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와 PD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고영주 이사장)는 백 본부장을 비롯해 안광한 사장, 권재홍 부사장, 김장겸 보도본부장 등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방문진은 지난 25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MBC 이사 선정 결의 건’을 다루며 백 본부장 등의 재임 여부를 논의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 자리에서 최근 녹취록 파문을 일으킨 백 본부장과 노동조합에 대한 반론보도 판결 당사자인 권 부사장, 보도 경쟁력과 공정성 추락의 책임자 김장겸 보도본부장 등 3명에 대한 재임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날 회의에 출석한 안광한 사장은 “여러 가지 인사 판단 기준이 있지만, 상법상 임기(3년)가 있다고 해도 작년에 합심해서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안정적 경영기조를 위해서 재임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여야 추천 이사들 간의 격렬한 논쟁이 오갔지만 고영주 이사장이 안 사장을 회의장에서 퇴장하도록 한 후 9명의 이사 중 고 이사장 등 여당 추천 6명 이사들이 백종문 본부장 등 3명에 대한 재임에 찬성해 안건이 의결됐다. 

지난달 25일 뉴스타파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방송 갈무리.
그러자 야당 추천 이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18일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백종문 녹취록’ 관련 진상규명 등에 대한 결의사항을 논의했지만 진상조사와 당사자 출석요구 등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고 이사장이 ‘필요하면 추가로 논의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고 이사장은 입장을 바꿔 안 사장을 일방적으로 내보내고 사실상 이번 사태 책임자들을 문책하지 않기로 표결에 부쳐버렸기 때문이다.

야당 추천의 유기철 이사는 “백 본부장 등이 술 마시고 헛소리했다는 게 지난 이사회 결론인데, 그 중엔 사실이 있을 수도 있고 백 본부장과 MBC가 녹취록 파문 이후에 사과 한마디,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며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에게 정치적 고질병, 구태를 뒤집어씌워 놓고 오늘 또 다수의 힘으로 뭉개 관철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방문진 무용론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질타했다. 

고 이사장 등 여당 추천 이사들이 뜻을 굽히지 않자 야당 측 이사들이 백 본부장만은 재임시켜서는 안 된다고 거듭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야당 측 이사들에 따르면 여당 측 이사들은 권재홍 부사장 관련 ‘허리우드’ 액션 보도와 ‘백종문 녹취록’, 보도 공정성 문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면서 MBC의 보도경쟁력과 경력기자 채용 등 인사 방침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에 앞서 서울 여의도 방문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종문 녹취록’ 진상규명과 안광한 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한편 이날 방문진 앞에서 열린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에서 ‘증거 없는’ 해고의 당사자 최승호 PD는 “백종문 본부장은 공인이고, 공인은 사석이더라도 자신이 했던 공적 행위와 발언 내용에 대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며 “더군다나 그 자리는 백 본부장이 자기 휘하의 보직 간부들을 데리고 언론사 편집국장을 만나서 편향된 보도를 요구하며 그에 대한 대가를 약속한 공적 의미를 가진 만남이었는데 거기서 나온 대화가 어떻게 사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최 PD는 “지난번 방문진에서 기껏 녹취록을 달라고 해서 논의하면서 명예훼손이 될지 모른다며 비공개 결정하고, 조합원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무지막지한 말을 하고 실제로 명예를 훼손한 자들의 명예는 그렇게 소중하냐”면서 “정말 심하다. 일말의 양심이 있으면 이런 자세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능희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은 “후배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해고해 놓고 다음 재판에 잡아넣자는 자들을 MBC에 남겨 놓고 공영방송이 제대로 굴러가길 바라는 방문진과 방통위, 국회, 청와대, 새누리당 모두 결코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이런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덮자고 한다면 불법행위 저지른 곳을 관리 감독하는 방문진과 그 배후 청와대는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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