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가 코너에 몰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MBC 드라마 ‘내딸 금사월’에 3번째 법정제재를 예고했다. 지난 1월 MBC가 막장 드라마에 대한 심의제재 취소를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낸 첫 소송에서 패했다. 방통심의위는 막장 드라마 개선 토론회를 열고 강령제정 등 보다 강력한 제도적인 보완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속 시원하다며 ‘사이다 행정’이라고 평가한다. 막장 드라마가 ‘저질’이라 개선돼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나서서 드라마의 내용을 두고 칼을 휘두르는 건 불필요하며 과도하다는 지적도 많다.

막장 드라마 문제 심각한 건 맞지만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을 위해 높이기 개연성 없고 자극적인 이야기 구성이 이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는 지난달 종영된 MBC ‘내딸 금사월’이다. 비정상적인 줄거리로 ‘발암 드라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며느리의 혼외자식을 다른 아이와 바꿔치기 한다. 전 남편과 재결합을 위해 자녀들 앞에서 자살 협박을 한다거나 강제 키스를 하기도 하고 본처와 전처가 한 집에 살며 본처에게 산후조리를 돕게 하는 장면도 있다. 장인이 사위를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이를 무마한다거나 사고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인멸하면서 목격자를 납치하기도 한다.

막장 드라마는 과거에도, 다른 지상파 방송에서도 꾸준히 논란이 돼왔다. SBS ‘아내의 유혹’에서는 전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얼굴에 점을 찍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데 놀랍게도 전 남편이 알아보지 못한다. MBC ‘압구정 백야’는 자신을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딸이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의 며느리로 들어간다는 설정이다.

SBS ‘하늘이시여’에서는 등장인물의 뜬금없는 죽음이 조롱의 대상이 됐다. 등장인물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다가 숨이 막혀 사망한다. MBC ‘오로라 공주’에서는 10명의 등장인물이 갑작스럽게 죽는다. MBC ‘모두 다 김치’에서는 김치로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김치 귀싸대기’ 장면이 나오고, 이에 질세라 MBC ‘이브의 사랑’에서는 스파게티로 얼굴을 가격하는 ‘스파게티 싸대기’ 장면이 나왔다. SBS ‘신기생뎐’에서는 공상과학 장르도 아닌데 주인공의 눈에서 갑자기 레이저가 나오는 황당한 장면도 있다.

▲ 위 두 사진은 MBC '이브의 사랑'으로 자극적인 폭력 장면이 문제가 됐다. 아래 사진은 SBS '아내의 유혹'으로 전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얼굴에 점을 찍는 과도한 설정을 해 문제가 됐다.

드라마왕국? 드라마제재왕국

‘내딸 금사월’의 경우 10일 심의위 전체회의에서 벌점 4점과 함께 ‘경고 및 관계자 징계’가 의결될 계획이다. 이 드라마는 법정제재인 ‘주의’ ‘경고’를 각각 한 차례씩 받은 적이 있는데, 심의제재를 받았음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돼 가중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드라마 심의는 일반적으로 시사나 뉴스 장르에 비해 심의 과정에서 갈등의 소지가 적어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심의를 받은 TV 장르가 드라마다. 방통심의위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 9월까지 방통심의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지상파 프로그램 장르는 드라마가 전체의 41.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 지상파 드라마 제재는 ‘수용수준 위반’이 가장 많았는데, 이는 드라마가 정한 연령대와 내용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윤리성 위반’이 가장 많았다. 2009~2015년 사이 지상파 드라마가 총 170건의 제재를 받았는데 그 중 ‘윤리성 위반’만 68건에 달한다. 이야기 전개가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일 경우 심의위가 중점적으로 제재를 내렸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윤리성’을 논하나

지상파의 막장 드라마는 물론 문제가 많다. 공공재인 전파를 쓰는 지상파 방송,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에서 이 같은 상업주의적 행태가 나타나는 측면에서 문제다. 그러나 드라마가 문제가 있다며 ‘저질’이라고 비판하는 것과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찌됐건 드라마의 전개는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해당에 과도한 제재는 문제가 있다. 특히 ‘윤리성’제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심의위는 내용 심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곽현자 방통심의위 연구위원은 지난 3일 저품격드라마 개선 토론회에서 “윤리성 중에서도 가장 많이 적용되는 건 ‘가족공동체의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는 25조”라며 “여러 사례가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드라마 내용’을 말한다. 심의위가 개인윤리가 아니라 가족공동의 가치인 가족윤리가 흔들리고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일관되게 제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리성’이라는 잣대는 보도 심의의 ‘공정성’만큼이나 기준이 추상적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인 ‘햄릿’도 제재할 거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윤리성은 고정불변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일관된 잣대를 갖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지난 3일 저품격드라마 개선 토론회에서 “윤리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는 가치”라며 “예를 들어 연령이 높은 여성분들에게는 특정 상황에서 좀 억울하더라도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게 볼 수도 있는 반면, 젊은 세대에게는 데이트 폭력이나 범죄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강 정책위원은 또 “윤리성에 대한 담론을 방송통신심의위 내에서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제재하려면 심의위의 축적된 근거가 존재해야 하는데 심의결과를 보면 이 같은 고민이나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괘씸죄’도 적용되나

심의 잣대가 모호하다보니 그만큼 위원들의 판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2일 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KBS ‘천상의 약속’이 심의제재를 받았는데 의견진술이 끝나자 김성묵 소위원장은 “‘내딸 금사월’에 비춰 봤을 때 의견진술자의 태도는 마음에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드라마 내용과 무관하게 제작진의 의견진술 태도가 심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자의적인 심의제재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낸다.

MBC는 ‘오로라 공주’ 심의 과정에서 “임성한 작가와 계약하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MBC는 ‘압구정 백야’에서도 임성한 작가를 기용했고, 이 프로그램 심의 때 심의위원들은 “왜 재계약을 했느냐”고 질타를 했다. 심의제재에도 이 같은 점이 반영됐다. MBC가 입장을 번복한 건 문제이지만 구속력이 없는 의견진술 자리에서 했던 말을 이유로 엄연히 다른 프로그램에 제재를 내리는 건 사실상 ‘괘씸죄’를 적용한 셈이다.

드라마에 대한 심의위의 권한이 필요 이상으로 막강하기도 하다. 막장 드라마라는 이유 때문에 제작진을 징계하는 일도 벌어진다. 실제 의결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MBC ‘압구정 백야’의 경우 방송심의소위원회 위원 5명 중 4명이 ‘프로그램 중지’ 의견을 내기도 했다. ‘프로그램 중지’가 되면 문제의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지상파, 케이블, 인터넷 등을 통한 재방송이 금지된다. ‘압구정 백야’ 심의 과정에서 심의위원들이 임성한 작가를 문제 삼자 임성한 작가의 퇴출로 이어지기도 했다. 심의위가 프리랜서인 작가의 거취와 프로그램 편성까지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청소년시청보호 시간대

지난 1월25일 막장 드라마에 대한 심의에 반발해 방송사가 정부를 상대로 낸 최초의 소송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나왔다. 드라마 줄거리가 명백히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만큼 방송사에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재판부는 “심의제재가 적절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지상파 방송사는 청소년 보호시청시간(가족시청시간)대에 가족 구성원 모두의 정서적 윤리수준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할 책임이 있다”면서 “청소년의 정서 발달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청소년의 올바른 가치관 등을 저해하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고 판시했다. ‘표현의 자유’ 쟁점을 논하는 대신 법으로 규정된 ‘시청 시간대’에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됐다는 점에 집중한 것이다. 청소년 보호시간대는 평일 기준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청소년 보호시간대가 유명무실하다는 점을 짚지 않았다. TV가 지배적인 미디어일 때 만들어진 규제를 PC와 스마트폰 등 다매체 환경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 또한, 시청시간 규제는 실시간 방송 뿐 아니라 VOD 중심으로 콘텐츠가 소비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MBC 역시 소송을 제기하며 “청소년 보호시간대에 방영됐다고 하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해 시간의 구애 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청소년을 지나치게 수동적인 주체로 본다는 점이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실제 청소년들의 생활패턴을 보면 청소년 보호시간대에 시청을 주로 하지 않고, 다른 시간대 시청이 늘고 있다는 점도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같은 문제는 다른 기관도 아닌 방통심의위가 지난해 12월 ‘심의정책 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펴낸 ‘어린이청소년보호를 위한 심의정책 연구’ 보고서에서 드러난다.

보고서는 “청소년 보호시간대의 경우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학교나 학원 등으로 인해 해당 시간에 TV를 시청할 수 있는 어린이, 청소년의 수가 적을 뿐더러 오히려 오후 10시 이후의 프로그램에 대한 청소년 시청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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