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와 PD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의 진실이 그대로 묻힐 확률이 커졌다.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고영주 이사장)는 지난 1월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문제의 녹취록이 공개된 후에도 지금껏 녹취록 진상규명을 위한 정식 안건조차 통과시키지 않았다. 

지난달 4일과 18일 야당 추천의 유기철·이완기·최강욱 이사가 올린 ‘백종문 본부장 녹취록에 기재된 사실관계에 대한 진상규명 및 향후 방문진 조치에 관한 건’이 무산된 후 3일 열린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백종문 이사 출석 결의의 건’이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이 역시 여권 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고영주 이사장을 포함해 방문진 이사 9명 중 6명을 차지하고 있는 여권 추천 이사들은 이번에도 ‘사적인 자리에서 한 얘기이므로 방문진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는 등을 이유로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의 정식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이날 회의에선 차기 정기이사회 때 녹취록에 등장하는 핵심인물인 백 본부장이 나오면 녹취록과 관련해 해명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마지못해 합의하는 데 그쳤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18일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에 앞서 서울 여의도 방문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종문 녹취록’ 진상규명과 안광한 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나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이 ‘녹취록 파문은 선거철을 앞두고 기획된 정치공작’이라는 MBC 사측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태도로 볼 때 백 본부장이 방문진에 나와 소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의 책임 추궁이나 문책은 어려워 보인다.   

방문진은 지난달 25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도 ‘MBC 이사 선정 결의 건’을 다루며 백 본부장 등의 재임 여부를 논의했지만 야당 추천 이사들의 반대에도 고영주 이사장 등 여권 추천 6명 이사들이 재임에 찬성하면서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미 MBC 사측은 지난 1월29일 보도자료를 통해 “특정 정치세력과 일부 좌파 매체들이 한몸이 돼 선량한 MBC 직원들을 선동하고 내부를 극단적인 갈등으로 몰아갔던 2012년 파업 상황의 완벽한 데자뷔”라며 “최승호(PD)와 박성제(기자)는 노조의 전임 위원장으로서 불법 파업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백 본부장의 소명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MBC 사측의 이 같은 감정적인 보도자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금껏 녹취록 파문을 뭉개기로 일관하고 있는 방문진 다수 이사들이 백 본부장의 일방적인 해명을 듣고 내릴 결론은 뻔하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개인적 의견일 뿐이고, 업무상 불법행위가 있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으면 되는 일이므로 방문진은 더 이상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

이날 이완기 이사는 백종문 본부장 출석 요구에 대한 안건 설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적인 자원인 전파를 부여받고 공정과 공익을 추구하는 공영방송 MBC가 지금까지 이 사안에 대해 보여준 모습은 시청자들 입장에서 매우 안이하고 후안무치했다. MBC의 일개 직원의 비위가 들통나 사회에 파장을 일으켜도 이처럼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태도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MBC 경영의 주요 의사결정을 맡고 있는 핵심 임원의 부끄러운 바닥이 드러난 일이다. 그에 대한 관리감독권과 경영진에 대한 임면권을 가진 방문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뭉개고 간다면 방문진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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