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하는 막장드라마가 넘쳐난다. ‘출생의 비밀+악녀의 등장+주인공의 복수’로 끝나는 천편일률적 줄거리만으로는 이제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아무런 개연성 없는 폭력행위와 죽음 정도는 나와야 한다. 폭력도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김치 싸대기’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밑도 끝도 없는 간접광고도 필수다. 이제는 사안이 심각한 막장드라마에 대해 ‘또드(또라이 드라마)’라는 용어가 쓰일 정도다.

방송통심의위원회는 한국언론학회와 함께 지난 3일 오후 ‘저품격 드라마의 공적책임 회피현상과 개선방향 모색’토론회를 열었는데, 막장드라마 성토의 장이 됐다. 패널들은 ‘드라마 강령 제정’ ‘PD책임 시스템 마련’ ‘막장 제작진 퇴출’ ‘드라마 막장 지수 측정을 통한 제재’ ‘재승인 때 막장드라마 심의 적극 반영’ 등의 강경책을 쏟아냈다. ‘사전제작 활성화’ ‘시장 문제 개선’ 등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가 나서서 막장드라마 때려 잡아라?

유균 극동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막장드라마를 “지극히 삐뚤어진 일탈행위”라고 규정했다. 유 교수는 “사회규범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비도덕적 일탈의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규제돼야 하고 퇴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창조경제의 첨병인 한류콘텐츠를 위해 막장드라마를 퇴출하도록 정부당국자들이 나서야 한다”며 억지스런 주장을 펴기도 했다.

청소년이 시청할 수 있는 시간대에 방영되는 막장드라마가 그들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조연하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러한 드라마가 청소년들에게 노출이 될 경우 그들이 가진 사회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조재연 변호사는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가정해체가 되는 상황에서 가정폭력장면이 나오는 건 윤리의식의 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 위 두 사진은 MBC '이브의 사랑'으로 자극적인 폭력 장면이 문제가 됐다. 아래 사진은 SBS '아내의 유혹'으로 전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얼굴에 점을 찍는 과도한 설정을 해 문제가 됐다.

물론, 현행법상 ‘청소년보호시간대’가 있으며 지상파방송이 공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지상파방송만 바라보는 시대 때 만들어진 청소년보호시간대를 다매체 상황에 적용하는 건 한계가 있다. 물론, 이 같은 논의가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수동적인 주체로 전제한다는 점도 문제다.

드라마가 저속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심의를 하는 등의 강경한 규제를 하는 게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막장드라마를 심의하는 주된 잣대인 윤리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는 가치다. 심의결과를 보면 심도있는 고민이나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소통 없이 규제일변도의 대응방안을 내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왜 지상파에서만 막장드라마 나올까

막장드라마의 문제는 유독 지상파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곽현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구위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지상파 드라마 제재는 총 170건, PP(방송채널사용자업자) 드라마 제재는 155건인데,적용조항을 보면 지상파는 ‘윤리성 위반’만 68건에 달한다. 반면 PP의 경우 ‘윤리성 위반’은 4건 뿐이다. 곽 위원은 “윤리성 위반이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가 걸린 심의다. 대부분 지상파 작품”이라고 말했다.

패널들은 지상파 방송에서 막장드라마가 많은 이유로 ‘사전제작 시스템 미비’ ‘스타연예인 위주의 캐스팅’ ‘일일드라마의 시청률 지상주의’ 등을 꼽았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지상파 드라마 중 ‘태양의 제국’이, 케이블에서는 ‘시그널’이 호평을 받고 있는데 둘다 사전제작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막장드라마의 경우 쪽대본을 통해 시청률이나 시청자 반응에 따라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바꾸고, 촬영시간이 촉박해 연출면에서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금림 작가는 tvN과 지상파의 제작시스템을 비교했다. 이 작가는 “tvN은 캐스팅에 스타를 고집하지 않아 제작비 부담을 줄여주고, 시청률 압박을 주지도 않는다. 그 결과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작품이 나왔고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지상파가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지상파 방송과 제작사의 시청률 압박에 관해 “극을 써서 보여주면 '더 지독하게 써오라'고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책임자인 지상파·방통위 없이 책임 떠넘기기만

이날 막장드라마의 책임소재를 두고 패널들은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막장에 재미를 들인 작가들이 1차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금림 작가는 “제작사가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제작사의 문제를 지적했다.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모든 게 제작사 탓이 되는 거 같아 당황스럽다”면서 “시청자들이 있으니 막장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시청자가 문제”라며 책임을 돌렸다.

주장들이 타당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엽적인 논의에 그쳤다. 일차적으로 제작을 총괄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문제이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상파방송의 상업화를 막지 못한 채 무한경쟁구도를 만든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는 현직 지상파 관계자나 방송통신위원회 측이 패널로 참석하지 않아 근본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힘든 구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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