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문화는 불통의 온상이며 민주주의의 적이다. 진영에는 오로지 적과 아군으로 구분된 승패의 논리만 존재한다. 그 속에서 선악의 분별, 정의, 인간의 존엄, 도덕성 등 인간사회의 건강한 가치는 무시된다.

지난 1월 25일 한겨레와 뉴스타파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MBC 불법해고 사건’은 부정과 비리로 점철된 공영방송의 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두 달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해결은 고사하고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다. 진영문화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1월25일자 뉴스타파 보도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갈무리.

‘MBC 불법 해고 사건’ 진실규명을 덮으려는 이들

이 사건의 첫 보도부터 지금까지, 지상파방송과 조․중․동, 그리고 JTBC를 제외한 3개 종편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론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들 주류 언론의 침묵은 이 사건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만들어버렸다. 동업자 카르텔과 정치적 이해를 함께 하는 진영의 패거리문화가 유감없이 작동된 것이다. 사건 발생 주체인 MBC는 적반하장으로 사건을 공개한 국회의원에 대해 보복성 보도를 해 ‘전파 사유화’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규제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도 진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사건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진상규명은 여측 위원들의 반대로 묵살됐고, 국회 미방위의 MBC청문회 또한 여당의 거부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더욱 참담한 것은 MBC의 공적 의무와 관리․감독의 책임을 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조차도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할 뿐 아무런 조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보도가 나가기 오래 전부터 방문진 일각에서 이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공론화하지 않은 것은 방문진이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마저 든다.

처음 보도를 접한 방문진의 다수 이사들은 ‘술 먹고 허세부린 것’이라며 사건을 얼버무렸다. 그들은 언론보도의 과장과 왜곡 가능성을 핑계대면서 녹취록을 봐야 진상파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녹취록을 입수한 뒤에는 ‘사적인 술자리론’을 되풀이했고 “방문진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며 억지를 부렸다.

백종문 본부장은 지난 3월17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관련 보도가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 허위라면 스스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꼴이니 이보다 더 한 자가당착이 없다. 이 자리에서 방문진의 ‘다수 이사들’은 단 한 마디의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질의하는 이사를 향해 “질문만 하라”, “질타하지 말라”며 끼어들었고, 심지어는 “언제까지 할 거냐”는 등 무례한 방해공작을 서슴지 않았다. 방문진이 ‘안광한의 호위무사’라는 세간의 치욕스런 풍문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아 낯이 뜨겁다. 권한과 책임을 던져버리고 봐주기와 덮기로 일관한 방문진의 행태는 진영에 갇혀 갈 때까지 간 더러운 패거리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월18일 서울 여의도 방문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종문 녹취록’ 진상규명과 안광한 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녹취록 상당 부분 내용이 현재 MBC 상황과 그대로 중첩

이 사건은 담겨진 내용만으로 언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14년 3월의 1차 회동에서 폴리뷰 기자들을 자기편이라고 굳게 믿은 백종문 본부장은 그들 앞에서 2012년 파업 당시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방송출연, 지속적인 정보제공, 외주제작 등 폴리뷰 사람들의 노골적인 청탁도 있었다. BBK나 광우병 등과 같은 프로그램은 “다 통제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MBC <2580>에서 쌍용차 이슈를 다룬 것을 두고는 “내가 있었으면 안 뚫렸지”라며 자신의 통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지역도 보고 다 봤다”는 등 경력사원 채용 시 지역색을 검증했던 정황도 나왔다. 경영상 온갖 부당하고 불법적인 전횡이 이루어졌고 부도덕하고, 반윤리적인 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녹취록의 내용들이 상당 부분 현재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과 그대로 중첩된다는 사실이다. 백 본부장이 언급한 ‘10만 양병’은 노조를 말살시키겠다는 현 경영진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 공정방송 조항을 폐기한 채 4년째 단체협상을 기피함으로써 내적 자유를 억압하고, 능력 있는 피디와 기자와 아나운서들을 제작현장에서 배제하고, 신입사원 채용을 기피하고 경력사원만을 채용하는 등 현재 MBC의 비정상적인 경영행태는 녹취록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경영진의 ‘MBC DNA 바꾸기’는 실패할 것

그러나 MBC의 DNA를 바꾸려는 현 경영진의 기도는 성공할 수 없다. 얼마 전에 실시된 MBC노조의 파업찬반투표에서 90% 넘는 투표율과 80% 넘는 찬성율로 파업이 가결된 것은 현 MBC경영진이 대다수 구성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십 년 간 축적된 공영방송의 DNA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진영문화는 우리사회를 소통과 타협이 아닌 불통과 대결로 몰아가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한 때 괜찮은 피디로 기억되었던 백종문 본부장이 건강한 ‘인간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길은 방문진이 하루 빨리 진영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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