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이 ‘사상 최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의 셀프지명에 후보자들의 도덕성, 정체성 논란이 겹친 것이다. 조선일보는 문제의 핵심은 비껴간 채  더민주의 비례대표 후보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19대 더민주 비례대표를 ‘낡은 이념의 운동권’으로 깎아내렸다. 보수언론들도 사실상 공천이 마무리된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조선일보는 학살공천의 피해자격인 진영 의원을 비판했다.

논란 부른 김종인 ‘셀프지명’

가장 큰 논란은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지명’했다는 점이다. 1번이 여성 몫임을 감안하면 최상위 번호에 자신을 지명한 셈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비례대표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차례 밝혀왔기 때문에 말바꾸기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통상 당 대표를 비례대표에 공천할 때는 당선 안정권에 넣지 않는 관행도 깼다. 한겨레는 “셀프공천을 한 것은 정치도의나 상식, 유권자의 정서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 21일 경향신문 보도

이미 비례대표를 4선이나 했던 김 대표가 5선에 도전하는 까닭은 ‘자기정치’를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일보는 1면 기사를 통해 “킹메이커가 아닌 킹?”을 노린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김 대표가 구원투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총선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차기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일각에서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정체성’ ‘도덕성’ 하자 많은 비례 후보자들

적지 않은 더민주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하루만에 언론의 ‘검증’에서 결격사유가 드러났다.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논란이 된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문제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정체성이 더민주와 맞지 않다. 둘째, 비리 전력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 셋째, 취약계층과 청년분야 비례대표를 찾아보기 힘든 대신 관료, 교수 일색이다.

가장 큰 논란은 비례대표 1번을 받은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다. 박 교수는 2007년 제자의 석사논문을 학회지에 자기 이름으로 무단 게재해 논란이 됐다. 또, 박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첫 대학구조개혁위원을 지내면서 비리로 문 닫는 대학의 재산을 운영자들에게 돌려주게 하는 대학구조개혁법 제정을 적극 주장했다.

비례대표 6번인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2011년 해외투자사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옹호하는 칼럼을 써 당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번대 번호를 받게 되는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안보공약을 가리켜 “종북좌파적”이라고 비난했다. 김숙희 의사회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자신의 과오를 묻어 버린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도덕성과 정체성에서 흠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상위 순번의 면면을 보면 원칙도 기준도 메시지도 없다. 상위권의 다른 후보들도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대표하는 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에서 “교수, 관료 출신이 청년, 장애인 등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압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승전 '친노' '운동권' 

이번 더불어민주당 공천은 김종인 지도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친노’ ‘운동권’으로 비판의 방향을 돌렸다.

▲ 2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과 달리 더민주 비례대표 후보자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선은 “(더민주 비례대표 후보에) 운동권 출신이 배제되고 대신 각계 전문가가 많이 포함되었다”면서 “이번 비례대표 명단은 당의 체질이 상당부분 바뀔 수도 있다고 기대를 갖게 할 만큼 달랐다”고 밝혔다. 

조선이 지적한 문제가 되는 당의 체질은 ‘운동권 성향’이었다. 조선은 “19대 친노 지도부 때는 임수경 등 범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면서 “철지난 이념의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비례대표에 대한 평가를 빌미로 더민주 주류를 비판한 것이다. 이번 비례대표 후보자의 면면이 조선일보의 ‘취향저격’을 한 셈이기도 하다.

동아일보는 문재인-김종인 밀약설을 띄우며 문재인 의원을 정조준했다. 동아는 ‘김종인, 비례 2번 셀프공천 대가로 문재인에 뭘 약속했나’사설을 통해 과거 문재인 의원이 비례대표 2번을 김종인 대표에게 제안한 적 있다는 점을 들어 뒷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했다.

여당 공천 비난 거센데, 조선은 진영 비난

‘비박계 학살’로 불린 새누리당 공천이 마무리 단계다. 친이계는 좌장인 이재오 의원을 포함해 주호영, 조해진 의원 등이 탈락했고, 유승민계는 6명이나 낙천했다. 반면 친박계는 막말 논란이 불거진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몇몇 의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천을 받았다. 중앙일보는 “한마디로 친박계와 친김무성계를 위한 잔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심은 새누리당의 ‘진박 밀어주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진박후보들이 경선에서 연이어 탈락한 것이다. 지난 19~20일 경선에서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인 윤두현 후보가 유승민계 김상훈 의원에게 패배했다.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등  진박후보들도 고배를 마셨다. 동아일보는 "아무리 박심을 듬뿍 실어줘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민심"이라며 여론이 새누리당의 공천에 등을 돌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 2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다른 보수신문과 달리 새누리당의 공천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선은 사설에서 더민주에 입당한 진영의원을 가리켜 “최소한의 정치 도의도 없나”라고 비판했다. 진영의원의 더민주 입당의 배경에는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떨어뜨린  새누리당의 ‘학살 공천’에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이를 외면하고 피해자 격인 진 의원을 정조준한 것이다. 반면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비박계 공천학살극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라며 “새누리당이 공천 탈락자 야당행 비난 자격 있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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