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무제한 토론)가 끝난 2일 밤 KBS <뉴스9>의 ‘무제한 토론 무얼 남겼나?’ 리포트 앵커멘트는 이랬다. “토론의 초점이 테러방지법에만 맞춰지다 보니 다른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특히 대내외 경제 환경 악화 속에 주목 받아온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들은 폐기 위기에 처했습니다.” KBS뉴스만 보면 세계최장시간 필리버스터가 남긴 것은 고작 경제활성화법에 발목을 잡은 것뿐이었다.

KBS는 이날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법안이 통과되면 일자리 37만 개가 생길 것으로 추산했지만 야당이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며 반발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정부와 여당은 관광과 의료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 60만 개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야당이 의료 민영화가 우려된다며 반발해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고 보도했다. 야당이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뉘앙스는 ‘이게 다 야당 탓’이다.

KBS가 내놓은 해법은 과거 한나라당이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 개정이다. KBS는 “여당은 야당 주장 수용하느라 법 취지를 제대로 못 살렸다고 불만이고, 야당은 여론전에 떠밀려 동의했다며 떨떠름해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안건 처리에 야당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며 “폭력 국회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또 다른 왜곡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19대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개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 위에서부터 2일자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JTBC '뉴스룸'.
KBS가 필리버스터를 소재로 경제활성화법 처리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하며 정부여당 입장을 충실히 반영했다면, MBC는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야당을 희화화하고 정치 불신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2일 MBC <뉴스데스크>는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가 남긴 것은?’ 리포트에서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대표와 이석현 국회부의장의 다툼 장면을 내보냈고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대목을 소개했다.

또한 MBC는 필리버스터 도중 “생리 현상이 급합니다. 화장실을 허락해 주시면…”이라고 말한 안민석 더민주 의원의 모습을 보여줬다. “전직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에게 대리사회를 보게 하면서 위법 논란을 일으켰다”고도 전했다. 새누리당이 강조했던 ‘선거버스터’ 프레임도 등장했다. MBC는 “사실상의 선거 유세도 이어졌다”며 박영선 더민주 의원이 “총선에서 야당을 찍어주십시오! 야당에 과반의석을 주셔야…”라고 말한 부분도 등장시켰다.

해당 리포트에서 드러난 필리버스터는 틈만 나면 다투고, 노래를 부르는가하면, 화장실을 가게 해달라 애원했으며, 선거유세에 나섰던 정치 쇼에 불과했다. MBC는 “야당은 지지층 결집과 함께 오랜만에 존재감을 나타냈다고 자평했다. 반면 약자 소수당을 위한 제도가 악용되고 희화화되면서 국정 발목 잡기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있다”고 평가했다. 필리버스터를 희화화한 주체는 언론, 바로 자신이었지만 이 같은 유체이탈 화법이 버젓이 등장했다.

반면 JTBC는 공영방송 KBS와 MBC의 필리버스터 리포트와는 사뭇 달랐다. 2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는 ‘마이 국회 텔레비전’(마국텔)이란 용어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이 국회 텔레비전은 조금 전에 중단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SNS를 비롯한 각종 작은 매체들이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을 말한다. 힐난 혹은 비아냥조로 일관하거나 온갖 가십거리로 넘쳐났던 몇몇 기성 매체들을 대신해 정치인과 유권자 간 쌍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작은 매체들…마국텔은 그래서 등장했다.”

손석희 앵커는 테러방지법 통과 국면을 두고 “여당은 승리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통과될 수밖에 없는 예정된 승리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전한 뒤 “남은 것은 무엇인가…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석희 앵커는 “대상이 테러방지법이든,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법안이든 그것이 시민사회에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 아무리 지난해도, 또한 그 결과가 아무리 뻔 한 것이어도, 그 과정 자체를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JTBC 2일자 '뉴스룸' 앵커브리핑.
JTBC는 필리버스터 국면에 마침표를 찍으며 ‘책임 있는 언론’을 강조했다. 손석희 앵커는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언론이 있다면 그 사회는 합리적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한 칼럼의 구절을 인용하며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그 믿을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은 마국텔이 했다는 것도 기억해둬야겠다”고 말했다. KBS, MBC, JTBC가 각자 찍은 ‘필리버스터 마침표’를 바라보며 ‘책임 있는 언론’은 과연 어디 있는지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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