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참여했던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 수십 명을 현업에서 배제했다고 실토한 ‘MBC 백종문 녹취록’이 드러난 후에도 MBC 사측이 또 방송 제작 인력들을 비제작부서로 발령을 냈다. 지난달 18일 MBC 기자·PD 9명에 대해 법원이 부당전보 무효 판결을 내린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MBC 사측은 지난 11일자로 경인지사에 무려 7명의 제작인력을 발령 냈다. 이 중에는 지난달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부터 전보발령 무효 판결을 받았던 박종욱·이정은 기자를 비롯해 차미연 아나운서 등도 포함됐다. (관련기사 : MBC, 부당전보·정직·반론보도 소송 모두 패소)

이미 경인지사로 전보됐던 기자 3명은 또 다른 비제작부서인 신사업개발센터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으로 옮기게 됐다. 이 외에도 아나운서국에 있던 손정은·황선숙 아나운서는 각각 비제작부서인 사회공헌실과 심의국으로 발령이 났다. 손 아나운서의 경우 지난해 11월 휴직에서 복귀 후 라디오 뉴스를 진행한 지 4개월 만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 2012년 MBC 170일 최장기 ‘공정방송’ 파업 참가자들이다. 

손정은 MBC 아나운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에 신사업개발센터에서 경인지사로 가게 된 박종욱·이정은 기자의 경우 지난달 18일 김환균 PD(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등 7명과 함께 법원에 전보발령무효확인 소송을 냈다가 승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MBC의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은 반면 이들의 불이익이 상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상 요구되는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며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들은 전보발령으로 기자·PD로서 경력이 단절되고 능력, 욕구가 반영되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시받았는데, 사측의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보발령으로 입은 불이익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때도 사측은 사법부의 판단에 불복 입장을 보였다. MBC는 지난달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의 판단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판결은 직종제의 기득권을 누리면서 그동안 ‘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 한번 PD는 영원한 PD’라는 구시대적인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과 같아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25일 뉴스타파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방송 갈무리.
사측이 이처럼 제작인력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존 업무와 무관한 부서 등으로 발령을 내는 것은 인사평가에서 최하 등급은 ‘R’ 평가를 내려 저성과자로 만든 후 대기발령과 정직 등의 징계를 내리기 위한 전철이라 게 노조 측의 지적이다. 

지난 7일 대기발령 3개월 조치를 받고 2주간 교육에 들어간 임소정 MBC 기자는 2013년 MBC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을 재조명해 특종상까지 받았음에도 R등급을 받았고, 이후 전출된 스포츠제작국과 광고영업부에서 연이어 R등급을 받아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달 정직무효 판결을 받은 김연국 기자도 2012년 MBC 파업에 참가 이후 R등급을 받았고, 2013년 ‘2580’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리포트로 제작하려다가 당시 심원택 부장의 지시로 불방된 후 또 R등급을 받았다. 이어 사측은 김 기자를 스포츠국으로 전보한 후에도 3번째 R등급을 매기고 인사위를 열어 정직 1개월과 교육 2개월 징계를 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지난 8일 노보를 통해 “신사업개발센터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 부당전보된 직원들에게도 R등급이 부여해 기존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부서로 배치한 뒤 저성과자로 만들고 있다”며 “3R 정직에 대한 법원의 무효 판결엔 공통적으로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해 정당하게 업무 능력을 평가받을 기회를 보장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대기발령은 정직무효 판결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 징계’”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번에 또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난 상당수도 부당전보로 보고 안광한 사장을 향해 비상식적인 인사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지난 10일자 국장 인사에서 ‘백종문 녹취록’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김석창 전 문화사업제작센터장을 경인지사장으로 영전시킨 것에 대해서도 “김 전 센터장은 녹취록에서 폴리뷰와의 적극적인 만남을 주선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며 부적절한 발언들을 쏟아냈던 인물”이라며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조직을 망치고 자랑스러운 MBC의 역사를 더럽히고 있는 자들의 행위는 낱낱이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 ‘MBC 녹취록’ 등장 간부, 징계 대신 ‘영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