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는 비명소리가 언론계 곳곳에서 들린다. “뭘 해도 안 된다”는 자조까지 들린다. 그동안 언론의 생계를 떠받쳐왔던 광고시장은 꾸준히 악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언론의 목표는 어느새 ‘생존’이 됐다. 신문과 방송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고 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 미디어오늘은 ‘한국 언론 혁신과 생존’이라는 주제로 12회에 걸쳐 언론의 다양한 시도를 조망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태양의 후예’ 과도한 간접광고로 네티즌 불만’ 
‘포토샵으로 음료캔 삽입, ‘태양의 후예’ 중국 국내판 간접광고 질타!’

익숙한 지적이지만 한국 언론의 보도가 아니다. 중국언론 신화망, 봉황망의 비판 기사다. 신화망은 지난 9일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대해 “극 중 등장하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쓰는 것 등 모두가 그야말로 일분일초 매순간마다 간접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면서 “경비 때문에 간접광고를 하더라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태양의 후예’는 한 회가 방송되는 동안 무려 10여개의 브랜드 간접광고가 들어가기도 했다. 서대영(진구 분)과 윤명주(김지원 분)가 특정 회사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자동주행 기능을 켜고 키스를 하는 장면이나 유시진(송중기 분)이 시도 때도 없이 홍삼 농축액을 먹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도를 넘는 간접광고에 익숙해진 한국 시청자들과 달리 중국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광고가 덮어버린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유는 시장이 좁은데 사업자가 많다보니 경쟁이 과열됐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채널들은 광고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가 하면 ‘교도소 담장을 넘나드는’ 편법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지상파 방송사는 규제완화에 ‘올인’하고 있다. 디지털이 새로운 광고시장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인트로 장면. 간접광고 뿐 아니라 가상광고까지 프로그램 내에 들어왔다.

종편, ‘신문’ ‘방송’ ‘잡지’ 패키지 광고영업 등장

유료방송 채널의 방송 광고영업은 공격적인 수준을 넘어 섰다. 홍보업계에 따르면 한 종합편성채널은 일선 홍보대행사에 자사 계열의 신문과 방송, 잡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광고상품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종편 예능에 광고를 집행하면 계열사 신문과 잡지에도 광고를 해주는 식의 판매 제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종편의 특성을 활용한 광고전략이다. 

지난해 선데이저널이 폭로했던 ‘MBN 미디어렙 영업일지’에 따르면 돈을 받고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광고를 주지 않자 속칭 ‘조지는’ 보도를 내보내는 등의 정황이 나오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종편 방송사들의 주요 수입원은 아직 방송이 아닌 신문을 기반으로 한 인쇄매체 아니겠나. 아직은 종편이 자리를 잡아가는 불투명한 단계이니 신문에서 종편으로의 수익구조 전환 과정에서 나오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유료방송채널 중 가장 유력한 사업자인 CJE&M의 광고영업도 만만치 않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CJE&M 계열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인 온스타일의 미용 프로그램 ‘겟잇뷰티’ 광고 제안서를 보면 프로그램을 위한 광고가 아니라 광고를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안서에 따르면 광고 상품 출시일에 맞춰 미리 방송일자를 정할 수도 있고, 간접광고를 위한 스토리도 구성할 수 있다. 방송 뿐 아니라 SNS, 포털 홍보를 병행하는 상품도 있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겟잇뷰티의 경우 연초에 상반기 부킹(광고 예약)이 다 끝났다”면서 “화장품 광고는 지상파 예능보다 겟잇뷰티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 CJE&M의 '겟잇뷰티' 광고 제안서에 따르면 돈을 받고 프로그램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내용, 방송광고를 집행하면서 네이버와 SNS등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병행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업계에 따르면 CJ처럼 한 기업에서 여러 채널을 운영하는 MPP(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경우 방송 광고를 패키지로 묶어 여러 채널에 들어갈 방송 광고를 동시에 판매한다. A라는 프로그램에 방송 광고를 하려면 잘 팔리지 않는 계열사 채널 프로그램의 광고까지 함께 묶어서 사야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같은 영업행위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종편의 신방겸영 광고패키지는 신문법과 미디어렙법을 통해 별도로 광고를 집행해야 하는 현행법 테두리를 넘어서는 편법 행위다. 겟잇뷰티의 경우 특정상품의 특·장점을 설명하는 등 지나친 간접광고로 여러 차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았는데 제안서 내용은 사실상 규제를 비웃고 있다. 

유료방송이 광고영업을 하면서 PPL(간접광고)과 협찬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협찬의 경우 직거래가 가능한 대신 반드시 협찬을 받았다는 점을 고지해야 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일단 협찬으로 잡아 놓고, 논란이 되면 PPL처럼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걸리면 PPL’ ‘안 걸리면 협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종편과 PP 등의 패키지 방송광고 판매 전략은 방송 광고 단가 상승을 통한 광고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방송 광고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종편과 PP 등이 패키지 광고 영업 전략을 내세우면서 광고 단가가 기본 억 단위에서 형성되고 있다. 한 프로그램 당 1000만 원 대에서 방송 광고 가격이 형성됐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지상파의 경우 1000만~5000만 원 사이 광고를 판매할 때 작은 광고 하나 더 사달라는 정도였지만 CJE&M계열 채널들은 3억, 5억, 8억 단위의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고 말했다. 

지상파, “PPL, 우리도 보기 싫지만 방법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지상파 방송사들의 ‘앓는 소리’는 절정에 다다랐다. 과거 지상파 3사 중심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방송 광고 시장의 축이 종편과 케이블 채널 등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업계에서는 과거 주요 방송사를 지상파 3사로 분류했던 것과 달리 JTBC와 tvN을 포함해 ‘주요 5개 방송사’로 분류할 정도다.

지상파 광고의 몰락 조짐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10년 간 전체 방송 광고 시장은 7.1% 커졌지만 정작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매출은 22% 떨어졌다. 지상파 방송 광고의 점유율도 10년 만에 79%에서 57.7%로 급락했다. 반면 CJ계열 PP의 경우 10년간 광고매출이 341%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 같은 통계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

광고 단가 역시 tvN과 종편 등의 유명 프로그램은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 광고 단가와 거의 동등한 수준까지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tvN의 ‘미생’이나 ‘응답하라’ 시리즈 등이 여러 차례에 걸쳐 성공을 거둘 때마다 광고 단가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다른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광고 단가만 놓고 비교하자면, 지상파 방송사가 120이라면 CJ 계열 PP나 JTBC 등의 광고 단가는 100까지 따라잡은 상황이다. 프로그램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보다 더 높은 광고 단가를 책정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주들이 예전 같으면 먼저 지상파 방송사에 광고를 해달라고 찾아갔겠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tvN이나 JTBC 등의 유명한 프로그램에 광고 계약서를 들고 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결국 지상파 입장에서는 ‘광고 규제완화’를 탈출구로 인식하고 있다. 기존에 광고를 하지 못하던 영역과 품목에 대한 광고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지상파가 가장 시급하게 요구하는 건 중간광고다. 프로그램 앞뒤로 붙는 광고가 더는 효과가 없어졌기 때문에 주목도가 높은 중간광고 도입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작 ‘태양의 후예’가 3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했지만 “중간광고가 없어서” 시청률 17%를 기록한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광고비가 낮게 책정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지상파 광고팀 관계자는 “지상파의 경우 지금 허용된 방송광고로 최선을 다해봤자 한계가 뚜렷하다. 광고비는 시청률에 맞춰 책정되는데 지상파 방송은 중간광고가 없기 때문에 35%의 시청률이 나와도 프로그램 전후의 광고시청률은 5~6%에 머무른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중간광고가 들어간 1분과 프로그램 내의 최고 시청률이 모두 20%대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광고 단가가 책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지상파 특혜라고 비판을 하는데, 특혜를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송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대등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상파는 정말 돈 나올 곳이 없다. 유료방송과 달리 돈 안 되는 공익적인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고, 프로그램 제작 비율도 월등히 높으니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지상파는 프로그램 앞뒤에 붙는 광고가 썰물처럼 빠지고, 원하는 만큼의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는 데다, 콘텐츠 및 재송신 가격협상도 지지부진한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지상파는 광고 효과가 높은 프로그램 내부에 최대한 광고를 몰아넣는 간접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간접광고가 많이 붙는 게 보기 안 좋다는 거 알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정부는 종편 눈치 보느라 규제완화 해주지 않으면서 재송신 가격협상이나 콘텐츠 가격 인상도 막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KBS 드라마 '다 잘될거야' 화면 갈무리. 등장인물이 광고주의 매장을 운영하는 설정으로, 간접광고가 지나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았다. 실제 광고주가 출연하는 인간 간접광고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상파의 경우 유료방송처럼 채널별로 타겟층이 명확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간접광고 경쟁력에서도 유료방송에 밀리고 있다. 광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상파는 새 학기가 되면 20~30대가 주로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는 노트북 간접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중장년층 시청률이 높은 일일 드라마의 경우 건강식품 간접광고를 내보내는 등 나름대로 전략을 짜고 있지만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 광고주들도 반신반의하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해 9월부터 지상파 드라마와 예능에 CG(컴퓨터그래픽)로 된 가상광고가 도입됐지만 예상과 달리 광고 매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2015년 지상파 전체 광고매출에서 간접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0.4%에 불과했다. 지상파 관계자는 “당시에 광고주들이 관심 갖고 광고 집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규제가 까다로워 광고주들이 집행을 꺼렸다. 방송사당 매출도 한 달에 10억 원 정도를 기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상광고 규제완화를 밀어붙였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규제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면서 방송사와 광고주들이 가상광고를 꺼리게 됐다.

간접광고 시장도 이미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 지난 11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외주제작사도 방송법 상 지위를 부여하고 간접광고를 할 수 있도록 의결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보다 파이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국내외 시청자가 반발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브랜드 신뢰도를 훼손할 가능성도 크다.

지상파 ‘콘텐츠 투자’ 제대로 하고 있나

광고 시장의 외적요인도 중요하지만, 어찌됐건 지상파의 콘텐츠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방송광고 규제를 완화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시청자의 호평을 받을만한 콘텐츠 실험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소극적이다.

얼마 전 종영된 tvN 드라마 ‘시그널’은 김은희 작가와 SBS 간 편성 논의가 결렬되고 난 후 tvN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SBS에서는 ‘시그널’이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물인데다 러브라인이 없어 보편적인 시청자의 인기를 끌기 어렵고, 장르 특성상 간접광고를 유치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에서 대박을 터트린 ‘태양의 후예’ 역시 먼저 SBS에서 제작 논의가 있었으나 SBS는 해외 촬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고 사전제작을 해야 하는 데 따른 위험부담, 카페나 식당 촬영장면이 적어 간접광고를 넣기 힘든 점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KBS는 ‘홍삼 PPL’ 등 다른 돌파구를 찾았는데 간접광고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은 돈이 될 만한 콘텐츠가 아니면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험적인 방송 콘텐츠가 지상파가 아닌 유료방송에서 나온다는 것이 시청자의 인식이기도 하다.

한 방송 광고 대행업체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광고 매출이 줄었다며 힘들다고 하지만, CJ만큼의 콘텐츠 투자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JTBC나 tvN만큼 방송 콘텐츠를 만들고 나서 중간광고 도입 이야기를 해야 맞지 않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상파 관계자는 “JTBC나 CJ는 자본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상파에는 집중적으로 투자할 자본이 없다”면서 “KBS의 경우 단막극 제작 때 정부 지원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절반의 제작비용도 없어 단막극 제작도 포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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