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자 중앙일보 첫 장은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의 화보였다. 표지와 별도 커버까지 4면에 걸친 래핑광고였다. 랩을 씌우듯 광고로 신문을 덮었다. 한국 신문사 가운데 첫 시도였다. 사실상 1면을 내준 중앙일보 래핑광고는 종이신문의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란 지적이 나왔다. 중앙일보는 2014년 3월21자에선 밀레(Millet) 광고를 날개형으로 실었다. 지면의 반쪽을 잘라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 3월 9일자 중앙일보 래핑광고.
신문광고는 TV·신문·라디오·잡지·온라인 5대 매체 광고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1830년대 인쇄기술 발달과 함께 신문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며 신문사들은 신문가격을 낮추고 증면을 통해 많은 광고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모바일에 광고를 내주며 ‘종말’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보고서 ‘신문인쇄의 현재와 미래’에 따르면 2010년 세계 신문의 인쇄광고 총수입은 938억2000만 달러였으나 2014년 773억8800만 달러로 17.5% 감소했다. 반면 세계 일간신문의 디지털버전 유료구독자는 2010년 78만 명에서 2014년 1198만 명으로 무려 1420% 증가했다. 디지털 신문 광고 수입도 59억5300만 달러에서 94억9900만 달러로 59.6%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제일기획에 따르면 2014년 신문광고비는 1조4943억 원으로 전년대비 3.3%감소했다. 신문지면은 건강보조식품 같은 ‘삼류광고’로 도배되고 있다. 2014년 신문광고비에서 가장 많은 매출증가 업종은 부동산이었다. 광고가 허위·과장 광고여도 방송사와 달리 신문사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삼류광고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광고의 질적 하락은 종이신문의 영향력 감소와 맞물렸다. 방송사가 광고규제완화로 새 광고시장을 만들려 한다면 신문사는 더 많은 지면을 내주는 형태로 새 시장을 만들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2013년 전국종합일간지 다섯 곳의 기사 대 광고 비율은 기사 70%, 광고 30%가 3곳, 기사 65%, 광고 35%가 2곳으로 나타났다. 전체 일간신문의 경우 기사 70%, 광고 30%인 지면이 75%로 다수를 차지했다. 언론재단이 2015년 10월 일반인 10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0.5%는 ‘기사와 광고 비율이 적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광고지면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문은 점점 광고에 지면을 열고 있는 추세다.

▲ 주요 종합일간지. ⓒ이치열 기자
2015년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신문의 광고수입은 2014년 기준 1조9546억 원으로 매출의 55.9%를 차지했다. 이는 2013년 1조9825억 원(56%)에 비해 소폭 하락한 수치다. 종이신문 판매수입은 4934억 원으로 전체의 14.1%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도 5844억 원(16.5%)에 비해 하락한 수치다. 부수확장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다. 광고수입이 감소하더라도 신문의 수익전략이 지속적으로 광고지면을 확대하는 전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신문이 시도한 광고지면 확대전략은 놀랍게도 돈을 받고 지면에 기사를 써주는 것이었다. 조선일보 건강섹션은 2014년 병원으로부터 협찬금을 받고 해당 병원을 홍보하는 기사를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 헬스조선이 병원에 보낸 공문에는 광고비용으로 800만원에서 2500만원이 적혀있었다. 병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썼다는 내용은 지면에 없다.

광고기사에 대한 기자들의 증언은 구체적이다. 한 경제지 기자는 “지면은 곧 광고지다. 협찬 기사가 안 들어가는 지면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실제론 가지도 않았는데 현장 르포를 쓰는 경우도 있다. (돈을 준) 기업에서 기사를 만들어 준다”고 전했으며 “오늘날 종이신문 지면은 기업과 공공기관의 스크랩 올리기용”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지면기사는 ‘선입금이냐 후입금’이냐의 차이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또 다른 경제지 기자는 “별지는 보통 돈을 받고 만드는데 특히 시계 기사(단가)가 비싸다”고 말했으며 “사회면 톱으로도 (광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그 액수가 1000만 원 대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주기적으로 기업의 봉사활동, 기업의 복지환경, 노사상생을 보도하고 돈을 받는다”고 전한 뒤 “기자들도 대부분 쓰기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신문사의 홍보성 기사는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사인이 보도한 2012년 1월~2013년 8월 농협의 광고비 집행내역에 따르면 농협에게 유리한 기획보도에 참여한 언론사 가운데 중앙일보는 9건에 대해 3억7500만원, 동아일보는 13건에 6억 2872만원을 받았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도 11건을 쓰고 1억 3200만원을 받았다.

▲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해온 기자들은 점차 정부와 기업을 홍보하고 수익을 내는 홍보맨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SBS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
언론과 자본의 결탁은 점점 수익전략이란 이름으로 일상화되고 있다. 2012년 4월20일자 조선일보는 ‘원전강국 코리아’ 기획기사를 내고 “싼값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발전 덕분”,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은 세계 최고수준”이라 보도하며 원자력문화재단으로부터 5500만원을 받았다. 원자력문화재단은 2012~2013년 홍보차원에서 14개 신문사에 3억6000만 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언론에 집행된 핵 발전 홍보예산은 2014년에만 한국수력원자력 100억 원, 원자력문화재단 57억 원, 원자력환경공단 37억 원 등 총 205억 원 수준이었다.

지난해엔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정부부처 돈을 받고 기사를 쓰는 언론의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노동양극화 풀려면 대기업노조 과보호 깨야”(한국경제), “양보 안하는 강성노조가 일자리 막아”(매일경제)처럼 반노동적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한 기사들이 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의 한 홍보대행사는 결과 보고서에서 이 같은 홍보기사가 같은 비용의 일반광고보다 19배의 홍보성과를 달성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박병수 한겨레 선임기자는 이런 행태를 두고 “사실상 광고인 것을 기사로 포장했으니, 사기와 뭐가 다를까”라고 개탄했다.

기사를 가장한 지면 사고팔기는 이미 신문사에 만연한 상황이다. 조선일보에선 2013년 지역담당 기자에게 광고영업 업무를 겸직하라고 지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언론이 공개한 농촌진흥청과 각 언론사간 계약서 제5조 ‘책임 및 보안’ 조항에 따르면 △을은 기획연재의 품질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져야 하고 △을은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민원이 발생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품질’은 갑이 원하는 기사 방향을 뜻한다. 언론사가 돈을 받고 언론이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정부부처를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 건씩 국방부 홍보성 기사를 쓰고 그 대가로 1억 원을 받는다는 계약서가 나와 파문이 일었다. 당시 국방부 기자단은 중앙일보 기자에게 ‘주의’ 징계를 내렸다. 이것은 기사가 아니다. 더욱이 생존전략이 될 수도 없다. 신문사의 제1자산인 신뢰를 바꿔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수용자의 신뢰를 배반하며 당장은 이익을 얻을지 모르겠으나 모든 언론사의 이익은 수용자의 신뢰에 기반 한다. 언론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정부부처가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언론사의 지면이나 방송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일체의 홍보행태를 금지하는 ‘정부기관 등의 광고에 관한 법률안’을 2013년 발의했으나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다.

▲ 해외 미디어 컨설팅업체 퓨처익스플로레이션네트워크가 내놓은 종이신문 종말 예측도. 한국은 2026년 종이신문이 종말할 것이라 내다봤다. 종말을 앞둔 종이신문은 광고와 기사를 맞바꾸며 '위험한' 영업에 나섰다.
신문사가 음지에서 광고성 기사로 돈을 버는 것이 최근의 빈번한 장면이라면, 협박성 기사로 광고를 따내는 장면은 오래된 장면이다. 한국광고주협회와 광고학회 등이 2010년 50명의 광고 및 홍보담당자를 대상으로 ‘신문광고를 집행할 때 불합리한 광고 강요 및 협찬 경험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100%가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광고 및 협찬 거부 시 허위 및 음해성 보도’(80%), ‘신문 기사를 활용한 광고 유치’(68%) 등을 신문사의 문제로 꼽았으나 이 같은 관행은 나아지지 않고 심화되는 양상이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사는 “신문광고는 상당부분 홍보실에서 온다. 마케팅 비용이 아니라 실제로는 위험관리 비용이다. (위험관리용) 신문광고시장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확장성은 없다”고 말했다. 2014년 기준 미국인의 미디어소비시간 중 프린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했지만 광고시장 분포에선 프린트가 13%를 차지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열독률에 비해 광고시장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강 박사는 “홍보대행사들도 홍보성 기사에 광고효과가 없다는 알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일기획에 따르면 조중동 3사에 2014년 신문광고를 가장 많이 지출한 광고주는 삼성전자(415억 원), 현대자동차(120억 원), 이마트(97억 원) 순이었는데, 언론보도에 민감한 대기업일수록 홍보효과와 상관없이 매체영향력에 가중치를 붙여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신문사들이 매해 사내부수확장에 열을 올리는 건 위험관리용 광고수주를 위해 자사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자본인 유료부수를 방어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모바일 광고시장이 증가하고 지면의 영향력이 소멸하는 과정에서 신문고시에 위배되는 탈법적 광고 기사는 더욱 깊숙이 지면 속으로 파고들고 1면을 가리는 래핑광고나 삼류광고가 자주 지면에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신문독자들이 떠날 이유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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