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대전광역시 유성구)는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MBC 사장에 출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가 아닌 ‘김재철의 사람들’을 선택했지만 그가 사장이 되길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명길은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이라는 평가보다 회자됐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특수한 ‘인연’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사장 후보로 나설 때마다 일부 언론은 ‘박근혜 인사’로 꼽기도 했다.

공영방송 사장을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퇴보한 언론 환경에서 그나마 최명길이 된다면 나아질 거라는 일말의 기대.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권력을 쥔 ‘김재철의 사람들’은 그대로다.

최 예비후보(이하 편의상 후보라고만 씀)는 2014년 7월1일 MBC에 사표를 던지고 정치 출마를 선언했다. 그해 7·30 재보궐 예비후보 사퇴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현재는 대전 유성구에서 예비후보로 활동하고 있다. 

▲ 최명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26일 대전 유성구 선거 사무소에서 만난 최 후보는 더민주의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정치로 자리를 옮기자 이제는 최 후보를 ‘김한길의 사람’라고 했다. 실제 영입 제안을 했던 인물이 김한길 당시 새정치연합(현 더민주) 대표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김한길 전 대표는 더민주를 떠나 국민의당에 몸담고 있다.

최 후보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정치를 하셨던 분이기도 하고, 개인의 선택에 대해 코멘트를 할 입장은 아니”라면서도 “그때(탈당을 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그분(김한길) 스스로도 여러 계산 착오가 있었다고 판단하실 것”이라고 했다.

MBC에서의 최 후보 경력은 화려하다. 1986년 입사해 28년 동안 MBC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정치부 기자, 청와대 출입기자, 워싱턴특파원, 정치팀장, 뉴스앵커, 유럽지사장 등을 지냈다. 그의 선거 사무소 곳곳에는 ‘유성의 행복특파원’이라고 쓰인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 MBC 사장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박근혜 인사’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박 대통령과 어떠한 인연이 있나? 청와대 홍보수석에 거론되기도 했다.

“2010년 무렵 김종인 박사(현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만나서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닌가, 그렇다면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물론 언론인인 나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고. 한땐 MB가 하는 것보다 그(박근혜)가 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박근혜)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거다. 관계는 상호적이니까. 나와 김종인 대표, 박 대통령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김 대표와는 30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

-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비례대표를 제안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박 위원장이 ‘비례대표 8번을 최 국장을 위해 만들어놨고 들어와서 선대본부 대변인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거듭한 것은 사실이다.”

- 비례대표를 제안하는 데 김종인 대표(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역할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시겠지만 박근혜라는 사람은 (인사와 관련한) 건의를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다.(웃음)”

- 왜 수락하지 않았나?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MBC 후배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는 사표를 제출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현직에 있으면서 사표를 제출하고, 그쪽으로 합류한다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웠다.”


▲ 최명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지난 1월에 낸 책 ‘미운 정치 예쁜 정치’
최 후보가 쓴 '미운정치 예쁜 정치'라는 책을 보면, 최 후보와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2007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내 경선 룰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던 시기다.

최명길 선임기자의 박근혜 단독 인터뷰로 MB 캠프 발 ‘최명길 친박론’이 흘러 다녔고 이 때문에 BBK‧세종시 수정안‧내곡동 사저 문제에 목소리를 낼수록 더욱 ‘친박 기자’로 분류됐다고 최 후보는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2년 총선을 앞둔 3월6일 강남의 한 호텔 면담실에서 최 후보를 만나 “이게 저 개인 일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도와달라는 겁니다”라며 간곡하게 참여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날 밤 최 후보와 이 문제를 함께 상의하던 박성호 MBC 기자회장(현 해직기자)의 한마디. 

“선배가 선택하는 데 대해 의견을 말하긴 어렵지만 가게 되시면 파업하는 후배들 힘이 많이 빠질 것 같다.”

- 그러고 나서 MBC 사장에 출마했다. 왜 나서게 된 것인가?

“2013년 3월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통과돼 후임 사장 공모 절차가 시작됐다. 김재철 밑에서 일했던 이들이 죄다 사장이 되려고 정치권에 줄을 대는 상황이었다. ‘김재철 시즌2’가 아니라 김재철이 어지럽힌 것을 수습하고 청소하는 분이길 바랐다. 구영회 MBC 미술센터 사장(정년퇴임), 김성수 목포 MBC 사장(현 더민주 대변인) 두 분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들이 도저히 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두 분 중 한 분이 또 여러 말씀을 하시며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을 아는 사람이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후배들의 청도 있었다. 정권을 잡은 사람과 연이 있어야 그나마 MBC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을 거다. 그래서 갑자기 나서게 된 거다.”

- 그러나 ‘선택’받지 못했다.

“‘내게 호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내가 추천돼 올라가면 선택할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잠시나마 희망을 걸었다. 그 사실이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다.”

- 사장이 됐다면 지금의 MBC와는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그걸 생각해보면 박 대통령이 날 MBC 사장에 임명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해가 된다. 권력을 획득하기 전에야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아부하지만 권력을 쥔 후에는 휘두르는 데 목숨 건다. 권력자에겐 자유로운 언론, 민주적인 공영방송이 필요 없다는 얘기지.(웃음)”

▲ 2014년 2월 당시 안광한 MBC플러스미디어 사장(왼쪽부터, 현 MBC 사장), 이진숙 워싱턴 지사장(대전 MBC 사장), 최명길 인천총국 부국장(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율촌빌딩 6층 방송문화진흥회 회의실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MBC 신임 사장을 결정하기 위한 면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달 폭로된 ‘MBC 녹취록’ 사태 어떻게 지켜봤나?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텐데 당연히 저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입으로 근거없이 해고했다고 했다. 과거 MBC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전문 로펌의 지원을 받고, 대법원까지 기다려 3~5년씩 재판을 끌고 이후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식으로 조직이 망가지진 않았었다. 지금 MBC의 상황은 너무나 야만적이다.”

- 최근 최기화 MBC 보도국장의 경우 타 취재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물의를 빚기도 했는데. 같이 기자로서 활동했을 텐데 최 국장은 어떤 사람이었나.

“최기화 국장은 겉으로는 괄괄하고 속에 담지 못하고 소리 지르고 하지만 현재 MBC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서 상대 평가하면 그나마 양질인 사람이다. 양심이 눈곱만큼은 있는 사람이다.”

- 2014년 7월1일 MBC에 사표를 던지고 정치 출마를 선언했다. 왜 정치에 뛰어든 건가?

“국민들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보는 공영방송을 만드는 데 28년 동안 일을 해왔다. 하지만 기회를 빼앗긴 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정부가 끝나길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 2012년 비례대표 제안이 왔을 때는 몇몇 선후배와 상의를 했는데 사표를 낼 때는 따로 상의하지는 않았다. 인천총국 부국장으로 있을 때인데 언론인이 아니라 일반 회사원 같았으니까.”

- 언론인이 정치로 직행한 것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도 최문순 사장이 비례대표로 갔을 때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2012년 때는 현직 언론인이라는 사명이 무겁게 작용했지만 사표 당시에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중요 보직을 맡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른바 인천총국 부국장으로 다니면서 출근하는지 감시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를 언론이 정치에 뛰어든 것이라는 형식 논리로 비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 지난달 공개된 MBC 녹취에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은 최승호 PD(왼쪽)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 언론계에서는 2012년 후배들이 힘든 시기 최 후보가 목소리를 낸 적 있느냐는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파업 때 나 파리에 있었잖아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돼.(웃음) 김재철 사장 시기 MB에 연일 쓴 소리를 해댔다.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의 광장’ 앵커를 하다 모양새 만들어서 하차시키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하다가 또 마이크 뺏겼다. 그러고 파리에 가있었는데 후배들이 파업을 했다. 유럽지사장이었는데 동조 파업을 해야 했을까.(웃음)”

실제 ‘뉴스의 광장’ 앵커 시절 최 후보의 클로징 멘트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시절 오프닝 멘트는 화제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MB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던 그는 내곡동 땅 보도 이후 마이크를 내려놓게 된다. 다음은 그의 멘트 일부다. 

“수정안이 원안보다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면, 차라리 약속을 지켰다는 말이라도 들어야 한다” (2010년 1월11일 정부의 세종시수정안 관련 멘트)

“G20서울회의는 한 해에 두 번 열리는 G20토론토회의와 파리회의 사이에 열린 한 차례의 회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2010년 11월11일 G20 관련 멘트) 

“작년 1월 인터넷에 경제위기론 얘기하던 미네르바를 구속해야 한다며 큰소리를 내던 분들, 이제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건지 자숙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2010년 12월29일, 미네르바 관련 멘트)

- 앞으로도 공영방송 이슈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공영방송 임원진으로서 활약할 기회는 버리더라도 다음 세대의 공영방송 임원 선임 절차는 바로잡는 것에 기여하고자 나왔으니까.”

- MBC 기자들은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다. 광정(匡正)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