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의 개입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강력하게 유감을 표하고, ‘칼럼 망명’을 선언한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칼럼 망명’을 선언했다. 지난 1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연재하던 칼럼 게재를 중단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선거 90일 이전부터 후보자는 언론에 기고를 해선 안 된다는 ‘인터넷선거보도 심의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하 위원장은 정부 예산이나 정책, 정치인에 대한 비판 칼럼을 써왔다. 본인의 선거출마를 홍보하는 칼럼이 아니었다. 그는 “최소한 글의 내용을 보고 선거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모르겠는데 글 자체를 쓰지 말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선거보도 제재 ‘1229’건

하 위원장에게 칼럼 게재 중단을 통보한 기관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다. 인터넷 언론이 ‘규제의 사각지대’라며 선거기간 심의제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2004년 선거법이 개정돼 선거관리위원회 산하기구로 설립됐다.

그 결과 인터넷언론을 향한 심의제재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2004~2014년까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1229건의 기사에 제재를 내렸다. 심의의결내역을 살펴보면 기준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잣대로 한 제재가 많다. 공정성에 대한 제재만 404건, 객관성에 대한 제재가 159건에 달한다. 여론조사 보도(573건)에 대한 제재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물론, 미디어에 대한 심의제도 자체가 논쟁적인 사안이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선거방송심의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각한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고, 제재 수위가 약한 편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한 채 이전의 낡은 규제를 기계적으로 적용했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혐의 난 사안은 언급하지도 말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거기간 언론은 후보자를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성’ ‘객관성’을 잣대로 이뤄지는 심의는 언론이 ‘당연한’ 역할을 하는 데 지장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달 2일 심의위는 박기준 예비후보(전 부산지검장)의 출마를 알리는 과정에서 섹스스폰서 검사 사건을 언급한 민중의소리 보도가 ‘불공정’하다며 경고제재를 내렸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과장하고 명확한 근거 없이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박기준 예비후보가 직접 “금품제공과 성접대는 사실무근으로 이미 무혐의 판결을 받은 사안”이라며 이의제기를 했고 심의위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박기준 예비후보에 대한 의혹제기는 충분한 증언과 정황이 있는 사안이다. 무혐의 판결도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이지 의혹에 대한 판단은 아니었다. 같은 사안에 대한 인터넷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를 두고 방통심의위가 “공적 관심 사안이며 의혹 제기 수준으로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후보자 평판관리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제재하지만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제재가 내려지기도 한다. 특히, 후보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김양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자가 선거운동 도중 주민들에게 욕설을 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장성군민신문이 ‘경고’조치를 받았다. 김양수 당시 후보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며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민원을 제기했고 심의위는 “후보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일방적 주장만을 계속적·반복적으로 보도했다”며 경고 제재를 내렸다. 김양수 후보자는 장성군민신문과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허위보도’를 했다며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법원에서 김 후보자의 욕설은 사실로 밝혀져 김 후보자는 주민들과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무고죄 등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향신문은 “안철수 대표, 광주 이어 여수에서도 야유받아”라는 기사를 게재해 ‘불공정’보도라는 이유로 주의조치를 받았다. 심의위는 야유를 받은 사실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유권자를 오도하거나 신청인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제재를 내렸다.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이 같은 제재는 후보자 본인이 직접 이의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심의백서에서 이은주 심의위원은 “정당·후보자의 이의신청 기각률이 50%에 이른다는 점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의신청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면서 “단순히 언론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이의신청이 오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정성’ ‘객관성’ 빌미로 사소한 것까지

심의위는 공정성과 객관성 심의를 빌미로 비교적 사소한 사안까지도 제재를 하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노컷뉴스는 “대담해진 정몽준 ‘집사람이 돈봉투라도 돌렸나?’”기사를 썼는데, 심의위는 제목이 ‘객관성’ 왜곡에 해당한다며 공정보도 협조요청 조치를 내렸다. 부인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데 대해 정몽준 후보가 “집 사람이 무슨 돈봉투라도 돌렸나”라고 해명한 걸 제목으로 쓴 것인데 다소 자극적이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은 아니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이어지거나 긍정적인 보도가 이어져도 불공정 보도가 된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뉴데일리’는 박원순 시장과 김상곤 예비후보자에 대해 비우호적인 사진을 계속적·반복적으로 게재해 주의조치를 받았다. 물론, 불공정하다고 지적을 할 수는 있겠지만 ‘반복적’이라는 건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이 같은 기준이라면 나경원 의원의 자녀 부당입학에 관련한 보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의견’을 담은 사설과 칼럼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총선 때 울진신문은 칼럼에서 특정 후보자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됐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군포신문은 “조윤숙 후보의 두 얼굴, 똑바로 볼 때다”라는 사설을 게재해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받았다. 사실과 다르거나 도를 넘은 표현은 없었다. 그러나 심의위는 “지나치게 과장된 제목과 일부 내용을 통해 보도한 것은 자칫 유권자를 오도하거나 신청인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선거기간 일부 지역인터넷언론은 특정 후보자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거나 악의적인 보도를 쏟아내는 경향이 있고 이에 대한 제재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다소 편향적인 보도를 한다고 해서 이걸 제재의 대상으로 삼는 건 무리가 있다. 진통이 있더라도 자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고 하지마”

하승수 위원장이 칼럼 망명을 한 계기가 된 ‘예비후보자 기고에 따른 제재’는 최근에도 있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지난달 25일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설명한 글을 게재했고, 같은 날 프레시안은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자신의 출마 배경을 밝힌 글을 게재했다. 두 글 모두 공정보도 협조요청 제재를 받았다. 

내용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안에 대한 당사자의 글, 연재까지 중단시키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규정이 있기 때문에 내용에 상관없이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고는 기사와 달리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 결과적으로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조항은 기존 신문에 대한 선거기사심의위원회의 심의기준을 인터넷에도 적용한 것이다. 후보자 기고금지 조치 자체가 문제가 있지만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외부기고는 블로그 글이기도 하다. 인터넷 환경에서 언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도 한데,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포털도 심의대상에, 페이스북도 심의 할 건가?

2014년 심의위는 포털의 기사배치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네이버가 메인화면에 야당에 유리한 기사 위주로 배치해 불공정한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고 이의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아닌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심의여부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기사가 아닌 기사배치에 대한 불공정성을 심의한 것이다.

심의위는 논의 끝에 ‘기각’결정을 내렸지만 심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포털엔 압박을 주기 충분했다. 이 같은 조치가 결과적으로 ‘위축효과’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도 격변할 인터넷 환경에서 낡은 규제를 그대로 적용할 때 벌어지는 문제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 환경이 기존 언론환경과 다르다”면서 “원칙을 정립하고 이에 따른 심의를 해야 하는데, 기존 심의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가 설립될 때부터 제기됐다. 2004년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한 “인터넷상의 선거보도, 현황과 전망”에서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개정된 선거법상의 인터넷언론 정의는 규제의 효율성을 위해 조급하게 만들어진 개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중복심의’에 권한 논란까지

2012년 총선 때 경기헤럴드는 “민주통합당 이학영 후보의 숨겨진 도덕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후보가 민주화운동 자금마련을 위해 강도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심의기구마다 판단이 엇갈렸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사실에 근거한 보도”라며 ‘기각’한 반면 종이신문을 대상으로 심의하는 선거기사심의위는 ‘경고’ 제재를 내린 것이다.

언론보도에 대한 심의기구가 제각각이면서도 역할이 중복되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방송은 선거방송심의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할), 신문은 선거기사심의위원회(언론중재위 관할), 인터넷언론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중앙선관위 관할)가 담당한다. 신문과 방송의 인터넷 보도를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가 중복으로 심의한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 심의기구별로 다른 판단을 내린 것도 문제다. 결국 심의가 일정부분 자의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드러낸 셈이다. 김창룡 교수는  “여러 기구에서 심의를 하고 있지만 대체로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심의기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위원선임 방식인데, 우리나라의는 전문가들이 심의를 맡기 보다는 여야 정파별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중복심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전부터 있었고 개별 기구의 위상과 역할의 차이점 등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면서 “선거심의를 담당하는 3기구를 통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관련 법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 입법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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