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대학교 학생 자치 단체의 현수막을 교수가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구성원이 반발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총학생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밤 10시경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무성애자(Asexual), 간성(Intersex), 퀘스쳐너리(Questioning)라는 성소수자 개념의 영문 범주 문구와 함께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학우의 새 학기,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춤추는Q는 서강대학교 구성원들의 다양한 몸, 마음, 관계를 지지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했다. 현수막의 취지는 "성소수자이거나 비성소수자인 학우 모두를 평등하게 응원하고 지지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현수막은 서강대 정문과 남문 등 모두 4곳에 게시됐다. 그런데 다음날 1일 서강대 떼이야르관 3층에 게시된 현수막이 훼손된 것이 발견됐다. 현수막을 연결하는 끈은 절단돼 있었고 칼로 찢겨진 채로 근방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총학생회는 해당 현수막이 고의적으로 훼손됐다고 판단해 현수막이 게시된 곳의 CCTV를 확인했다. 확인결과 1일 오전 10시경 서강대 화학과 신아무개 교수가 현수막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사실은 서강대 학내 언론사가 보도자료를 내고 성소수자 자치 단체들이 신아무개 교수를 규탄하는 내용의 대자보 작성을 준비하는 등 반발이 커지면서 알려지게 됐다.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특별기구 서강퀴어모임&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Q 등은 현수막 훼손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신아무개 교수에 발송했다. 

이들은 공개 서한문에서 "칼로 현수막을 직접 훼손하였다는 것, 주변 다른 현수막의 상태가 양호하였다는 것 등을 통틀어 보았을 때 이는 성소수자 및 성소수자 단체를 특정하여 일어난 명백히 고의적인 훼손 행위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칼로 훼손하고 무단으로 철거하여 폐기한다는 것은 서강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존재 자체를 전면 거부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짓밟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한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교육자로서 다양성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할 교수가, 정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고 신분을 숨긴 채 현수막을 훼손하는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 본인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학생 자치에 대한 부당한 침범이자 명백한 월권 행위일 뿐만 아니라 같은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라며 신 교수에 대해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오는 10일까지 공개서한에 대한 답을 요구하면서 사과를 포함한 입장 표명이 없을 시 공론화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타인의 재물을 훼손한 것으로 판단해 고소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 교수는 9일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현수막을 붙이려면 학생문화처 허가를 받게 돼 있다. 원래 지저분한 걸 잘 떼는 사람"이라며 "그날도 가는 길목에 무단으로 현수막이 게시돼 있어 사진도 찍은 다음 뗐다"고 말했다.

▲ ⓒ춤추는Q

▲ ⓒ춤추는Q

신씨는 현수막 내용에 대해 "이 세상에 환영할 사람이 많은데 왜 그 사람만 환영하냐"라며 "내용 자체도 반감이 있다. 여러 사람들을 환영해야 하는데 환영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들의 홍보라고 생각한다. 철거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은 그쪽의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총학생회 명의의 현수막은 학생 자치 영역에 속해 학교에서도 떼는 경우가 없다"면서 "현수막을 떼는 것도 그렇지만 현수막을 훼손한 것은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학생들의 공개 서한을 통한 사과 요구에 대해 "내가 사과할 일이 없다. 공개서한에 답변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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