인 역할에 관해 59.3%는 '학내 문제제기와 고발'이라고 답했고 24.4%는 '학내소식 전달'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인식이 취재분야를 ‘학내’로 한정된 것이다. ‘사회정치적 의식제고’가 최우선적 역할이라고 답한 경우는 7%에 불과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언론은 지역사회와의 교류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역단체 및 학교 외의 정기적인 출입처를 두고 출입을 하는지를 물은 설문 결과 1.7점이 나와 ‘전혀 그렇지 않다’와 ‘그렇지 않다’ 사이에 위치했다. 지역사회와 시민단체와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지, 소속된 대학언론이 지역사회 인지도가 높은지에 대한 설문에서도 1.7점대가 나왔다.

한편 데드라인은 대학언론별 판형조사도 했는데 중앙일보에서 쓰는 판형인 베를리너판을 쓰는 대학언론이 33.6%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타블로이드판과 대판이 각각 23% 를 차지해 뒤를 이었다. 전직 학보사 간부는 “학생들의 선호도와는 무관하다”면서 “중앙일보가 적극적으로 대학언론에 자기 판형을 써달라고 영업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계약이 되면 중앙일보에서 학보사 간부들에게 가방 등 선물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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