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뉴스의 본령이 권력 감시에 있다면 핵심은 청와대일 것이다. 올 한해 우리가 얼마나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기사를 썼는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충분히 반성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일 여과 없이 상황 변화만 그대로 보도했고 결국 권력을 잘못 감시해 판단을 잘못하게 했다.”

지금과 같은 언론환경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공영방송 기자가 있다면 ‘참언론인’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말은 17년 전인 1999년 MBC 기자의 입에서 나왔다.

이로부터 17년 후 이 기자는 공영방송의 전례 없는 ‘욕설 국장’이 됐다. 최기화 MBC 보도국장에 관한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보고서를 찢어 버린 최기화 국장은 17년 전에는 노조 조합원 자격으로 민실위 주최의 ‘뉴스데스크 1년 결산 좌담회’에 참석해 권력 감시에 무뎌진 MBC 보도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치부 기자였던 최 국장은 이 좌담회에서 “뉴스데스크 보도가 권력 감시라는 부분은 버리고 ‘공방’으로 가거나 여권에 유리할 때는 좀 더 기사 내용을 충실하게 다루는 식으로 보도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에 가까이 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때 최 국장이 했던 우려를 지금 MBC 뉴스데스크 책임자인 그에게 똑같이 되묻는다면 과연 뭐라고 답할까.  

최기화 MBC 보도국장(왼쪽)은 지난해 6월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선정하는 ‘참언론인대상’을 받았다. 사진=한국언론인연합회
17년 전 “권력 감시의 핵심은 청와대”라던 기자였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지난해 9월9일 ‘기사의 ABC도 사라진 뉴스데스크’란 제목의 민실위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보도국 내 유인물 배포용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민실위 보고서를 최 국장이 뭉치째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다. 

아울러 노조에 따르면 최 국장은 보도국 기자들에게 민실위 간사의 취재에 응하지 말고, 민실위 간사와의 전화 통화 내용까지 모조리 보고하라고도 지시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지난해 10월2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지노위는 지난 15일 “민실위에 대한 취재 불응과 접촉 보고 지시는 노동조합 운영에 대해 지배 개입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최 국장은 아직까지 지노위 판정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되레 최 국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전화한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그는 “너 이 새끼야”라며 욕설과 폭언을 했다.

이날 최 국장에게 욕설을 들은 기자는 미디어오늘 기자 한 명만이 아니었다. 최 국장은 MBC 뉴스데스크 사드 배치 여론조사 보도 왜곡 논란을 묻기 위해 전화한 또 다른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도 “X새끼야” “싸가지 없는 새끼 아니야” “지랄하지마”라는 등 욕설을 퍼부었고, 이를 취재한 한겨레 기자에게도 “야, 이 새끼들아. 전화 좀 하지 마라”며 한겨레를 비하기도 했다. 

민실위 보고서 찢고, 부당노동행위 오명 남겨

놀랍게도 이렇게 공영방송 ‘욕설 국장’이 된 그도 과거엔 ‘공정 방송’을 기자의 보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최 국장은 지난 2010년 2월 MBC 기획조정실 정책기획부장 시절 ‘대한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를 좀 더 하다 보니 보람은 특종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반 정책 사안이라고 해도 공정한 것인지, 사회적 약자에게 소홀한 것은 아닌지 등을 잘 따져 보도하고 그게 일부 반영돼 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한다면 특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실의 정확성과 편향적이지 않도록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앞으로 기자를 더 하게 된다면 일상의 공정성과 그 이면의 심층적 의미를 추구해보고 싶습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이 위선이 아니라면 최 국장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김 국장은 MBC를 망가뜨리고 170일 최장기 파업을 초래한 장본인 김재철 전 사장 취임(2010년 3월) 후 홍보국 국장이 됐고 그 뒤 보도국 부국장, 취재센터장, 보도국장 등 승진을 거듭했다.

결국 그는 MBC 파업이 끝난 후 노조가 발표한 ‘공정말살 7인’ 명단에 오르게 된다. 최 국장과 함께 공정말살 장본인으로 지목된 7인은 권재홍 부사장과 황헌 전 보도국장, 김장겸 보도본부장, 김상철 논설위원, 박용찬 시사제작국장, 문호철 워싱턴특파원 등이다. 

노조는 최 국장을 7인에 포함한 이유에 대해 “지난 10·26 재보선 편파 보도 논란, 한미 FTA 반대 시위 진압 보도 편향, 김문수 경기지사 소방관 전화 파문 등 뉴스 책임자(당시 부국장)로서 주요 기사들이 왜곡되거나 변형되는데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전 사장과 MBC 망가뜨린 ‘7人’으로 지명

최 국장은 지난 2012년 MBC 파업 때 권재홍 부사장이 노조 조합원들과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이 없었음에도 퇴근 저지 과정에서 허리를 다쳤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의견진술 자리에서 “신체적 충격은 본인이 발을 헛디뎌서 받은 것도 있다”면서도 MBC 보도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당시 최 국장은 보도국 부국장이었다.
 
그는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힌 주어도 없이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허리에 충격을 받았다’는 보도가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심의위원의 지적에 “촛불집회 때 주로 기사를 썼던 기자들은 대부분 파업에 내려가 있는 기자들인데, 그 친구들도 통상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8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세월호 보도 참사’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상암동 MBC 사옥을 방문했지만, 직원과 청경들의 저지로 사옥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최기화 당시 MBC 기획국장. 국민TV 뉴스K 리포트 갈무리.
지난 2014년 8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세월호 보도 참사’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MBC를 방문했을 때도 당시 최기화 기획국장은 “공식 절차에 따른 검증실시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며 청원경찰들을 동원해 방문을 저지했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는지, 출세를 위해 거짓말을 했는지 그의 ‘변절’을 설명하기 어렵지만, MBC의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후배들이 만든 민실위 보고서를 훼손하고 공영방송의 보도 내용을 묻는 기자에게 욕설까지 퍼부은 그를 더이상 ‘언론인’이라고 부르기 어려워 보인다.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은 지난 18일 최 국장의 욕설 발언에 대해 대신 사과하며 “질문을 하는 기자들의 수장인 보도국장이 험한 말로써 질문하는 기자를 모욕했다”며 “스스로 맡고 있는 본분을 무시, 부인했으며 휘하 MBC 기자들을 창피하게 했다”고 질타했다.

이런 사람이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공영방송 보도책임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혹한 언론환경을 대변해서일까. 최 국장은 지난해 6월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선정하는 ‘참언론인대상’을 받았다. 한국언론인연합회는 지난 2001년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23개 중앙언론사에 대한 세무 조사에 반발해 설립된 보수 성향의 언론단체다. 최 국장은 이 단체의 운영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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