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폭로된 녹취록에서 MBC 기자와 PD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말한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지난 2014년 극우매체 폴리뷰 편집국장 등을 만나 법인카드를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백 본부장은 17일 오후 열린 방송문화진흥회(고영주 이사장) 정기이사회에 출석해 MBC 영업보고에 앞서 지난 1월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공개된 문제의 녹취록과 관련해 “일부 매체에서 보도한 녹취록으로 불필요한 오해와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말했다.

영업보고를 마친 백 본부장의 소명과 방문진 이사들 간의 질의응답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야당 추천 이사들에 따르면 백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폴리뷰 관계자들과 우연히 만남이 이뤄졌고 직원들이 만든 친목회 자리에 간 것뿐’이라며 ‘서로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하면서 주관적이고 과장된 표현도 섞여 있었지만 비공식적 자리에서 녹취된 걸 가지고 공식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25일 뉴스타파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방송 갈무리.
백 본부장은 식사 자리 비용을 누가 지불했느냐는 물음엔 ‘내가 법인 카드로 냈다’면서도 ‘대한민국에선 사적인 친교를 위한 자리에서도 법인카드를 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쓴다’고 해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백 본부장은 녹취록에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선 ‘그 당시 얘기는 직접적인 해고의 증거가 없었다는 뜻이었다’며 ‘사규에 의해 인사위원회에서 정상적 절차로 진행된 것이고 옳고 그름은 대법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문진 이사들에 따르면 백 본부장은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이 다큐 등 외주제작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프로그램을 통제하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과거 MBC가 편파 방송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비춰 이제는 방송을 균형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며 ‘방송에 간섭하거나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의견만 냈을 뿐 실제로 반영은 안 됐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의 한 방문진 이사는 “백 본부장은 내부 정보 유출 의혹에 대해선 ‘모두 허위이고, 폴리뷰 기자가 정보가 없다고 해서 취재 협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기밀 정보를 주기로 한 것도 아니며 실제로 이뤄진 정보 제공도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날 백 본부장이 야당 추천 이사들의 보직 사퇴 요구에 대해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여당 추천 이사들이 ‘말실수에 대한 비판을 일정 정도 감수하고 앞으로 공인으로서 언행에 주의해 주길 바란다’고 구두로 경고하는 선에서 그쳤다. 

고영주 이사장을 포함해 여권 추천 이사들이 9명 중 6명을 차지하고 있는 방문진은 지금까지 ‘백종문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후에도 뭉개기로 일관하며 녹취록 진상규명을 위한 정식 안건조차 통과시키지 않았다. 

지난달 4일과 18일 야당 추천의 유기철·이완기·최강욱 이사가 올린 ‘백종문 본부장 녹취록에 기재된 사실관계에 대한 진상규명 및 향후 방문진 조치에 관한 건’이 무산된 후 지난 3일 열린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선 ‘백종문 이사 출석 결의의 건’이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이 역시 여권 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여권 이사들은 ‘백 본부장 등이 개인적인 자리에서 (술을 먹고) 호기를 부리듯 한 이야기이고, 이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므로 방문진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며 안건 상정은커녕 핵심 당사자인 백 본부장의 정식 출석 요구조차 거부했다. 

결국 이날 정기이사회 때 백 본부장이 나오면 녹취록과 관련해 해명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충분히 갖는 수준에서 합의하고 90분가량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됐지만, 녹취록 파문 관계자 누구도 징계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백종문 녹취록’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김석창 문화사업제작센터장은 지난 10일 경인지사장으로 영전했다. (관련기사 : ‘MBC 녹취록’ 등장 간부, 징계 대신 ‘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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