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노인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9일 경기도 용인 총선 유세 중 “동성애는 인륜을 파괴하는 것”이라 한 것에 대해 한 누리꾼이 남긴 비난의 표현이다. 세월호 2주기인 지난 16일 보수단체 엄마부대봉사단이 ‘광화문 광장을 돌려달라’며 집회를 열었다. 이에 ‘정신이 나갔다’, ‘돌았다’는 말을 트위터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성소수자, 세월호 유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의 도구는 ‘미쳤다’, ‘돌았다’, ‘정신 나갔다’ 등 정신장애인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호모’라는 말은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여 사용을 자제한다. 올해 초에는 ‘병신년(丙申年)’이 신체 장애인을 비하하는 ‘병신’을 연상케 한다며 ‘병신년’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주장도 있었다. 한국 사회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은 인권의 언어에서 배제돼 있다. 정신장애인은 그 자체로 모욕이다.

정신장애, 그 낯선 존재

정신장애인이란 표현조차 낯설다. 보통 ‘정신병자’, ‘미친 사람’ 정도로 통용된다. 정신장애는 장애인복지법상 규정하고 있는 15개 장애유형 중 하나로 조현병(정신분열증), 조울증, 공황장애로 자주 불리는 불안장애, 강박증, 외상 후 스트레스, 과잉운동성장애(ADHD) 등의 정신질환을 뜻한다.

정신장애는 지능이 낮은 발달장애와 다르다. 발달장애는 유전, 환경호르몬 등의 이유로 의사소통이나 인지 발달이 늦는 것이지만 정신장애는 보통 가족의 학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후천적으로 정신질환을 얻은 경우를 말한다.

▲ 사진=pixabay

의학적 치료, 종교적 염원, 사회적 격리를 통해 정신장애를 없애거나 정신장애인을 격리해야 한다는 믿음은 ‘한국적 현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사회에선 의료의 의미만 담긴 ‘정신질환(mental illness)’보다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담긴 ‘정신장애(mental disorder)’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사회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는 지난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신장애가 병이라며 해결해줄 수 있는 환상 같은 것을 상정하고 있다”며 “보통 정신질환이 생겨도 혼자 있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사회로 나갈 때 사회와 만나는 접점에서 장벽, 장애가 생긴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 그들은 위험한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성적이지 않다. 가수 이효리, 개그맨 정형돈, 소설가 이외수와 같이 유명한 이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다르다.

정신장애인들은 악착같이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해 숨겨야 한다.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인 단체인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Korean Alliance of Mental Illness)에는 회원이 5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 역시 모두 정신장애 사실을 커밍아웃한 것은 아니다.

박미선 KAMI 사무국장은 지난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난 그래도 서울대 나오고 교직에도 있었고 사회생활을 잘해 정신장애인이라고 밝히고 다니며 인권운동을 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내가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보건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얼마나 무시당한 줄 아느냐”고 말했다.

치료가 시작되면 차별도 시작된다. 취업 등에서 배제되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정신질환을 가질 경우 담당 전문의의 허락이 있어야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 국가도 정신장애인을 배제한다. 경찰은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경력을 조회해 면접을 강화할 방침이고, 법원·국가정보원·청와대 경호실 등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 공무원 공채시험에서 심리검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사회분위기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배우 김성민은 주식투자 실패와 사기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주변에서 치료를 권유했지만 ‘연예인이라 외부에 알려질까 받지 못하겠다’며 괴로워하다 마약에 손을 댔다.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면 곪을 수밖에 없다. 처음 발현부터 첫 치료까지의 기간은 영국 30주, 미국 52주, 캐나다 56주인데 한국은 84주(2008년 기준)나 된다.

정신장애인에 대해 ‘위험하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지만 이들의 범죄율은 오히려 더 낮다. 2012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범죄자 총 128만명 가운데 정신장애인의 비율은 0.3%에 불과하다. 군대에서 총기난사나 가혹범죄 가해자 중 정신질환자로 밝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들도 평등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형법 등에 따라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괴롭히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다. ‘정신병자’, ‘정신이상자’, ‘사이코패스’라며 손가락질하는 행위 등이 그렇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미디어에서도 범죄 등의 행위를 정신장애인과 연결하는 보도나 드라마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물론 실제 심의가 잘 되고 있진 않다.

▲ 지난 18일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18일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한 예로 지난 17일 광주의 한 등산로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8일 TV조선은 “범행 30분 만에 체포된 49살 김 모 씨는 경찰조사에서 혼잣말을 반복하는 등 정신질환을 의심받고 있지만 아직 병원치료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범죄자를 일단 정신장애인으로 추정하는 해당 보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것도 차별이다. 상법에 따르면 심신박약자의 보험계약은 무효라는 규정이 있지만 정신장애인이 모두 심신박약자에 해당하진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적장애 및 정신과 약 복용을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절한 사안에서 피해자의 보험청약건을 정식으로 심사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13진정388500 결정)

채용이나 면접시 차별 역시 있어선 안 된다. 어머니가 조현증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항공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항공운항학과에 지원한 사람을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평등권 침해로 보아 시정 권고했다. (13진정51500 결정) 정신보건법 제41조에도 정신병력을 이유로 교육 및 고용기회 박탈, 불공평 대우 등을 금지하고 있다.

정신장애인들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상의 차별이 존재한다. 목욕탕에서 ‘정신질환자 출입금지’하거나 교회에서도 ‘담배냄새가 난다’ 등의 다른 이유를 들어 다른 교회로 옮기라는 등의 배제가 일어난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할 문제다.

매드 프라이드 “그래 우리는 미쳤다”

동성애자를 뜻하는 게이(Gay)는 ‘즐거운’이라는 뜻이다.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소수자를 설명해 차별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퀴어(Queer)는 ‘괴상한’이라는 뜻이다. 이제 퀴어라는 말의 의미는 뒤집혔다. 퀴어문화축제, 퀴어퍼레이드 등 동성애자뿐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됐다. 이처럼 어떤 용어로 설명할 것인가, 용어의 뜻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소수자를 지칭할 때 중요하다.

▲ Mad Pride Toronto 2015
▲ 지난해 프랑스에서 진행된 매드 프라이드 행사.

정신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미쳤다’는 이유하나로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은 매년 7월14일을 전후해 ‘매드 프라이드(미친 이들의 자존감)’ 행사를 연다. 퀴어문화축제와 비슷한 형식의 행사로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 문을 열었던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의미다. ‘미친’, ‘광인’ ‘미치광이’ 등 정신장애인을 적대하는 단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목표다.

아직 한국에서는 없는 이 행사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행사 마지막 순서에서 사람들은 ‘나 미친 사람이요’라고 드러낼 수 있는 옷 등을 입는다. 미친 것은 병일까, 죄일까? 혹은 틀린 걸까,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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