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변화했는데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유료방송시장 통합규제 도입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20대 국회에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과 통합방송법에 대한 논의가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이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입장이 변수다. 국민의당은 공영방송 문제에서는 다른 야당들과 공조하면서도 유료방송 시장규제는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다른 견해를 내놓을 수도 있다.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대한 국회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물론, 이번 인수합병 심사는 공정거래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 행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고 있어 국회가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는 정부가 내놓은 통합방송법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인 만큼, 해당 법안을 처리하고 나서 인수합병 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통합방송법은 IPTV, 케이블, 위성방송 등 별개의 유료방송 시장이 사실상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면서 방송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일관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통합된 방송시장에서 소유규제, 점유율 규제 도입이 핵심으로, 지난해 3년 일몰제로 도입된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연장여부도 통합방송법과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국정감사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비단, 이번 인수합병 건 때문만이 아니라 통합방송법 제정은 중요한 과제다. 추혜선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통합방송법은 단순히 규제를 추가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들 규제의 근거는 방송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방송이 지속적으로 규제완화 흐름으로 걸어왔다. 통합방송법 논의는 방송의 공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작업까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통합방송법이 통과된 이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논의하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IPTV를 소유한 SK가 케이블 MSO(복합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CJ헬로비전의 지분 38.6%를 확보한 상황에서 점유율 33% 규제가 들어서면 일부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권역별로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이 과반이 넘은 곳에서 점유율 규제가 이뤄질 수도 있다. 합병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합병 과정에서 ‘지역성’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합병의 대가로 다양한 투자를 요구할 수도 있다. 

20대 국회 구성 이전부터 인수합병 심사가 진행 중인 만큼 국회가 이를 엎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특별위원회를 만들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현재 19대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주파수소위원회를 구성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사에 배분하기로 확정한 700MHz 주파수 배분안을 원점으로 돌려 대폭 수정하기도 했다.

결국 ‘의지’가 관건인 셈인데 여당 의원들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인수합병에 동의하고 유료방송 시장 규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이 야3당과 달리 유료방송 공약을 전혀 내놓지 않은 것도 “인수합병에 동의한다는 침묵의 공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도입할 때 새누리당의 반대로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다 결국 ‘3년 일몰제’로 통과되기도 했다.

▲ 5일 서울 마포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당선자 대회에서 국민의당 지도부가 웃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20대 총선 공약에서 유료방송 시장규제를 언급하는 등 비교적 입장이 분명하다. 미방위에서 시장규제에 적극적이던 우상호, 유승희 더민주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언론시민단체 출신인 권미혁 더민주 당선자, 추혜선 정의당 당선자가 미방위를 희망하고 있기도 하다. 유료방송 진영과 대립하고 있는 지상파 출신 의원이 더민주에 대거 포진했다는 점에서도 시장규제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데 긍정적인 요소다.

그러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유료방송 시장규제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 정책국 관계자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과 통합방송법에 대한 입장을 묻자 “20대 국회에서 다뤄야 할 내용들은 아직 정리 중이다. 당론으로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유료방송 관련 미디어 공약을 내놓긴 했지만 ‘콘텐츠 사업자와 유통사업자 간의 공정거래 확립’이 유일해 통합방송법에서 말하는 시장규제와는 거리가 있다.

국민의당이 공영방송 문제는 더민주, 정의당과 공조하면서도 유료방송 시장규제 문제에서는 다른 입장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방위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안철수 대표가 경제적인 면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내고 있다”면서 “국민의당이 무조건 더민주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경제 활성화 프레임으로 더민주와 차별성을 두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점유율이나 소유 규제에 동의하더라도 더민주에 비해 기준을 낮게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이 미디어 분야에 대한 정책 지향점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 의원들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국민의당 소속 의원 중 정호준 의원이 SK텔레콤 인수합병에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등 유료방송 시장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편이었으나 재선에 실패했다. 국민의당 소속으로 미방위 출신인 문병호, 최원식 의원도 재선에 실패했다. 미방위 출신으로는 장병완 의원만 국민의당에서 다시 배지를 달았지만 장 의원은 미방위 법안소위 출신도 아니고 상임위 활동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역구 관리에 더 힘쓰는 스타일이다. 

다른 미방위 관계자는 “주파수 배분 때 그랬듯 결국 ‘산업성’과 ‘공공성’이 대립하게 되면 양쪽 주장 다 설득력이 있어 어느쪽을 택해도 이상하지 않다”면서 “통합방송법은 근본적으로 방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가치부터 정립해야 하는데, 야3당 정책의 지향점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야당이 의견을 통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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