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이 재송신 수수료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상파 방송을 내보내 지상파가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두차례 기각당했다.

서울고등법원(제4민사부)은 23일 지상파방송 3사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CMB를 상대로 제기한 판매금지가처분 소송 항고심에서 “사법적 강제를 도모할 정도의 시급성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기각’결정을 내렸다. 

지상파 3사는 지난해 재송신 계약이 끝나면서 기존 280원의 가입자당 재송신수수료(CPS)를 400원대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고, 케이블이 이를 거절하자 CMB를 상대로 지상파 채널의 방송상품 신규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즉, 지상파는 계약기간이 끝났고 가격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으니 CMB를 통해 지상파방송을 내보내는 건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CMB는 기존의 재송신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고, 추후 가격인상이 결정되면 소급 지급하겠다며 맞섰다. 표면적으로는 가처분 분쟁이지만, 지상파의 속내는 재송신 수수료 가격인상 협상에 대한 협상력 확보로 보인다. 재송신수수료는 유료방송 플랫폼이 지상파채널을 내보낼 때 지급하는 이용자당 수수료를 말한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결정문에 따르면 재판부가 기각 결정을 내린 배경은 첫째, 지상파방송사들의 가처분 신청의 목적은 ‘협상력 확보’이고, 이 목적이 달성될 경우 유료방송사들에게 합리적 근거 없이 재송신료의 과도한 인상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이용자 피해가 예상된다는 점. 셋째, 지상파가 42% 인상된 금액을 요구하면서 합리적인 산정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 넷째, 지상파방송사들이 정부의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의체’참여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케이블협회는 기각 결정의 의미를 부각시키며 진행 중인 재송신 수수료 협상에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배석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은 “소모적인 다툼이나 소송분쟁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면서 “법원 판단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합리적인 협상 및 재송신 대가 산정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수수료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일 뿐, 재송신 수수료의 적절성에 대한 법적 판단은 아니다. 현재까지 지상파는 케이블진영을 상대로 수십건의 재송신수수료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지만 쌍방기각 1건을 제외하고 지상파의 권리가 인정받았다. 지상파 3사가 소속된 한국방송협회는 “CMB가 결과를 과대 포장해 향후 재송신 협상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며 협상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는 모양새다. 

한편 케이블진영에서 이탈해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씨앤앰은 최근 지상파와 재송신수수료를 400원에 타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을 염두에 둔 씨앤앰이 지상파와의 갈등이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