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언론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익명 댓글창을 닫아야 하는지, 아니면 유지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는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댓글 계정을 소셜미디어와 연동하는 소셜댓글은 실명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으나 모든 소셜댓글 서비스가 예외인 건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을 2주 앞둔 31일 이전까지 익명 댓글창을 운영하고 있는 언론사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적용하거나 익명 댓글창을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31일 이후에도 언론사가 인터넷 익명 댓글창을 유지하거나 본인확인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으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선관위는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지난해 합헌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익명으로 댓글을 작성하게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익명 댓글창을 운영하고 있는 직썰의 경우 선관위 직원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본인 확인 시스템을 적용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다만 선관위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계정과 연동해 댓글을 작성하는 ‘소셜댓글’은 예외로 뒀다. ‘소셜댓글’에서 연동되는 소셜미디어들은 실명확인을 거치지 않고 가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 댓글과 다르지 않아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소셜댓글은 되고 보통의 익명 댓글은 안 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여론조작을 했던 건 익명댓글이 아니라 트위터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소셜댓글은 해당 소셜 미디어업체의 게시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사가 직접 댓글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해당 소셜미디어에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선관위가 관할하는 대상은 인터넷언론사로 등록된 곳에 국한된다. 소셜미디어 업체는 해당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셜댓글은 2010년 블로터닷넷이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항의하는 의미로 실명제 적용대상이 아닌 소셜미디어 댓글을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 ⓒiStock

그런데 ‘소셜 댓글’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슬로우뉴스의 경우 소셜댓글을 운영하고 있지만 선관위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민노 슬로우뉴스 편집장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선관위에서 댓글창을 닫거나 실명제 시스템을 적용하라고 했다”면서 “소셜댓글은 예외로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소셜 댓글’이라고 하더라도 이메일 인증 등 소셜미디어를 경유하지 않는 댓글창은 처벌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슬로우뉴스가 이용 중인 디스커스의 소셜댓글은 소셜미디어 뿐 아니라 이메일 인증을 통해서도 댓글을 작성할 수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소셜댓글 서비스라도 이메일만 인증해서 댓글을 달 수 있다면 적용대상이 된다. 국내업체인 라이브리의 경우 업체에 관련 사항을 전달했다. 소셜미디어 로그인을 할 때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슬로우뉴스에서 적용하고 있는 소셜댓글 업체인 디스커스는 해외기업이기 때문에 선관위가 직접 개입할 수 없다. 따라서 라이브리와 달리 일선 언론에 본인 확인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마저도 일관적이지 않다. 미디어오늘 역시 슬로우뉴스와 같은 디스커스 댓글을 적용하고 있지만 선관위로부터 관련 요청을 받지 않았다.

상황이 모호하고 복잡하니 언론 입장에서는 아예 댓글창을 폐쇄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정주식 편집장은 “선관위에 물어보니 많은 언론들이 번거로운 선관위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고 댓글창을 닫아버리고 있다”면서 “취지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온라인 공론장이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노 편집장 역시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아 과태료를 내기는 힘들다”면서 “댓글창을 닫게 되더라도 31일 이전까지 닫을 생각이 없고, 닫기 전까지 최대한 검토해달라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인터넷 실명제 자체가 효용성이 없어 폐지된 상황에서 선거기간에만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다. 지난해 7월 언론사 홈페이지에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글을 올릴 때 실명확인을 거쳐야한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제82조 6항 등에 대해 헌재가 5: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앞서 2012년 헌재는 10만명 이상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실명인증을 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의 결정을 종합하면 익명 표현의 자유는 보장 받아야 하지만, 선거기간에는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어느 정도 제약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신훈민 진보네트워크 변호사는 “오히려 선거기간 때 표현의 자유가 더욱 중요한데 재갈을 물리는 상황”이라며 “익명인 건 같은데 소셜 댓글은 되고 일반 익명 댓글은 안 된다는 것도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신훈민 변호사는 “선관위에서도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실효성이 없다며 폐지 의견을 냈고, 국회에서도 여야가 의견합치는 보는 등 사회적 논의가 마무리 된 상황에서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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