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온라인 여론통제 논란을 불러온 ‘잊힐 권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달리 제3자의 게시물에 대한 삭제·블라인드 처리가 아닌 본인의 게시물에 대한 삭제·블라인드 처리가 핵심이다. 여론통제 논란이 제기되자 방통위가 권한을 축소한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5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세미나를 열고 ‘잊힐 권리’ 보장 차원에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했다. 이용자가 자신이 작성한 과거 게시물을 차단 및 삭제하거나 포털 검색 시 나타나는 해당 게시물 링크를 차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은 가이드라인의 도입 배경에 관해 “이용자가 자신의 게시물을 지울 수 없는 등 통제권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가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을 요구할 수 있는 게시물은 글, 댓글, 사진, 동영상 등을 포함한다. ‘접근배제 요청’은 법인이 아닌 개인만 가능하며 대상 사업자는 게시판 관리자, 포털을 비롯해 국내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사업자도 포함된다. 이들 사업자는 이용자가 접근배제를 요청할 경우 게시물을 삭제해야 하며, 삭제가 불가능할 경우 블라인드 처리를 해야 한다. 삭제되거나 블라인드된 게시물이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 추후 제3자가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다.

이용자가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자기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 회원 탈퇴 또는 1년간 계정 미사용 등으로 회원정보가 없어 본인이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회원 계정정보를 분실해 삭제가 어려운 경우 △게시판 관리자가 사이트 관리를 중단한 경우 △사자가 생전에 접근배제요청권의 행사를 위임한 지정인이 사자의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접근배제를 요청하는 경우 △게시판 관리자가 게시물 삭제 권한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가이드라인은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다. 정무직 공무원 등 공직자, 기자 등 언론기관 관계인 및 이에 준하는 공인이 그 업무에 관해 작성한 게시물로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게시물은 삭제나 블라인드를 요청할 수 없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가이드라인이 알려진 초안보다 진일보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필요 이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을 경우 예외이고, 이의신청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라는 기준은 법관 수준은 돼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며 “이를 사업자들에게 맡기기 보다는 분쟁조정위원회 등의 기관을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인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이미 김영란법과 제3자 명예훼손 규정 개정 때 논란이 된 바 있다.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해당 게시물이 청구인의 게시물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더욱 정밀하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해외 사업자의 경우 회원가입 때 최소한의 정보를 요구하는데, 이 경우 본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시킨대로 삭제를 했는데 알고보면 타인의 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댓글 작성자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진규 네이버 수석부장은 “게시판, 특히 포럼 형태의 게시판의 경우 게시글과 댓글을 별개로 볼 수 없다. 이 경우 게시자의 권리를 위해 댓글 작성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게시판 담당 사업자와 개인 사이의 문제를 포털 등 검색사업자에게 묻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언론 기사나 타인의 게시물을 가이드라인에서 제외한 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회원 계정정보가 분실돼 본인의 삭제가 어려운 경우 등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몇몇 자기배제권 요청 기준은 기존의 법률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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