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4회로 구성됩니다.

언론이 말하면 현실이 된다

20세기의 과학자 카를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하며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웠다. 하이젠베르크의 발견은 우리가 전자(電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자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빛을 보내면 그 빛이 전자에 영향을 미치며 운동량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즉 관찰 대상을 측정하려는 사람의 측정 행위가 측정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언론과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반영하려는 언론의 보도 행위가 오히려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언론이 더불어민주당에 ‘친노 패권주의’가 있다고 하면, 진짜 친노 패권주의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은 더민주의 문제점이 친노 패권주의라고 생각하게 되고 더민주 지도부는 친노패권주의를 청산하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언론이 경제가 위기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위기라는 생각에 소비를 줄이고, 그럼 진짜로 경제가 휘청거린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에서 출마하려는 30대 청년 후보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청년 표를 많이 얻으려면 당에서 후보님 같은 청년들을 밀어줘야 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후보가 웃으면서 답했다. “그렇게 기사를 써주세요. 그래야 그게 현실이 됩니다”

이처럼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구성한다. 우상호 더민주 의원은 1월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금 같은 보도패턴은 속된말로 미쳤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우리들이 액터(Actor)다. 우리 직업이 정치고 기자들은 보도하는 일이 직업”이라며 “물론 사건을 해석할 순 있다. 그런데 지금은 기자들 자신들이 정치판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정치인을 따라오게 만들려는 것 같다. 오만하다”며 “정치를 넘어선 정치보도는 고쳐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 의원이 사례로 든 보도는 안철수 의원이 2015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후 쏟아진 ‘탈당 행렬’ 보도다. 더민주 의원 30명이 탈당해 안철수 신당으로 갈 거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더민주가 사실상 분당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기사도 쏟아졌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신당은 총선 직전인 3월 중순이 되어서야 겨우 원내교섭단체(20석)를 구성했다.

검증과 해석 대신 난무하는 ‘워딩 저널리즘’

언론이 현실을 만들면서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기제가 ‘워딩’이다. 기자들은 수없이 많은 말, 즉 중요한 인물들의 ‘워딩’을 구하러 다닌다. 기자란 사실 워딩 구하는 직업이라 말해도 다를 게 없다. 언론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요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의 워딩을 기사로 옮긴다.

국회 본청에 가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회의실 앞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뻗치기’를 하고 있는 광경을 손쉽게 볼 수 있다. 뻗치기란 취재 대상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행위를 말한다. 중요한 의원총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백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회의장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밤도 낮도 없다.

▲ 4·13 총선 공천에서 배제된 더불어민주당 3선의 전병헌 의원이 2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잔류 및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몇 시간을 기다리면 당 대표나 원내대표, 아니면 주요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기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에게 녹음기나 핸드폰을 들이댄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그렇게 늘 뻗치기를 한다. 워딩을 구하기 위해서다. 국회에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 90% 이상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바로 이 ‘뻗치기’다.

한 뉴스통신사의 정치부 기자는 “가끔씩 이게 뭐하는 짓인지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저번에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회의라 새벽 3시까지 기다렸는데,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한 마디도 안 하고 가버렸다”며 “3년차 기자인데 기사를 안 쓴다. 그냥 정치인들 워딩만 받아서 선배 기자에게 보내면 선배 기자가 알아서 쓴다”고 전했다.

아침 9시, 이르면 8시 반이면 각 정당의 아침회의가 열린다. 카메라 기자까지 포함하면 거의 30~40명의 기자들이 매일 아침 회의에 들어온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당 대표와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의 발언을 받아친다. 이 회의에 안 들어오면 발언을 알 수 없는 걸까? 아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인 10시~10시 반, 새누리당이 정리한 워딩이 출입 기자 전원에게 메일로 뿌려진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금 늦은 11시 반~12시경 당직자들이 정리한 워딩을 메일로 뿌린다.

1~2시간만 지나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부 기자들이 다 알 수 있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발언은 ‘속보’라며 시시각각으로 포털뉴스 정치면을 장식한다. 한 정치부 기자는 “이러다간 진짜 ‘김무성 오늘 몇 시 출근’ 이런 것도 속보가 될 기세”라고 탄식했다.

물론 정치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말을 전하는 건 중요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 ‘말’ 밖에 없다는 점이다. 말은 말일 뿐 팩트가 아니다. 더민주의 한 의원이 “30명 넘게 탈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30명 탈당’이 팩트는 아니다. 그 의원이 탈당을 부추기는 의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상호 의원은 “모 의원이 우리당에서 국회의원 30명이 탈당한다고 했다. 그건 그 분의 주장”이라며 “그럼 그 주장이 맞는지 취재를 해야 한다. 그게 기자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우 의원은 “취재를 제대로 한 언론사가 없었다. 그 분이 발언한 다음에 거명된 사람을 다 만나봤는데 택도 없는 소리였다”며 “그 보도를 통해 우리 당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나간 사람이 열 명도 안 되는데, 국민들 머릿속에선 30명 나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안철수 의원의 ‘공정성장론’을 비판한다. 그러면 기자들은 안철수 대표의 반응을 듣기 위해, 그리고 김 대표의 재반박을 듣기 위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안 대표와 김 대표를 기다린다. 정동영 전 의원이 SNS에 김종인 대표와 더민주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다. 기자들은 시장에 방문한 김 대표에게 의견을 묻는다. 김 대표는 “심심하니까 글 한 번 쓰는 것이겠지”라고 답한다. 국민의당은 발끈해서 “예의를 지키라”며 논평을 낸다. 그러면 기자들은 김 대표를 찾아가 “예의를 지키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김 대표는 “무슨 예의를 지켜”라고 일축한다. 이 모든 하나하나의 발언이 다 기사가 된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였던 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하며 유 의원에 대한 비토 의사를 드러냈다. 기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유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사퇴할지 말지 였다. 유 의원이 국회 본청에 나타나자 한 방송사 기자와 카메라가 유 의원을 따라붙는다. “사퇴하실 겁니까?” 대답은 없다. 다시 묻는다. “사퇴하실 겁니까?” 유 의원이 차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자의 질문은 ‘사퇴하실 겁니까’ 뿐이다.

다음 날 다시 유 의원이 본청에 나타난다. 어제의 그 기자가 다시 카메라와 함께 유 의원을 따라간다. “사퇴하실 겁니까?” 어제와 똑같은 그림이 반복된다. 어제도 오늘도, 해당 방송사 뉴스에는 여러 차례 사퇴 의사를 묻는 기자, 그리고 묵묵부답인 유 의원이 모습이 방영된다. 시청자들이 이 뉴스를 보고 알 수 있는 건 기자가 사퇴할 거냐고 물었고 유 의원이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한 정치부 기자는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다 똑같은 워딩을 따려고 기다리고, 의원들 따라다니면서 입에다 녹음기 대고 있다가 워딩을 푼다. 이게 도대체 한국정치와 정치 기사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워딩으로만 기사를 쓰니 의원들도 내실 있는 고민을 안 하고 언론에 나올 말들만 쏟아내고 진짜 중요한 쟁점과 사안은 다 사라져 버리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새누리당 공천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의 행보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3월 17일 오후 대구시 동구 용계동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 자택 앞에 취재진 카메라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는 저서 ‘비욘드 뉴스’에서 “오늘날 신문과 전통 뉴스 방송에서 해석으로 통하는 것들 상당 부분은 맥 빠진 생각들을 정성껏 배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 해석들은 너무나 자신 없고 밋밋할 분 아니라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에게 외압을 행사하자

이처럼 뉴스 소비자들은 기사를 통해 누가 A라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 B라고 반박했다는 워딩의 나열을 접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C라고 평가했고 한 관계자는 D라고 해석했다는 말도 나온다. 기자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이러한 워딩의 나열은 사실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야당의 분열을 바라는 정치인이 한 말을 전하는 기사를 보며 사람들은 야당은 분당 직전으로 인식한다.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여당 정치인이 전하는 ‘지역 민심’(예컨대 “그래도 대통령을 도와야지”라는 지역 주민들의 말) 르포 기사를 보며 사람들은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 간의 말싸움을 생중계하는 기사를 보며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이라며 정치 혐오를 키우기도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이강희 조국일보 논설위원(백윤식 역)은 정치깡패 안상구가 폭로한 미래자동차 비자금 관련 수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폭 안상구가 알 수 없는 조직의 사주를 받은 정치공작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강희 논설위원은 이어 자신의 발언을 정정한다. “아,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이강희는 ‘매우 보여진다’는 워딩을 통해 자신을 정치공작의 피해자로 만들고자 했고, 이 워딩을 받아 쓴 영화 속 언론은 이러한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 영화 내부자들 한 장면. 이강희 논설위원이 기자들 앞에 서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찾아내야 할 것들은 바로 이 화려한 말의 성찬 뒤에 숨은 기자들과 언론의 진짜 생각이다. ‘뉴스 파파라치’ 시리즈가 이 ‘진짜 생각’를 찾아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싸우고 있다. 정치권력. 자본권력, 그리고 이들에 동조한 회사 권력과 싸우는 걸 업으로 삼은 채 기사 한 줄을 가지고 씨름하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다. 뉴스 소비자가 뉴스를 보며 던지는 질문은 이들에게 한 줄기 핑계가 되어줄 것이다. 기자가 “야, 이 기사 안 내리면 우리 광고 날아가”라고 말하는 데스크에게 “이거 기사 내려가면 독자들이 뭐라고 할까요?”라고 되묻는 패기, 이 패기가 당연해지는 사회야말로 저널리즘이 살아  숨 쉬는 사회다.

기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정치권력, 자본권력, 회사 권력의 외압이 아니라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이런 점은 왜 보도 안합니까”라고 따져 묻는 독자들의 외압이라면 어떨까. “이 기사는 다른 관점을 더 강조했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외압이라면 어떨까. 그런 외압이라면, 아무리 시달려도 좋지 않을까.

* 뉴스 파파라치 연재 목차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8) 같은 뉴스 다른 판단 : SBS는 왜 문창극 친일발언을 보도하지 못했나

3. How to read 뉴스, 초급편 : 텍스트 읽기

(9) 뉴스를 읽는 두 가지 키워드 : 의제설정과 프레임

(10) 뉴스 읽기의 기본 :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전제조건을 보라

(11) 언론의 권력, 보도하지 않는 힘 : 언론이 숨기는 것

4. How to read 뉴스, 중급편 : 컨텍스트 읽기

(12) 행간 속에 숨겨진 의도 : 대선개입은 왜 대선불복에 먹혔을까

(13) 뉴스의 흥행법칙 : 편견에 기대고 편견을 강화하라

(14) 실전! 종북 빨갱이 언제 먹히고 언제 안 먹히나

5. How to read 뉴스, 고급편 : 언론산업 읽기

(15) 언론도 기업이다 : 지배구조를 보면 언론이 보인다

(16) 삼성일가와 손석희 뉴스,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가

(17) 기사인가 광고인가 : 돈 받고 쓴 기사 찾아내는 법

(18) 갑자기 사라진 기자들, 왜?

(19) 지상파가 지지하는 정책, 종편이 지지하는 정책

6. 뉴스의 미래, 짐승뉴스 전성시대

(20) 너 뉴스 어디서 보니? : 포털에 지배당한 ‘벗은’ 뉴스

(21) 이것도 뉴스일까 : 허핑턴포스트와 피키캐스트, 그리고 고양이 뉴스

(22) 왜 신문을 안볼까? 그런데 왜 안 망할까?

(23) 대안없는 대안언론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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