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이돌에게 가학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라고 강요한 KBS ‘본분 금메달’이 법정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의견진술을 위해 심의위에 출석한 제작진이 논란에 관해 ‘오해’라고 밝혀 심의위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9일 오후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고 KBS ‘본분 금메달’에 법정제재인 ‘주의’로 의견을 모아 전체회의에 회부했다. 주의를 받으면 재승인 심사 때 1점 감점된다. KBS ‘본분 금메달’은 지난 설 연휴기간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여성 아이돌에게 바퀴벌레 모형을 던지면서 표정관리가 되는지 테스트를 하고, 영하의 날씨에 춤을 추게 하면서 당사자 몰래 체중을 측정하는 등 ‘성상품화’ ‘왜곡된 성역할 강요’ ‘가학성’ 논란이 제기됐다.

▲ KBS '본분 금메달' 갈무리. "남성 출연자를 업고 아름다운 표정을 유지하라"는 미션 수행 장면이다.

그러나 의견진술차 참석한 제작진은 사과를 하면서도 ‘오해’라며 항변했다. 최승희 PD는 “사회통념상 아이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본분이라고 생각해 여러 테스트를 한 것인데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 PD는 “방송에서 단 한번도 ‘여성은 예뻐야 한다’고 말한 적 없다”면서 “여성이 아닌 남성 아이돌에도 적용이 되는 내용인데 남성아이돌 섭외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미션에 관해서는 다른 프로그램 탓, 환경 탓을 했다. 최 PD는 “가학적인 게임이나 여성연예인 체중공개는 MBC ‘진짜사나이’에도 나온 것”이라고 말했으며 영하의 날씨에서 춤추는 장면을 언급하며 “녹화 당일 날씨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 PD는 방송내용과 무관하게 제작진이 ‘여성’이 많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저도 여성이고 제작진 11명 중 9명이 여성이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을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심의위원들은 제작진의 의견진술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하남신 위원은 “공영방송인 KBS야말로 본분을 망각했다”면서 “걸그룹이 영하의 날씨에서 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면서도 웃어야 하는 게 왜 아이돌의 본분인가. 아이돌이 특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상품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짜사나이’는 군사훈련상황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과 엄연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함귀용 위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뻐야 한다는 내용의 자막도 분명 나오는데 의견진술자는 오해라고 말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에서 ‘여성은 예뻐야 한다’고 밝히진 않았지만 여성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고로 아이돌은 어떤 순간에도 예뻐야 한다’는 자막을 띄워 사실상 성상품화 표현을 내보낸 것이다.

함귀용 위원은 “가수의 본분은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뇌쇄적인 눈빛'이라는 자막을 넣으며 섹스어필하게 만드는 게 왜 아이돌의 본분인가”라며 “제작진은 왜 문제가 됐는지 이해가 부족하다. 과징금 부과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KBS '본분 금메달' 갈무리. 제작진은 "여성 아이돌이 예뻐야 한다고 한적은 없다"고 항변했지만, 사실상 여성 아이돌을 지칭한 표현이다.

김성묵 소위원장은 심의를 사안 자체의 문제로만 판단하지 않고 KBS 내부 인사시스템을 감안해 행정지도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는 “입봉한지 얼마 안 된 PD가 시청률 강박을 많이 받아 무리수를 둔 측면이 있다”면서 “KBS가 내부 규정을 바꿔 법정제재를 받으면 가중처벌을 내려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이를 감안해 심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분 금메달’의 성상품화 문제를 강하게 질타하던 하남신 위원은 정작 다른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KBS 설 파일럿 프로그램 ‘머슬퀸 프로젝트’역시 여성출연자들의 신체부위를 부각하며 ‘한국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몸매’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등 성상품화가 문제가 됐다. 하남신 위원은 프로그램을 비판하면서도 “눈요기는 됐다”고 말한 뒤 “속기록에는 남기지 말라”고 사무처에 지시했다. 방송을 심의하는 위원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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