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가만히 있으라’ 집회를 주최한 대학생 용혜인씨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압수수색을 하고 나서도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형사31단독 김용규 판사)은 용혜인씨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과 은평경찰서가 벌인 압수수색을 취소해 달라”며 낸 준항고 소송에서 ‘영장집행 취소’결정을 지난 18일 내렸다. 준항고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이 내린 처분에 대해 이를 취소하거나 변경해달라며 내는 이의신청을 말한다.

수사당국은 용씨가 집회에서 신고된 범위를 넘어 도로를 점거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벌이면서 5월20~21일동안 용혜인씨의 카카오톡 대화방 57개의 내용을 카카오 법무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용씨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2015년 재판 도중 알게 돼 준항고를 제기했다. 

▲ 2014년 5월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용혜인 씨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염원하는 침묵행진 도중 발언을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취소’라고 판단한 이유는 본인에게 통보를 하지 않은 채 몰래 압수수색을 한 점이다. 법원은 “급박한 상황의 경우 통보 절차를 예외로 할 수 있지만 이번 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카카오가 대화내용을 일정 기간 서버에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항고에 참여한 김종보 변호사는 “수사당국은 ‘압수수색은 했지만 증거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알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면 증거로 쓰지만 않으면 마음껏 카톡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경찰이 벌이는 압수수색도 이렇게 위법한데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이 영장도 생략할 수 있어 더 무분별하게 개인정보가 털릴 것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은 용혜인씨가 위법으로 지적한 ‘압수수색 영장 원본이 아닌 사본을 팩스로 제시한 점’ ‘압수물 목록을 교부하지 않은 점’ ‘피의사실과 관련 없는 무분별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판단이 없어서 아쉽지만 판단을 회피한 게 아니라 최초의 절차가 위법이니 다른 쟁점은 따질 것도 없다는 뜻으로 본다”고 말했다. 

법원이 판단을 하지 않은 쟁점들 역시 판례를 보면 명백한 위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넷은 “법원이 판단하지 않은 내용의 경우 사실관계가 단순하고 명확하기에 검경이 제대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그간의 판례를 보면 2010년 대법원은 전교조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에 대한 준항고 사건에서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만을 문서 출력물로 수집하거나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해당 파일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압수물 목록을 공개하지 않은 점에 대해 2011년 대법원은 “압수조서·압수목록을 작성하지 않고 (압수물을) 보관한 일련의 조치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영장 원본이 아닌 팩스사본을 제시한 점 역시 “급속하게 연행해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피의사실 요지의 고지 및 구속영장 정본(원본)의 제시 없이 사본 제시만으로 강제연행한 것은 불법”이라는대법원 판결이 1996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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