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친교를 위한 업무자리였기 때문에 법인카드를 썼고, 술자리에서 편하게 한 얘기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부당하다.’

지난 17일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방송문화진흥회(고영주 이사장) 정기이사회에 출석해 ‘백종문 녹취록’ 파문과 관련에 두 달 만에 사과와 함께 해명한 내용의 요지다. 

그동안 MBC 사측은 녹취록 당사자들을 문책하기는커녕 앞장서 두둔하며  ‘사적인 자리’라고 업무 연관성을 부인해 왔다. MBC의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문진과 방송규제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 모두 책임을 방기해 왔다. 

하지만 백종문 본부장이 직접 ‘법인카드를 사용한 업무 자리’였음을 인정했다. 부적절한 업무를 위해 회사(국민)의 돈을 지출한 것이라면 감독·규제기관이 개입해 감사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적인 일에 법인카드 썼다면 ‘배임죄’, 혹은
업무 과정에서 편성권 침해 등 ‘위법’ 자백한 것

백 본부장은 ‘대한민국에선 사적인 친교를 위한 자리에서도 법인카드를 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쓴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불과 지난해 김재철 전 MBC 사장이 회사 법인카드를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감사원에 자료 제출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은 걸까.

사적인 친교를 자리에 법인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업무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MBC 법인카드 운영 내규를 보면 ‘법인카드의 사용은 회사 경비 지출에 한한다’며 ‘윤리·도덕적으로 부적절한 법인카드 사용을 금하며,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부정사용, 사적인 사용에 대해선 모든 책임을 사용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구성=김도연 기자. 그래픽=이우림 기자.
만약 백 본부장이 업무 연관성이 없는 사적인 만남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이라면 사규 위반으로 징계와 함께 업무상 배임으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의 주장대로 업무의 연장이었다면 그가 업무상 이해관계자를 만나 한 발언은 ‘회사의 공식 입장’은 아닐지라도 경영 책임자의 ‘공적 발언’에 해당한다. 

백 본부장이 법인카드를 사용함으로써 회사의 공식적인 결재까지 받아 한 업무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나 편성권 침해 등 사규 위반 행위에 대한 ‘자백’이 드러났다면, MBC 자체적으로 내부감사를 통해 비위 사실을 밝혀야 하고 방문진 역시 이를 명령할 수 있다. 실제로 김재철 전 사장 때는 방문진이 특별감사를 지시해 보고를 받기도 했다. 

‘프로그램 압력과 간섭 없었다’는 것도 거짓말

백 본부장이 경영진으로서 ‘프로그램 내용에 의견만 전달했을 뿐 간섭하거나 압력 행사한 적 없다’고 변명한 것만 봐도 전혀 반성했다고 볼 수 없다. 백 본부장은 극우 매체 관계자와 만날 당시에도 방송 편성과 제작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미래전략본부장이 되기 전 편성제작본부장이었어도 프로그램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MBC 방송편성규약에는 ‘방송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권리와 의무는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며 ‘편성·보도·제작상의 실무권한과 책임은 관련 국장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MBC 방송편성규약은 사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녹취록에 따르면 백 본부장은 2014년 11월11일 방송된 ‘PD수첩’에서 “게이, 레즈비언, 안녕들 하십니까” 편에 대해 “내가 담당국장한테 녹화하기 전에 전화해서 ‘너 그 아이템 왜 했냐’고 야단을 쳤다”면서 방송편성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했음을 실토했다. 

백 본부장은 또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고정 패널에 대해서도 “‘시선집중’하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같은 거 할 때 경향신문,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왜 맨날 거기만 쓰느냐고 하면 거기밖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야 빨리 바꿔라’ ‘한국일보도 나오지 말라 그래라’ 그래서 요즘 프레시안은 바꾼 것 같다”고 간섭한 사실을 고백했다. 역시나 백 본부장이 편성제작본부장 시절 프레시안과 한국일보 등 출연 기자들이 패널에서 빠졌다. 

지난 1월25일자 뉴스타파 보도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갈무리.
MBC 구성원의 다양성을 위해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 지역도 봤다는 주장도 황당하다. 백 본부장은 녹취록에서 경력사원 채용과 관련해 회사 말을 잘 듣는 인력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10만 양병설’을 언급한다.

백 본부장은 “요새 우리 회사가 많이 좀 안정화 되고 있는데 대신 임진왜란 직전에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 주장했을 때처럼 지금 MBC도 준비하지 않으면 엉망이 된다”며 “밑에서 파업했던 사람들이 올라오고 ‘우리가 좀 사람을 키우고 준비를 해야 된다’는 큰 명제를 가지고 인사가 끝나고 올해 안에는 조직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본부장은 이어 “인사 검증을 한답시고 지역도 보고 여러 가지 다 봤음에도 노동조합이 힘이 센 거 같으니까 다 그쪽으로 가야 되는 것”이라며 “이 친구들도 자기 출세라든가, 직장생활에 눈치 보는 것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이쪽으로 확 간다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한다”는 등 경력직 채용 시 지역 등 차별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직접적인 해고 증거 없었다’ 고백, 검찰 고발 예고

그러나 이는 채용 시 지역 차별을 금지한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 위반에 해당한다.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회적 신분과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청년유니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MBC의 지역차별 채용 의혹에 대해 지난달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아울러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오는 22일 MBC와 백 본부장을 방송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할 방침이다. 

특히나 지난 2012년 ‘공정방송’ 파업 중 해고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에 대해 백 본부장 스스로 ‘직접적인 해고의 증거가 없었다’고 고백한 것과 관련,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해고시킨 것’이라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이며, 업무상 배임죄 적용도 가능하다.

지난달 2일 김보라미 변호사는 ‘백종문 녹취록’ 관련 야 3당(정의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긴급 토론회에서 “판례를 보면 회사의 리스크가 발생할 것이 현저하고 예상이 가능할 때는 배임으로 인정한다”며 “이 사건에서도 회사가 해고 통보 이후 소송이 진행될 경우 패소와 함께 변호사 비용이 발생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유로 해고한 상황이라 (배임) 관계자를 고발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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