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에 정권 옹호성 성격의 집회를 개최하라고 지시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설이 청와대 게이트로 확산되고 있다. 

어버이연합이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과 대한민국재향경우회(경우회)의 자금을 받아 집회 동원 비용으로 썼다는 의혹 제기에 이어 집회 개최 지시를 한 인물로 청와대 인사가 지목되면서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보수 단체를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터져나왔다.

청와대는 관련 보도 하루 만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집회 개최를 지시했다는 정황이 구체적이어서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어버이연합 내부자의 증언을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안 체결과 관련해 청와대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실의 ㅎ행정관이 합의안 지지 집회를 어버이연합에 개최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사옥앞에 모인 70여명의 어버이연합 회원들과 탈북자단체 회원들이 시사저널의 보도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다른 탈북단쳬 관계자도 ㅎ행정관의 존재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탈북단체가 주도한 집회가 있었는데 이때 ㅎ행정관을 처음 만났고 이후에도 수차례 만났다. 청와대로 직접 찾아가 ㅎ행정관을 만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ㅎ 행정관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 뉴라이트 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와의 연계성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또한 탈북자단체가 그를 만나기 위해 청와대까지 방문한 것을 두고 봤을 때도 집회 시위 개최 지시 증언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민국재향경우회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집회 시위를 개최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보수단체 자금 지원의 최종 배후가 어디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확산됐는데 ㅎ청와대 행정관의 집회 개최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배후 세력의 최종 종착지로 청와대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종문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부회장은 한겨레 기자와 만나 "(전경련으로부터) 1억2000만원 안 받았다고는 못한다. 우리 인원이 200~300명 정도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1억2000만원은 떡값 수준"이라고 말해 자금 지원 의혹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1억2000만원의 돈을 추선희 어버이연합회 사무총장의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기독교선교재단의 계좌에 입금한 것으로 나왔다. 퇴직경찰 모임인 경우회도 지난 2014년 12월 탈북난민인권연합에 500만원을 입금한 것으로 나왔다.

자금 지원 의혹은 이전에도 제기됐지만 어버이연합은 회원들이 돈을 각출하고 폐지를 팔아 번 돈으로 운영비를 충당해왔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거액의 돈이 대기업과 퇴직 경찰 관련 단체로부터 나온 정황이 발견되면서 책임있는 해명을 내놓지 않은 이상 집회 시위 목적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 밖에 상황에 내몰렸다. 

핵심 인사는 추선희 사무총장이다. 그는 21일까지 외부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또다른 핵심 인사로 추정되는 인물은 서석구 변호사다. 서 변호사는 어버이연합 법률고문을 맡고 있고 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폭력 시위 주도자'를 형사 고발한 당사자다. 서 변호사는 정의구현사제단이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 규명을 요구했을 때 사제단을 '종북의 온상'이라고 비판했던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의 상임대표도 맡고 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물이 상당수 친박 인사이고, 이 중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각별한 사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검찰국장일 당시 검찰 1과장을 했고 김 전 비서실장이 법무부장관일 때 김 전 장관은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맡았다.

지난 2014년 3월 16일 어버이연합은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과 이번 자금 지원설에 연루된 경우회와 함께 '국정원 무력화 정의구현사제단과 종북세력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엔 대한민국재향경우회 구재태 회장, 서석구 변호사, 탈북난민인권협회 김용화 회장 등이 참석했다. 

서 변호사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014년까지 어버이연합 활동을 하다 기소된 사람들을 무료변론했지만 최근에 두세달에 한번 꼴로 사무실에 들릴 정도"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자금 지원과 청와대 지시설에 대해서도 "와전이 된 것이다. 회원들이 2~10만원씩 각출해 자체 회비를 걷고, 폐지 같은 걸 모아 자체 경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존에도 비슷한 의혹이 있었는데 사실무근으로 끝난 적이 있다. 진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사회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단체를 도매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2015년 10월 26일 오전 교육부 국정교과서 비밀TF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혜화동 국제교육원 앞에서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장슬기 기자.
어버이연합에서 일주일 한번꼴로 안보강연을 했던 김진철 목사도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김 목사는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 대표를 맡고 있다.

김 목사는 통화에서 "2014년 이후에 어버이연합 사무실을 거의 못나가고 있다. 예전에 저는 매주 금요일 땅굴과 관련해 시국 강연회를 무료로 한 것"이라며 "어버이연합은 어르신들이 회비를 내고 폐지도 걷어서 어렵게 이끌어온 단체"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은 지난 2006년 5월 8일 결성된 단체로 주로 진보단체를 규탄하거나 집권여당과 정부를 옹호하는 집회를 개최해왔고, 과격한 행동으로 보수단체 내에서도 '6070 용팔이'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지난 2012년 10월 공개적으로 임대료 체불로 사무실이 폐쇄됐다며 추선희 사무총장 계좌를 통한 공개 후원을 요청했다. 장경순 전 한나라당 의원은 부산 희망버스 저지 집회 당시 어버이연합에 3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10월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은 보수 최대 관변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어버이연합과 함께 집회에 참석하고 자금을 지원한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어버이연합 상임고문 조아무개씨 100세 잔치에 1400만원을 지원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MBC 부당 해고 지시 정황이 담긴 백종문 본부장과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의 녹취록에도 어버이연합 자금 문제가 나온다. 

녹취록에 따르면 백종문 본부장은 "MBC 10만 양병을 해야 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10만 양병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묻자 박한명 편집국장은 "제일 쉬운 거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고 있다"고 답했다.

박 편집국장은 "사실은 이쪽에 돈 나오는 구멍들이 제가 다 안다. 돈 나오는 구멍이 많지 않다. 거기에서 차비를 받죠. 차비를 받으면 1000명이면 1000명, 2000명이든 2000명 해서 머리에 수당들을 받았요. 그걸 받으시고 가는 것이다. 거기에 가서 도시락도 받아오시고 그게 우리가 말하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실체들"이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의 후원금 상당수가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 회원들이 보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올해 초 <데일리대한민국>과 인터뷰에서 일베에 가장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일베 회원들의 모금으로 기사회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데일리대한민국은 "다른 간부들도 이구동성으로 '일베가 아니면 어버이연합은 없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일베 사이트에서도 어버이연합 후원 인증샷을 올리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특히 어버이연합 활동 및 후원 소식을 전하고 있는 특정 아이디의 게시물엔 추선희 사무총장 계좌에 후원액 입금 사진과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2015년 7월 18일 "이름을 밝히지 않는 후원자"가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삼계탕 250명분을 제공한 소식을 전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2013년 10월 1일 200만원을 후원했다며  증거로 보내는 사람이 '미디어워치'라고 적힌 계좌 입금 내역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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