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막을 내렸다. 정상급 바둑 프로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뉴스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국에 대한 보도가 필요 이상으로 많았으며 대부분 흥미 위주였다. 윤상현 의원의 막말, 국정원의 무차별적 통신자료 조회, 단원고 세월호 기억교실 이전 등의 이슈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지상파 메인뉴스, 알파고 보도에 올인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시작된 지난 9일부터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특히 가장 영향력이 높은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는 대국일정 내내 관련 사안을 큰 비중으로 보도했다.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5일 동안 지상파 3사 메인뉴스가 다룬 알파고 대국 관련 보도는 총 69건에 달했다. KBS ‘뉴스9’가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MBC ‘뉴스데스크’ 21건, SBS ‘8뉴스’ 20건으로 알파고 뉴스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대국이 없던 지난 11일에도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4건씩 관련보도를 쏟아냈고, SBS ‘8뉴스’는 관련 보도를 3건 했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관련 리포트 69건 중 1~5번째 순서로 배치된 리포트만 42건에 달했다. 특히 MBC ‘뉴스데스크’는 20건의 관련 보도 중 15건이 1~5번째 순서로 배치됐다. 뉴스를 배치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는 일이 언론사의 고유영역이라고 하지만 선거 국면에서 다양한 이슈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알파고 대국에 집중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 지난 9~15일 KBS '뉴스9'의 알파고 대국 관련 보도화면 갈무리 모음.
문제는 알파고 대국 뉴스가 주요하게 다뤄질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를 뒤로 밀어내거나 삼켰다는 사실이다. 지난 9일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한 막말이 정치권 최대의 스캔들이 됐지만 알파고 대국소식에 밀렸다.

9일 MBC ‘뉴스데스크’는 1~4번째 리포트에 알파고 대국 소식을 전한 다음 5번째 소식으로 윤상현 의원의 막말 논란을 다뤘다. SBS ‘8뉴스’ 역시 1~4번째 리포트에 알파고 소식을 배치하고 9번째 리포트에 윤상현 의원 막말 논란을 배치했다. KBS ‘뉴스9’에서 해당 보도는 19번째로 밀렸다. 같은날 JTBC ‘뉴스룸’은 알파고 대국을 먼저 보도했지만 윤상현 의원 막말 논란에 관한 리포트를 4꼭지 배치해 논란의 배경과 전망 등을 담았다.

9일은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들의 교실 이전에 대한 잠정합의가 이뤄진 날이기도 했다. SBS ‘8뉴스’와 JTBC ‘뉴스룸’은 이 소식을 보도했지만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두 번째 대국이 펼쳐진 10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서실 통신내역을 검찰과 국정원이 조회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1야당의 전 대표이자 대선주자에 대한 사찰정황이 의심되는 내용이었지만 지상파는 침묵했다. 반면 JTBC는 알파고 대국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11번째 리포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수사당국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이 연일 논란이 됐지만 지상파는 적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알파고 반칙 논란에 정신승리까지

적지 않은 보도가 ‘인공지능 대표 알파고 대 인간대표 이세돌’이라는 흥미위주의 대결 프레임으로 구성됐고, 다소 황당한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세돌 9단을 ‘인류 대표’라고 지칭했다. KBS ‘뉴스9’는 이세돌 9단이 첫승을 하자 “이세돌 9단은 인류의 자존심을 지켜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세돌 9단이 연전연패하자 ‘정신승리’도 이어졌다. 12일 MBC ‘뉴스데스크’는 “바둑판에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담담하게 수긍하는 자세. 그게, 이기는 기계엔 없는 고수의 품격”이라며 이세돌 9단의 자세를 알파고와 비교했다.

▲ KBS, SBS, MBC 메인뉴스 '알파고 대국' 관련 보도화면 갈무리.
알파고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의혹 제기도 이어졌다. 연합뉴스는 11일  전석진 변호사를 인터뷰하며 “알파고가 이길 수밖에 없는 불공정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SBS 8뉴스는 “반칙이라는 주장이 인터넷에 오르고 있다” “이세돌의 기보는 만천하에 공개된 반면 알파고는 베일에 가려져 있어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SBS CNBC ‘경제와이드 백브리핑 시시각각’은 지난 10일 “공해괴물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의 차이는”리포트에서 “알파고는 이세돌과 대결하면서 필요 이상의, 혹은 상상보다 더 많은 공해물질을 배출하고 있었다”면서 “이세돌은 하루 세끼만 먹고 CPU 1200개를 돌려야 하는 기계괴물과 거의 비슷한, 혹은 더 나은 능력치를 보일 수 있었다.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국의 이면, ‘웃는 구글’과 ‘인공지능의 위험성’ 

뉴스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한다. 이번 대국은 단순히 ‘인간과 기계의 바둑대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대국이 인간과 기계의 역사적인 대결인 건 맞지만, 그 이면에는 구글이라는 기업이 있고, 대국 이벤트를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쪽 역시 구글이다. 이를 제대로 짚은 쪽은 JTBC였다. JTBC ‘뉴스룸’은 12일 “(구글은)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음으로써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주가는 1차전이 벌어진 8일 688.59달러에서 11일 726.82달러로 5.5% 올랐다”고 보도했다.

근본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지적 역시 필요했다. 구글이 단순히 바둑을 두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의료, 무인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서 이를 응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도 바둑대결에 대한 보도 뿐 아니라 기술발전에 대한 내용을 짚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기술의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언급하거나 추상적으로 미래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식의 보도가 주를 이뤘다.

알파고가 보여준 인간과 다른 사고방식은 인공지능 기술에 내재된 문제를 드러낸다. 이 같은 지적은 외신기자의 입에서 나왔다. 13일 기자회견에서 NHK 기자는 “어떤 수 같은 경우는 완전히 실수였다고 생각됐는데, 추후에 보면 묘수였다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러한 인공지능을 의학에 접목시키게 되면, 의학전문가들이 봤을 때는 오류로 보이는데 알고 보면 그것이 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을까?”라고 물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판단이 갈릴 때 벌어지는 혼란과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다.

이후 NHK 기자의 질문이 예리하다는 보도가 나왔고, 한국 언론들이 ‘안전문제’를 다뤘다. SBS는 14일 “문제는 범용 인공지능 기술의 오류가 무인자동차와 의료, 금융 등에서 생길 경우 생명과 안전 같은 치명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위험성을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외신기자가 우리 언론에 의제 설정을 한 셈이다.

한편, NHK기자의 질문과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비교하며 한국 기자에 대한 수준논란이 벌어졌는데 한국 기자들이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한국 기자들이 질문한 ‘이세돌 9단의 소감’은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내용이었고, 대국 내용에 대한 세세한 질문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필요한 사실확인 절차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둑 대국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인공지능 문제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 쪽이 외신기자였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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