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OT’가 논란입니다. 한 단과대 오리엔테이션에서 성희롱 게임을 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주말에는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며 비난여론이 거세졌습니다. ‘사과문 희롱체 논란’입니다. 학생회에서 ‘사과문’을 썼는데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써 사과를 대충하고 넘어가려던 것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포털에서 건국대를 검색하면 ‘사과문’ ‘희롱체’가 연관검색어에 뜰 정도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자보 사진이 올라오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며 논란이 확산됐습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위키트리, 인사이트 등 소셜미디어에서 주로 소비되는 언론들은 물론 연합뉴스TV가 두 차례나 방송했고, KBS와 노컷뉴스도 글 기사로 다뤘습니다. 한겨레는 페이스북 게시물로 관련 문제를 지적하며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을 언급했습니다.

▲ 페이스북 '한겨레' 페이지.

성희롱을 해놓고선, 반성은커녕 ‘희롱체’를 써가며 사과까지 회피하다니. 누리꾼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사과를 하는 게 싫어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게 쓴다는 게 말이 되나요?

실은 비난을 받은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제 후배입니다. OT논란이 벌어진 곳은 생명환경과학대학이고 대자보를 쓴 곳은 문과대 소속으로 성희롱 논란과 무관합니다. 책임이 없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가해자가 소속된 학생회가 쓴 게 아니니 당연히 사과문이 아닙니다. ‘입장문’을 쓴 겁니다.

그런데 언론이 ‘사과문’이라고 쓰고 ‘희롱체 논란’이라고 쓰니 이 학생회장은 성추행 가해자로 오해를 받는 상황입니다. 대자보 하단에 학과 이름과 함께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의 이름이 있습니다. 신상을 터는 일이 어렵지 않았겠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고, 학과 교수에게 “학생을 정학시키라”는 항의메일도 왔다고 합니다. 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대자보를 쓴 학생회장은 원래 필체가 굉장히 독특합니다. 출력하지 않고 학생회장이 직접 손으로 대자보를 쓴 이유는 그만큼 진정성을 보이겠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이미지가 크기가 작아 그렇지 실제로 보면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라고도 하고요. 물론, 대중에게 보이는 대자보에 가독성이 좋지 않은 글을 쓴 게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판은 거기에서 그쳐야 합니다. 성희롱 문제와 연결지어 비판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연합뉴스TV는 “성희롱 OT 논란을 낳았던 건국대가 또 한번 논란에 휩싸였다”면서 “학생회에서 직접 쓴 공식 사과문을 내걸었는데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는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학생회’라는 모호한 표현을 써 마치 가해자가 소속된 학생회에서 대자보를 게시했다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한겨레 페이스북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컴퓨터가 없진 않을텐데”라며 ‘희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나쁜 의도에서 쓴 글이 아닌 손글씨를 배운 학생이 1시간 반 동안 정성 들여 쓴 글” “문제를 일으킨 단과대가 아닌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입장표명문으로 사과문이 아니다”라는 건국대 관계자 입장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마치 아랍어처럼 보이는 건국대의 ‘성추행 OT’ 사과문(이미지)”입니다. ‘사과문’이 아닌 걸 알면서도 ‘사과문’이라고 써 장사를 한 것이죠. 이 언론은 학생회장, 부학생회장 이름을 모자이크 없이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 논란이 된 대자보.

물론,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볼 수 있습니다. 제 지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고 넘어갔겠죠.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치부가 드러난 건 분명합니다. 온라인 이슈대응을 빌미로 속칭 ‘장사가 될 만한 커뮤니티글’을 사실관계 확인 없이 ‘논란’으로 다루는 것. 그리고 사실관계를 알면서도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장사하는 것. 문제 있는 관행입니다. 당사자에게 큰 피해가 돌아간다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고요.

공교롭게도 논란된 이 학과는 미디어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결과적으로 산 교육이 된 듯 합니다. 후배들의 비난이 거셉니다. ‘기레기’라는 말은 예사입니다. “이런 게 디지털퍼스트냐”는 비아냥도 있습니다. 주말에 만난 한 후배는 “몰라서 그렇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라며 “좋은 언론이라고 생각한 곳이 이런 보도를 해 실망이다. 어뷰징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습니다. 대자보가 아니라 기사가 모두를 ‘희롱’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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